동아시아에 드리운 新냉전의 그림자
동아시아에 드리운 新냉전의 그림자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2.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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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헤게모니 경쟁 필연적…한국의 선택 까다로워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동아시아 외교안보 질서가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에 국한하지 않고 제3차 핵실험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이는 1만km 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통해 미국 본토를 핵공격할 수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보다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로운 정부가 맞이할 우리의 내외 정치적 과제들과 중국의 패권적 신진 지도체제는 오바마 정부 2기와 맞물려, 한반도 주변 상황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한반도 주변 정세,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이제까지 우리가 예상하고 바라는 바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도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소위‘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이라는 오바마 정부의 아젠다에도 불구하고‘국방예산의 삭감’그리고 G2라는 미.중간의 경쟁과 협력이라는 다소 까다로운 관계가 놓여 있다.

이러한 모든 원인은 아시아가 향후 국제 경제 블록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은 성장세를 이뤄 나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 모두‘시장을 뺏길 수 없다’라는 현실적 요구가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중, ‘아시아 시장 뺏길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지난 11월 15일 미 대선이 끝나자마자 집권 2기에 들어간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의 축배를 보류하고 힐러리 국무장관 등 외교 사절들을 이끌고 동남아시아 순방에 나섰던 사건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를 시작으로 캄보디아, 그리고 태국 등 3개국을 잇달아 방문했다. 미얀마 방문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미국은 미얀마를 미국의 우호국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 2년 간 많은 공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적대국 리스트의 상단에 있던 나라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19일과 20일에는 동아시아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캄보디아를 방문하고 훈센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 정계는 오바마의 훈센 총리와의 회담을 못마땅해 했다. 미국 여론은 지난 수십년 동안 캄보디아를 철권통치로 다스린 훈센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렇듯 아시아를 축으로 하는 외교, 안보 전략을 구상하는 배경에는 앞에서 지적한 경제적 이익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에 학자들은 예외 없이 동의한다. 아시아의 잠재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및 인도를 합친 16개국, 즉 RCEP라고 불리는 아시아경제협력기구 회원국의 인구는 34억 명이며 GDP는 2011년 기준 19조7,640억 달러로 유럽연합(EU, 17조5,100억 달러)을 능가하는 규모다.

당연히 미국과 중국 모두 이 아시아에 자신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동아시아에서 미.중의 영향력 경쟁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미국은 주권과 영토 분쟁에 대해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도 이러한 중국의 입장과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역내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죠.

미.중의 경쟁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2012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이후 첫 번째 아시아 방문국인 미얀마 방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

1967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및 필리핀의 5개국으로 출발한 아세안(ASEAN)은 정치·경제·문화공동체로서 현재 회원국은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및 베트남을 포함한 10개국으로 확대됐고 매년 11월 정상회의를 갖는다.

이 가운데 아세안+3는 아세안 국가들에 한국, 중국 및 일본을 포함해 1997년 출범한 동아시아지역포럼이다. 이 포럼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는 아세안+3 회원국에 인도, 호주 및 뉴질랜드를 더한 지역 포럼으로, 궁극적으로는 유럽공동체(EU)와 유사한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축이 목적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회원국은 아니지만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 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이렇듯 동아시아가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공동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은 이 지역에서 미.중간에 헤게모니 경쟁을 배제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동시에 그 경쟁은 협력으로도 나타날 것이기에 미.중 사이에 놓인 한국의 선택은 매우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의 딜레마다.

미국의 경제문제가 아시아에 주도권 약화시켜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주시하며 “미국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이유는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를 미래전략의 최우선지역으로 설정하고 있음에도 정작 이 지역에서 군사비 지출을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그 결과 중국에 비해‘허약한 군사력’을 유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났던 것은 과거이며, 앞으로는 아사아의 친미 우호 국가들이 협력을 통한 집단안보를 통해 미국의 군사비 지출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보고서는‘그러한 생각이 결국 아시아에서 미군사력의 허약함을 초래하고 전쟁발발시 미군이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이유는 바로 중국이 가진 해양패권 전략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은 그러한 미국의 전략을 꿰뚫어 보고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을 중화경제권으로 편입하려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축’(Pivot of Asia)이라는 전략은 무용지물이 될 뿐더러 허약한 군사력의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에 의해 축출되는 사태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을 헤리티지재단은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아시아에서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아세안은 한중일과 모두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고 중국과는 일찍이 2002년 그리고 한국과는 2009년 FTA를 맺었다. 아세안은 한중 양국과 2012년까지 90% 관세 철폐에 합의했으며 나머지 10% 철폐(일부 품목은 인하 또는 제외)는 한국과는 2016년 그리고 중국과는 2018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아세안의 자유무역공동체의 방향은 결국 중국경제 의존 심화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국이 앞으로 경제성장의 축을 수출이 아니라 내수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하고자 총력을 다함으로써 중국과의 교역에 깊이 의존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으로서는 대단히 큰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 시진핑 체제가 과거와는 달리 미국에 할 말을 다하고 있으며, 이에 대항하기에는 미국의 경제력이 녹록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이어지는 이태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말이다.

“시진핑 체제의 출범이 세계적 관심을 끄는 것은 시진핑 개인이나 지도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 어느 때보다 중국이 G2 시대에 걸맞은 위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과 새로운 대국관계를 형성해 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시진핑 체제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출범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21세기 들어서면서 초기 20년을 역사적인 전략적 기회로 규정했죠. 향후 10년은 중국이 G2시대에 명실상부한 지위를 가지고 미국과 국제질서의 재건축에 관여하게 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중국에 공세적 견제 취할 것’

이 수석연구위원의 말을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2011년 현재 미국의 재정규모는 총생산 대비 25.1%로서 OECD 회원국 가운데 밑에서 세 번째로 작다. 지출은 늘어나는데 조세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됐던 것.

이러한‘재정절벽’의 논쟁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증세와 지출증가를 주장하는 반면 공화당은 감세와 지출삭감을 내세워 맞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원의 공화당과 증세를 둘러싸고 일대 접전을 앞두고 있다. 증세가 없이는 국내지출은 물론이고 해외에서의 증가하는 지출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지출증대는 생각하기 힘들며 국방비 역시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는 국방예산의 감소라는 제약 속에서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고 이 문제가 바로 헤리티지재단이 우려하는‘아시아에서의 허약한 미 군사력’의 배경인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가 결국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는 견제를 강화하는 전략으로 결정지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같은 세종연구소 강명세 수석연구위원의 말이다.

“오바마가 제창한 새로운 아시아 정책의 핵심은 중국 부분입니다. 중국과 아시아 문제는 중동사태처럼 당장 진화를 필요로 하진 않지만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지도력을 시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죠. 세계 제2위의 경제단위로 부상한 중국은 잠재적으로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공세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문제는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 국제관계전문가들의 의견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미.중관계의 경쟁과 협력이라는 지렛대를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들이 없다.

다만 이번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중국이‘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나선 점과는 달리, 미국의 하원 외교위원장인 일리애나 로스 레티넌 의원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강행은 국제사회에 도발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동시에“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4년간 대화를 통한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는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며 오마바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하원 외교위원장의 입장은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미 정계에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핵문제를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마디로 서로 서로 물려 들어가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은 미.중관계의 갈등과 협력의 힘을 이용해 내부를 단속하고 실리를 챙기려 한다면, 중국은 미국에 대해 대등함을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다시 북한문제를 그러한 중국에 대한 견제 카드로 사용하려 한다는 이야기다.

동아시아 신냉전 체제 대비, 한.일관계 정상화 필요

문제는 이러한 미.중.북의 파워게임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할과 위상이다. 이 문제는 아쉽게도 한.일간에 공통된 의견 접근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갈등을 비롯해 종군 위안부 문제와 한국 내 친일논쟁이 동아시아에 신질서 형성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참여 제한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한과 북한은 NLL이라는 문제에서 서해를 기반으로 하는 오래된 갈등을 가지고 있다. 남한 입장에서 NLL은 생명선이자 영토선이라는 개념이어서 한 치 양보가 불가능하지만 북한으로서는 내부 결속과 서해분쟁지역화라는 실리가 서로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북 갈등의 구조는 궁극적으로는 중.북을 한 축으로, 그리고 한.미.일을 한 축으로 하는 새로운 냉전의 구도를 가져올 수 있다 분석도 가능하게 한다. 다시 세종연구소 강명세 수석연구위원의 말이다.

“미국은 중국이 새로운 자유주의 질서에 참여하는 주도적 국가로서 초강대국 위상에 걸맞는 책임 있는 행위자 역할을 하라고 촉구해왔습니다. 중국이 세계질서의 안정과 번영에 보다 건설적 기여를 하라고 강조한 것이죠.

그러나 서서히 하강하는 미국에 대한 기대는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는 중국의 현실과는 격차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양국 사이의 인식의 차는 자칫하면 불안정한 아시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아시아의 불안은 중국의 규모를 고려할 때 새로운 냉전으로 회귀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강명세 수석연구위원이 조심스럽게 주장하는‘신냉전’은 사실 이미 도래해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앞으로 세계 경제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이라는 한 축이 심각한 위협을 받아 무기력에 빠져 있고, 아세안이라는 새로운 이머징 파워는 아직 구축되지 못했다.

결국 중국의 입김이 아시아에 확대되는 방향을 피할 수 없다면 미국의 입장으로서도 협력보다는 견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해 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중간의 줄다리기 대상의 무게추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쩌면 다시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한.일 관계의 건강한 정상화와 튼튼한 안보 공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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