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취업’의 추억
‘위장 취업’의 추억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5.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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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 Book & World: 로스 다우서트·라이한 살람 공저 <그랜드 뉴 파티>를 읽고
 

며칠 전 ‘옛 친구’를 만나러 안산역에 갔다. 1980년대 후반 이곳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곳 반월공단의 모습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안산역 앞 쪽으로 외국인 노동자 집중거주지역이 형성되어 있었고 몇몇 한글 간판만 아니라면 중국 혹은 동남아의 공단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옛 친구를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최근 술을 끊었는데…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다 보니 불과 2잔 마셨음에도 뜨거운 열기가 뱃속으로부터 올라왔다.

1980년대 후반 이곳에서 선반 보조공으로 일한 적이 있다. 손이 서툴러서 온갖 구박을 당하며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잡일만 거들고 있었을 뿐 선반기계는 몇 번 만지지도 못했다.

허락 없이 기계를 만지면 고참들에게 두들겨 맞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40대 후반의 노동자가 공장장에게 불려 가더니 기계작업에서 제외되고 허드렛일로 배치된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목돈이 필요한 사람이 산재보험금을 타기 위해 고의로 기계에 손가락을 밀어 넣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에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서방님의 손가락은 6개래요, 시퍼런 절단기에 뚝뚝 잘려서, 한 개에 5만원씩 20만원에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라는 가사의 운동가요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중국 공단 구경을 처음 해 본 것은 2003년 3월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 한국의 어느 공단으로 온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른바 ‘기숙사’는 1980년대 구로공단의 ‘벌집’ 그대로였다.

낡은 비키니장, 그리고 벽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연예인 사진… 김희선, 안재욱 사진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중국공산당이 생산성이 낮은 하위 10%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라고 외자기업들에게 권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그래도 명색이 노동자당이라는 공산당이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다니?! 한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를 만났을 때 따지듯이 물어 보았다. “어떻게 공산당이 ‘제국주의 자본의 주구’가 될 수 있느냐?”고. 이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과거 중국 인민들은 제국주의로부터 착취당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상태였는데 이제 겨우 13억 인구 가운데 4억이 ‘착취당할 권리’를 되찾았고 아직 9억 인구는 제국주의로부터 착취도 당하지 못하는 ‘원시상태’에 있다.

노동 대중에게 가장 기초적인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다. 해고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지금 중국에서는 9억 인구가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열심히 일하려는 자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공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도 작업환경이 좋은 기업들이 있었다. 심천에 위치한 삼성SDI도 그중 하나였다. 기숙사와 식당 시설은 어느 일류대학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P모 부장은 “근로자들을 후난성(湖南省), 쓰촨성(四川省) 등 내륙지방에서 뽑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P부장은 이른바 ‘노동문제 전문가’인데 입사 초기 수원 삼성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이를 막느라고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과거의 동지들과 나눈 얘기들

“조합 결성이 준비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그 주동자를 알아보니 글쎄 서울대 치대를 다니던 x이었다”면서 “그 좋은 치과의사 하지 왜 남의 공장에 와서 깽판을 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혹시 이렇게 생긴 사람 아니었느냐”고 인상 착의를 말하고 “당시 이러저러한 외부단체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어떻게 아느냐”며 눈이 동그랗게 됐을 때 이실직고했다. “바로 당시 제가 수원 삼성공장 노조결성 작업팀에 소속돼 있었으며 그 치대생을 교육시켜 침투시킨 장본인이었다”고. P모 부장은 그날 저녁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필자와 함께 밤새 폭음했다.

‘안산 다문화 거리’에서 양꼬치 구이를 소주, 콜라와 함께 먹고 있을 때 다른 친구 한 명이 합류했다. 부평공단의 모 대기업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인데 역시 이른바 ‘위장취업자’ 출신이다.

그러나 그는 노동운동을 그만둔 지 이미 10년도 넘기에 보통 노동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대기업 사무직에 입사한 친구들 보면 불쌍하다”는 것이 이 친구의 지론이다. 밤낮없이 일하고 그런데도 40세만 넘으면 구조조정 대상자가 되고… 조금 고되기는 하지만 생산직이 속 편하다는 것이었다.

일 끝나면 샤워하고 소주 한 잔 하거나 집에 들어가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사로 일하는 부인 것과 합치면 연봉도 1억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야근 및 특근 수당을 합친 액수다. 안산 친구가 부평 친구에게 말했다. “넌 노동귀족이야”라고. 이에 부평 친구는 “노동자가 귀족 되면 안 되나?”고 되받았다.

이날 여러 가지 회상으로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랜드 뉴 파티>, ‘(미국) 공화당은 어떻게 노동자들을 획득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지킬 수 있는가’에 관한 책이었다.

책 제목은 미국 공화당이 <그랜드 올드 파티> (Grand Old Party, GOP)라고 불리고 있는 사실에 빗대어 만든 것이다. 미국 노동자들은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에서도 오히려 서민들이 미국 보수주의를 지지하고 뉴욕의 중산층이 리버럴인 경우가 많다.

사회주의 방식으로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노동자는 날로 줄어들고 이른바 노동운동의 ‘진공상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반(反)노조, 반(反)노동으로만 비침으로써 보수진영은 노동자들을 여전히 이른바 ‘진보진영’에게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원칙론적 반노조를 벗어나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대안’으로 접근할 경우 이들을 정치적으로 획득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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