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입법 폭풍이 온다
경제민주화, 입법 폭풍이 온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6.03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에 의원입법형식으로 발의된 경제민주화법률안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인 민주당이 경쟁적으로 법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경제민주화법에 대해 “재벌 타도라는 편향된 이념 아래 논리도 정당성도 없는 규정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의 경우 이미 의원입법으로 부당지원행위 위법성 요건 완화, 사익편취 규제 등 5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편법적인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사익편취 금지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기업그룹의 총수 일가의 거래를 가장한 사익편취행위를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득표 노린 인기영합 법안 남발

문제는 기업의 효율성을 위한 정당한 거래마저도 이의 정당성을 재벌 총수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검사에게 불려간 혐의자가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야 한다는 이치와 같다.

이렇듯 논리도 법리도 맞지 않는 설익은 법률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충분히 공부하고 연구할 틈이 없이 서둘러서 너무 쉽게 법률을 만들기 때문이죠. 서두르는 이유는 뻔합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인기영합적 법률을 발표해야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인 거죠.”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라는 약 40여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쏟아내는 이 기상천외한 입법행위에 이한구 전 원내대표는 “공부는 안하면서 언론을 등에 업고 유명세를 탄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발탁되면서 한탕주의식 정책들이 남발되고 있다”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내놓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러한 경제민주화 입법 경쟁은 결국 지난 5월 28일 ‘갑을경제민주화법’이라는 기괴한 이름의 법안을 발의시켰다. 남경필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도한 법안이었다.

대표발의자 이종훈 의원은 “만연한 착취적 갑을 관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민주당이 발의한 대리점거래공정화법처럼 특정 갑을관계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닌 포괄적 갑을관계를 입법.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해결하고자 한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개정안은 을(乙)의 지위를 강화해 대등한 갑을관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사인의 행위금지 청구 ▷공정거래위 제도 개선안 등이 골자다.

신설되는 집단소송은 을이 개별적으로 갑에 대항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제외신청자 이외 모든 구성원에게 판결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이다. 을이 갑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법원에 금지가처분소송도 낼 수 있도록 돼 있다.

문제는 계약에 있어서 항상 ‘갑’이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에서 통상 ‘갑’과 ‘을’은 계약을 청원하는 자가 ‘을’이고 수락하는 자가 ‘갑’이 되지만 정해진 바는 없다.

이러한 과도한 공정거래법에 대해 신석훈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의 목적이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억제하는 것이라면 여기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과징금과 형사처벌 중심의 현행 공적(公的)집행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사인(私人)의 금지청구 등의 사적(私的)집행 수단을 도입해 무조건적으로 집행 수준을 강화하는 것은 이중처벌금지원칙과 과잉금지원칙을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제재 강할수록 판단은 신중해야

특히 현재 가장 논란이 많은 ‘불공정 하도급거래’와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관련 개정 논의가 집행은 강화하면서 행위의 불공정성 판단은 점점 쉽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신 부연구위원은 주장하였다.

즉, 제재 수준이 강해질수록 오판으로 인한 위험성은 더 커지므로 좀 더 신중하고 확실하게 행위의 부당성을 입증한 후 제재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인데 최근의 법 개정 논의는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가 회사기회의 유용이나, 중소기업 고유업종 침탈, 총수일가에 의한 편법적 상속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거래비용의 내부화, 리스크의 분산, 기업비밀유지, 공급처 내지 판로의 안정적 확보 등 경영 효율성 측면이 상당수 있으므로 행위의 부당성 판단 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을 검토한 신영수 경북대 교수는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어떤 행위가 법에 위반되거나 허용될 수 있는지를 기업의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객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개발하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출점을 제한하는 프랜차이즈법 역시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맹본부는 정보공개서 등록업체를 기준으로 할 때 약 3400여개에 이른다. 그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99%를 넘는다.

이처럼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게 규제를 가하려고 하면서 경제민주화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다. 독일에는 프랜차이즈규제법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 우리에게 그토록 갑을문화가 만연돼 있는 이유는 계약문화의 미성숙 때문이라고 최영홍 고려대 법대 교수는 주장한다.

“체결된 계약은 반드시 지키고 체결되지 않은 사항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계약개념이 아직 확립돼 있지 못한 것이죠. 진정으로 권리의식 확대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원한다면 법개정을 통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계약문화의 향상을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과잉규제는 자율과 창의력을 억제하고 우리의 법제를 자꾸 변방으로 밀어낼 뿐이죠.”

법치원리가 실종된 경제민주화법 홍수에 대해 ‘민주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