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기다려주고 여자는 책임 있게"
"남자는 기다려주고 여자는 책임 있게"
  • 이원우
  • 승인 2013.12.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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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리더를 찾아서] 노무법인 유앤 문강분 노무사
노무법인 유앤 문강분 노무사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렸지만 ‘여성시대’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누군가는 제도적 개선을 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정부의 개입과 조정을 말할 것이다. 각자의 견해에 따라 토론은 이어지겠지만 그 가운데에서 중단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미 삶 속에서 자기만의 여성시대를 열어젖힌 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이다.

<미래한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여성 리더들을 인터뷰 하며 그들의 활약상과 포부, 솔직한 마음을 들어보는 기획코너를 연재한다. 그 첫 주자는 노무법인 유앤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는 문강분 노무사다. 분쟁 조정을 전문분야로 하는 그녀는 세간의 흔한 유행어가 돼버린 ‘소통’이며 ‘화해’에 대한 색다른 비전을 가지고 에너지 넘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노무법인 ‘유앤’에서 일하고 계신데요. 21명의 노무사 중에서도 여성은 4명 정도로 적은 편이네요. 업계 전체적으로도 그렇습니까?

그렇죠. 제가 올해 공인노무사로 20년째를 맞고 있는데요. 업계에서는 거의 원로에 해당하는 경력이지만 여전히 여성은 많지 않아요. 그럴수록 서로 간에 교류를 더 늘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2000년 12월 사단법인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를 만들었고요. 비슷한 분야에 계신 전문가들, 여성들과 계속 교류를 해 왔어요. 2010년엔 회장직도 역임했습니다.

-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라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을 주로 하셨겠군요.

사실 여성 노동자들의 애환에 대해서는 아주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85학번이라 딱 운동권 세대거든요. 이른바 위장취업이라고 하죠? 대학 졸업하고 2년 동안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처참한 광경을 많이 봤어요. 15살짜리 아이들이 무조건 상경해서 힘들게 일하다가 성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임신하고 하는 광경들이요. 학교에서 배운 건 계급투쟁인데 현장에선 성적 질곡이 훨씬 심하더라는 거죠.

노동계에서조차 외면당하는 여성문제

- 상담을 해주시면서 느낀 점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국의 법률이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나요?

전혀요. 오히려 법은 정말 잘 돼 있어요. 한국은 여성과 관련된 분야가 가장 빨리 법제화되고 선진화된 나라거든요. 문제는 실질인데, OECD에서 발표한 자료를 봐도 직장 내에서 한국 여성의 지위는 우간다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개선될 기미조차 안 보인다는 게 더 답답한 일이고요. 고용노동부에서 여성 관련된 문제들은 ‘취약계층’ 관련 업무로 분류돼 있어요. 참 이상한 일 아닌가요? 인구의 반인데 취약계층이라니요.

- 그런 아이러니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시선은 어떤가요.

노동계에서도 여성 문제는 주요 이슈가 아니죠. 일단 노동문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면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대표되는 ‘노조를 위한 리그’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극소수 조직근로자들의 이해만 대변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어요. 오랫동안 노동계 근방에 있으면서도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부분인데, 그러다보니 저는 노동운동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어요(웃음). 인구의 절반인 여성 이슈를 들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요.

- 이런 상황에 대한 대안은 어떤 방식으로 찾고 계신가요.

논문도 쓰고 정부 프로젝트도 숱하게 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 같았어요. 관건은 결국 이 문제를 거대한 노동문제가 아닌 ‘개별 근로자의 문제’로 보는 것이더라고요. 최근 들어 기업들이 성과주의 연봉제를 채택하면서 노사관계의 패러다임 자체가 개별관계로 바뀌고 있거든요. 이제 근로자들은 막연히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책임의식을 가지고 명확한 문제 제기를 해야 돼요.

- 미국 유학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그곳에서 공부하신 게 그런 내용이었나요?

맞아요. 미국 서부 페퍼다인 대학교(Pepperdine University) 로스쿨에서 갈등해결 전문가과정을 들었는데 ‘이거다!’ 라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거의 인생의 전환점 수준의 감동을 받은 거죠(웃음). 이곳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는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갈등해결학 박사 학위를 받으신 강영진 박사님의 강연을 듣게 됐거든요.

갈등해결이 학문으로 개설돼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흥미로웠는데 미국에선 아예 로스쿨 과정으로 그걸 배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제가 성격이 속된 말로 ‘무대뽀’인 데가 있어서, 그 길로 3개월 만에 미국으로 날아갔어요.

- 굉장한 도전인데요. 댁에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내’와 ‘엄마’를 보낼 준비를 하기에 3개월은 짧았을 것 같은데요.

식구들이 굉장한 배려를 해 준거죠. 근데 또 제가 항상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인지 쿨하게 받아준 부분도 있어요. 덕성여대 방통대 고려대 법학석사, 이화여대 법학박사, 이화여자대학원 등 그때까지 대학만 4개를 다녔거든요.

남편은 원래 학업에 대해서는 열렬한 서포터예요. 미국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대답으로 하는 말이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거야?”였어요(웃음).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아이는 아예 미국으로 같이 가서 그곳에서 공부했고요.

- 아이 입장에서도 엄마만큼이나 큰 전환점이었겠네요.

그렇죠. 엄마와 함께 ‘특별한 학생’이 됐으니까요. 다행히 정말 좋은 학교와 선생님을 만났어요. 영어가 낯선 우리 아이에게 선생님께서 “네가 영어를 못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 기죽지 말라”고 말해주셨거든요. 말 한 마디로 끝난 게 아니라 학급 아이들에게 하루에 하나씩 한글을 가르쳐 주시기까지 했죠.

한 순간에 우리 아이가 ‘마이너’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리더’가 된 거예요. 그런 분위기 자체가 제게는 거의 문화 충격이었어요.

- 페퍼다인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영어가 자유로운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일 텐데요.

페퍼다인은 갈등해결 분야에선 하버드보다 명성이 높은 곳이지만 한국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러니 그곳에서 한국 학생을 만날 리도 없었죠. 저처럼 영어도 못 하고 빚 내서 날아온 애 딸린 학생은 완전 ‘마이너’였어요. 그런데도 갈등해결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그곳이 기독교 세계관으로 건립된 학교라 그런지 대응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열정 하나만 봐 주시고 지지하고 지원해 주시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돼 있었어요.

소송 없이 문제를 해결한다·갈등해결학의 세계

-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시니까 호기심이 생기네요. ‘갈등해결학’은 어떤 분야인가요?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 tion)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한 마디로 ‘소송을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소송은 분명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편이지만, 이긴 사람과 진 사람 모두를 감정적으로 탈진시키거든요. 그러니 거기까지 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모두가 이긴 것이고 행복해지는 셈이죠. 서로 죽자고 싸우던 사람들이 껴안고 울면서 화해하니까요.

물론 합의를 중시한다고 해서 법의 존재를 경시하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법은 아주 준엄하게 존재해야만 해요. 그래야 법이 무서워서 ADR을 하게 되거든요. 분쟁조정이 법적 해결을 교체하거나 대신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당사자들이 자신을 사건의 중심에 놓고 책임 있는 판단을 하도록 돕는 거죠.

- 한국의 경우에도 요즘엔 송사가 보편화되는 추세인 것 같은데요.

한국 특유의 유교문화가 일단 교섭하고 나누고 양보하는 것 자체에 방어적이에요. “분쟁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있어요. 자기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멋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에는 ‘체면 싸움’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고요.

제가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게 바로 한국 특유의 상황들, 이를테면 유교와 남북대치와 군대문화 같은 것들이에요. 그게 바로 한국에서 갈등구조의 근본을 형성하고 있거든요.

- 갈등해결학을 배우면 그런 구조 속에서도 이른바 ‘내 탓이오’를 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제가 바로 그 산증인인데요. 그 학문을 배우다 보면 끊임없이 ‘사과’하는 방법을 배워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저에게 희생자증후군 같은 게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학생운동하면서 전두환 노태우는 나쁘고 광주는 나쁘고 이러면서 한국 사회엔 비난(blame)할 게 많다고만 생각했지 제 스스로가 나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거예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세상이, 인간관계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 노동문제 이전에 인간관계 자체가, 나아가 남녀갈등 자체가 개선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공부를 하면서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졌어요. 남편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내 잘못이 정말 많았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국가 전체의 남녀 갈등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은 남자가 주도했던 사회인만큼 여자들에게는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고소하고 재판하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여자는 스스로 책임을 갖고 협상력을 길러야 하고, 남자들은 여자의 장점을 보고 여건의 성숙을 기다릴 수 있어야죠. 그거야말로 진정한 갈등해결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 / 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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