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문화합작, 이상한 일방통행
한중 문화합작, 이상한 일방통행
  • 미래한국
  • 승인 2014.07.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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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배우 탕웨이와 한국영화감독 김태용의 결혼소식이 화제다. 그 전엔 한국배우 채림과 중국배우 가오쯔치의 결혼소식이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한중 대중문화인들 간 결혼이 이어지다보니 한국과 중국 간 대중문화산업 교류에 대해서도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한국과 중화권 대중문화계는 서로 교류를 이어온 지 꽤 오래됐다. 1960~70년대엔 홍콩 무술영화들이 국내 극장가를 휩쓸었다. 반대로 홍콩에선 한국영화 ‘빨간 마후라’ 등이 수입돼 큰 재미를 봤다. 이 같은 분위기는 198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국에선 주윤발 주연영화 ‘영웅본색’이 크게 히트하고, 그 ‘영웅본색’ 속엔 구창모가 부른 노래 ‘희나리’가 삽입돼 있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중국 본토 콘텐츠의 경우 1989년 장예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을 필두로 이른바 ‘예술영화’들이 국내에 자주 소개됐다. 이후 1994년 KBS2에서 중국 TV드라마 ‘판관 포청천’을 방영해 크게 히트, 마침내 상업적 성공도 거뒀다. 반대로 중국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 집 남자들’ ‘별은 내 가슴에’ 등을 방영해 현상적 인기를 얻어내면서 한류(韓流)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탄탄한 전진기지 역할을 맡게 됐다.

영웅본색(1986)                                             붉은 수수밭(1988)

뚜껑 열어보면 ‘기가 찬’ 韓中 문화합작

이 같은 흐름에서 보면 중국 내 한류 현상도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렇게 수십 년에 걸쳐 교류를 이어오다 보면 서로 간 영향과 모사를 통해 대중문화 성향 역시 닮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대중문화산업은 크게 진보했다. 중산층 확립으로 ‘용돈시장’이 개발돼 시장 자체가 증폭된 덕도 있지만 여타 국내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대중문화계도 해외수출을 목표로 삼는 분위기가 형성되다보니 단박에 콘텐츠 질이 급성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선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왕성하게 소비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이제 중국 콘텐츠를 거의 소비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은 이제 일본처럼 거대한 내수시장만을 바라보며 자폐적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고, 그만큼 국제경쟁력 차원에선 점차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수입은 있지만 수출은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엄밀히 말해 한중 간 대중문화 ‘교류’ 상황이 아니다. 한국의 일방적 압도이자 중국의 완강한 방어 상황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면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되는 한중 대중문화산업 ‘합작’ 붐이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기가 찬다. 일단 방송 콘텐츠부터 살펴보자. 현재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주 시청시간대인 오후 7시에서 10시까지 해외프로그램 방영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해외프로그램 포맷 수입도 방송사 당 1년에 1편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모두 자국 콘텐츠의 생존과 육성을 위해서다.

말이 방영시간 제한이지 실질적으론 사멸 분위기로 유도한 측면이 강하다. 중국 광전총국(중국의 방송심의위원회)은 매년 1월과 7월의 초순 10일 동안만 해외드라마 심사를 받고 있다. 그 전에 각 성급 광전국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지금 막 뜨고 있는 한국드라마를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몇 개월 이상 지난 한국드라마들은 인터넷 등에 불법파일로 떠돌며 이미 시장성을 잃게 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틈새로 등장한 게 바로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였다. 국영TV에서 한국 콘텐츠 방영을 막을 순 있어도 인터넷까지 통제하긴 어렵다. ‘별에서 온 그대’ ‘상속자들’ 등 근래 중국서 열풍이 인 한국드라마는 모두 중국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보급된 것들이다. 한국서 방영되고 나면 2시간 내로 영상에 자막까지 달려 공급되는 바람에 불법파일의 기승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중국 정부가 이런 상황을 가만 내버려둘 리 없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어마어마한 사회문화적 현상이 되자 중국 광전총국은 ‘인터넷 드라마, 인터넷 영화 등 인터넷 시청 프로그램 관리 강화에 대한 통지문’을 즉각 발표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드라마나 영화 등에 대해 ‘선심사 후방영’하기로 한다는 게 골자다. 심사를 거치지 않고 무단으로 방영하면 해당업체에 5년 간 관련 부문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추(2010)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기상천외한 중국의 문화 규제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 규제 내용이다. ‘국가 명예훼손, 미신 선전, 사회질서 파괴, 폭력 등에 대한 심사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미신 선전’이란 항목에 ‘별에서 온 그대’도 해당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SF나 판타지를 미신으로 치부해 규제를 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 각종 액션이 섞인 드라마들도 ‘폭력’으로, 조폭 등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사회질서 파괴’로 규제를 걸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근래 한국영화계에선 스크린쿼터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지만 중국은 그 정도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1년에 해외영화를 딱 34편만 수입·개봉하도록 막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한다는 입장에서다.

그렇다 보니 자국 영화는 연간 900편 가까이 제작되고 관객도 4억7000만 명 수준으로 한국의 4배에 달하지만 해외 영화 공개는 한국의 1/10 정도밖에 안 되는 희한한 환경이 조성됐다. 그만큼 한국 영화가 중국시장에 제대로 입성하기 힘든 환경이 돼버린 건 자명하다. 1년 34편이면 할리우드 콘텐츠도 제대로 입성하기 힘든 수준이니 한국 영화가 그 틈새에 끼기란 기대난망이다. 기껏 1년에 2~3편 정도 들어가면 다행이다.

이 같은 규제를 통해 중국이 원하는 건 하나다. 드라마나 영화를 중국에서 마음대로 팔고 싶다면 중국과 ‘합작’ 형식을 취해 ‘중국 콘텐츠’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드라마나 영화로 얻는 수익을 나누고, 또 중국에서 한국 측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전수받아 궁극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다. 그나마 대중음악의 경우 공연시장 중심이어서 크게 간섭받거나 규제받는 입장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또 어떤 규제가 새롭게 생겨날지 알 수 없다.

다시 탕웨이와 김태용 감독의 결혼 얘기로 돌아가 보자. 국내에선 중국 최고 미녀배우가 한국의 ‘안 유명한’ 영화감독과 결혼한다고 화제지만, 정작 탕웨이는 중국선 그리 널리 알려진 배우가 아니다. 출세작 ‘색, 계’가 태평양전쟁 당시 친일파 앞잡이를 미화했단 비판을 받고, 본토 배우로서 상식을 초월한 노출연기를 감행했다는 점 탓에 탕웨이는 이후 3년 간 그 어떤 출연 섭외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기회가 온 게 한국감독 김태용이 연출하는 ‘만추’ 출연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꺼져가는 커리어를 살려준 ‘은인’과 결혼하는 셈이다.

채림의 경우는 정확히 그 반대다. 중국으로 진출했을 당시 채림은 배우로서 이미지도 고갈된 데다 가수 이승환과 이혼 파문까지 겪어 국내 입지를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그렇게 중국으로 건너가 한국 드라마에서 쌓은 인지도로 승부, 결국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중국 최고 미남배우와 결혼을 약속하게 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 간 대중문화산업 위상 차이와 그 물길의 흐름을 노골적으로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한국과 중국 대중문화인들은 국제결혼을 하고, 산업 간 합작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형태는 절대 아니다. 기묘한 광경이고, 기묘한 시대다.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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