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화가’ 샤갈의 눈에 비친 남부프랑스
‘색채의 화가’ 샤갈의 눈에 비친 남부프랑스
  • 미래한국
  • 승인 2014.08.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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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프랑스 샤갈미술관 기행문

마르크 샤갈은?
1887년 러시아 비텝스크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삶은 20세기의 파란만장한 삶을 오롯이 끌어안았다. 고향을 떠난 아픔을 ‘비텝스크의 풍경’과 같은 작품에 담아 표현했다. 샤갈은 1919년 비텝스크 인민 예술문화 아카데미가 설립됐을 때 아카데미학장으로 임명됐지만 결국 러시아 혁명에 대한 희망이 실망과 환멸의 상처로 바뀌면서 프랑스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샤갈의 무덤

니스 샤갈 미술관, 하얀 벽에 걸린 성경이야기

남부 프랑스 여행은 보통 니스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바캉스 기간 동안 해변에서 누릴 시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샤갈을 만나는 것. 바로 그 이유였다.

니스 북쪽 사미에 지구에 있는 샤갈미술관(Musee National Marc Chagall)은 1973년 샤갈에게 헌정된 미술관이다. 미술관을 위해 직접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도 볼 수 있다. 니스에 도착하고 하루의 일정으로 샤갈을 만나기로 계획을 잡았다. 오전엔 샤갈미술관에 들러 그의 작품을 보고 바로 생폴드방스로 가는 여정이었다.

한 가지 꼭 명심할 것이 있다. 사랑을 표현하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을 미술관에서 만나기 위해선 ‘화요일’은 피해야 한다. 우리와 다르게 샤갈미술관은 화요일이 휴관이다. 나 또한 정보의 부재로 발걸음을 두 번 해야만 했다. 푸르디푸른 니스 해변에서 불어오는 아침 바닷바람을 맞았다면 버스를 타거나 천천히 걸어서 사미에 지구 언덕을 오르면 된다.

샤갈의 다양한 작품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니스에 있는 샤갈미술관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은 1966년부터 1977까지 그려진 ‘성서의 메시지’ 작품군(群)들이 대부분이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심한 듯 세계를 표현한 그의 색채는 성화(聖畵)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샤갈은 사랑의 힘으로 신분을 뛰어넘어 벨라와 결혼을 했고 자기 작품에 벨라를 담아 사랑의 색을 표현하기도 했다.

현실은 아픔이고 슬픔이었지만 그녀와의 사랑이 동화 같은 서정적 색채로 달콤하고 환상적인 그림으로 표현된다. 바로 이와 같은 화풍이 성화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오르는 장면을 그린 ‘이삭의 희생’, 모세가 십계를 받는 장면인 ‘십계명을 받는 모세’ 등 성화에서도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다양한 빛의 색채를 끌어왔다. 정신적이며 영적인 세계까지 표현된 그림 앞에서 관람객은 상상 속 성경 이야기로 빠져든다.

'이삭의 희생'                                         '십계명을 받는 모세'

넓은 전시관에서 성화를 보고 있으면 성경 속 경직된 분위기와 사뭇 다른 이야기의 숨은 뜻들이 마구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니스에 쏟아지는 햇살과 라벤다 정원을 가로 질러 전시장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성경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색의 마술세계를 누리고 나온 기분을 선사한다. 샤갈의 생전 사진과 자화상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샤갈미술관 관람 후 22번 버스를 타고 마세나 거리로 나온다. 그곳에서 생폴드방스로 향하는 400번 버스에 올라타 40여분 동안 이동해서 도착한 생폴드방스. 20여년 동안 샤갈이 머문 예술의 마을인 이곳에는 당연한 듯 ‘샤갈의 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의 무덤이 있기도 하다. 천천히 걸어서 그 거리를 걸으면 곳곳에서 샤갈의 흔적과 만나게 된다. 물론 그 작은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에도 흠뻑 젖게 된다. 니스에서 버스를 타면 해변을 지나가기 때문에 가는 방향에서 왼쪽에 앉는 것이 좋다.

샤갈미술관에 전시된 사진들

생폴드방스 -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곳

생폴드방스에 오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샤갈처럼 생각하기’였다. 스케치북 한 권을 들고 문밖으로 나선 그곳에는 이젤과 팔레트를 들고 그림을 그리는 일본 여행객들이 있었다. 지금 샤갈이 살아 있었더라도 사랑할 만한 마을이었던 이곳에 샤갈은 잠들어 있고, 예술은 그 마을의 중요한 가치를 여행객들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 도시 전체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도도 필요 없이 골목골목을 다니면 모두 만나게 되는, 작은 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골목 산책. 한두 시간 남짓하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성이지만 찾는 이에 따라서는 몇 시간이고도 하루라도 머물 수 있는 마을. 예술적인 감성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도시를 다녀온 근거로 그림 한 장 남겨놓지 않았다면 꿈결과도 같았을지 모르리라. 그런 연유로 나 또한 작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높은 벽 위에 있는 창문 테라스를 샤갈의 그림 속에 표현되는 보라색 연필로 모노스케치 했다. 그 작은 마을에서는 이렇게 쉽게 삶을 예술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면 나는 왕좌만 없는 왕이었다.”

샤갈이 그림을 그릴 때 한 말이란다. 샤갈이 숨 쉬는 그 마을에서 왕을 호위하는 자들이 없었을 뿐 나 또한 왕이 돼 그 거리를 걸었고 그림을 그렸다. 그것으로 부족했기에 여행지에 돌아온 후엔 그곳의 예술적 잔영을 떠올리며 작은 그 골목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지워지지 않길 바라는 여행지에서 누린 예술가의 꿈으로. 예술가의 숨결을 누리고 싶은가? 당신이 가야 할 곳은 니스 해변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샤갈을 만나야 한다.


글·사진 / 한유정 객원기자 chang-op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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