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다. 지난 추석에 오고갔을 수많은 선물 가운데서도 고급선물로 가장 많이 애용된 것은 아마도 한우세트일 것이다. 오늘은 그 한우 얘기를 해볼까 한다.
날로 값이 오르는 한우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단연 한우의 ‘등급’이다. 쇠고기 등급제는 1994년부터 정부에서 도입한 제도다. 몇 번의 수정단계를 거쳐 현재는 최하 3등급에서부터 2등급, 1등급, 그리고 1+ 등급과 1++등급까지 다섯 단계로 쇠고기의 품질을 분류하고 있다.
쇠고기의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놀라지 마시라. 그 기준은 오직 하나 ‘근육 내 지방의 양’이다. 축산물품질평가사는 손에 BMS라고 하는 표를 들고 다니면서 쇠고기의 등급을 판정한다.
등급 높은 소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BMS란 Beef Marbling Score의 약어로서 소위 마블링, 즉 쇠고기 근육 내의 지방의 양을 판정하는 점수 제도다. 평가사는 쇠고기의 근육 내 지방이 많을수록 높은 등급을 매기고 높은 등급을 받은 소는 높은 가격에 팔린다. 실제 쇠고기 1등급은 3등급 가격의 2배를 상회하며 1++등급의 한우가격은 100g에 1만원이 훌쩍 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근육 내 지방이 많은 쇠고기는 품질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품질을 맛으로 규정한다면 그 질문은 맞다. 그러나 고기의 품질을 건강에 대한 유익으로 규정한다면 그 대답은 틀리게 된다.
지방은 많이 섭취할수록 몸에 나쁘다. 소의 지방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 뇌혈관이나 심장혈관을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쇠고기 근육 내에는 지방의 양이 매우 적은 것이 정상이다. 근육 내에 지방이 많다는 것은 그 소가 한 마디로 ‘비정상적으로 키워진 소’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가장 비싼 돈을 주고 사먹는 1++등급의 쇠고기가 사람의 몸에 가장 나쁘다는 아이러니.
어떻게 하면 축산농가에서 근육에 지방이 많이 낀 소를‘만들어’낼 수 있을까?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풀을 먹어야 하는 소에게 옥수수와 같이 높은 열량의 곡물을 먹이는 것이다. 둘째는 수소를 거세시키는 것이다. 소의 고환에서 분비되는 남성호르몬이 지방을 연소시키고 근육을 발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방법은 소를 뛰어놀지 못하게 가둬놓는 것이다. 소가 넓은 들판에서 뛰어놀면 근육량이 늘고 지방이 줄어들기 때문.
이렇게 곡물을 먹고 거세를 당하며 좁은 장소에서 갇혀 자란 소는 건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키워진 소는 근육내 지방의 양이 많아 사람들의 입에서 고소한 맛을 선사한다. 쇠고기의 멋진 마블링은 소가 풀 대신 옥수수를 먹고 거세를 당한 채 좁은 축사에서 갇혀 지낸 결과물인 것이다.
어쩌다 이런 제도가 도입됐나
최근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담뱃값 2000원 인상 결정을 단행했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쇠고기는 몸에 나쁜 지방이 많을수록 더 높은 등급을 받게 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돈을 받는 제도를 만들었다. 몸에 나쁜 고기일수록 더 비싼 값에‘고급’대접을 받으며 팔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제도가 도입이 됐을까?
원래 쇠고기 등급제도는 미국에서 시작된 제도다. 엄청나게 많은 옥수수가 생산되는 미국에서 옥수수 소비를 늘리는 동시에 소의 비육(肥育) 속도도 늘리는 방안으로 옥수수 사육이 개발됐다. 지방량이 많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도록 하는 제도는 미국에서 먼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제도가 1994년에 들어왔는데 정작 문제는 미국의 등급제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1등급 한우의 지방량에 해당하는 미국의 프라임(Prime)급 쇠고기는 전체 미국 소의 2.4%에 불과하다. 그런데 근육 내 지방량이 많아 1등급 이상의 판정을 받는 한우는 전체 한우 중에서 약 60%에 달한다. 과반수가‘1등급’이라는 말장난 같은 상황이다.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 대다수는 지방이 적은 3등급 쇠고기를 먹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인들은 비싼 돈을 주고 몸에 나쁜 고기를 ‘고급’이라며 사먹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가 만든 쇠고기 등급제도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비정상적이다. 억압받으며 키워진 소, 사람의 몸에 나쁜 지방이 많은 소일수록 높은 등급과 높은 가격을 받도록 만든 매우 기이한 제도인 것이다.
이 제도의 정착에는 정부가 한우의 경쟁력을 키우고 축산 농가를 보호한다는 ‘아름다운’ 명목도 물론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기형적인 제도가 돼버리고 말았다. 국민의 몸에 더 많은 지방을 집어넣어 국민의 건강을 해칠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는 이제라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더 건강하게 키워진 소가 더 높은 등급을 받도록 입맛 중심에서 ‘건강 중심’으로 평가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노환규 편집위원·前대한의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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