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던지는 메시지 ‘힐링’은 가라, ‘킬링’이 온다
청춘에 던지는 메시지 ‘힐링’은 가라, ‘킬링’이 온다
  • 정용승
  • 승인 2014.12.22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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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사례1. 27세의 A군은 대학교 졸업반이다.

군대 제대 후 동기도 없는 낯설어진 학교를 다시 다니려고 하니 죽을 맛이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이 졸업반이라는 사실이다. 졸업은 코앞이지만 막상 일자리는 생각보다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경쟁자들보다 뛰어난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름 노력한다고 이곳저곳 알아보고 눈높이도 낮춰보지만 나에게 맞는 일자리는 없는 것 같다. 스펙을 쌓아보려고도 하지만 이것도 다 돈이라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 상황까지 오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대학교 강사들은 “나 때는 좋았는데…”라는 식으로 약을 올리는 건지 속을 긁는 건지 모를 농담을 한다.

 

사례2. 25세의 B양은 취업준비생이다.

졸업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토익학원을 다니며 스펙 쌓기에 열중이다. 그동안 떨어진 기업만 30여 군데. 그래도 서울 상위권 대학이라고 불리는 곳을 졸업했기에 졸업 때까지만 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건만 현실은 달랐다.

경쟁자는 많았고 국내 대학 졸업생들하고만 경쟁하는 것이 아닌 외국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도 아직 젊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이 다짐이 언제 끊어질지는 모른다.

 

사례3. 29세의 C군도 취업준비생이다.

C군의 가장 큰 고민은 나이다. 30세면 취직에 불리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아침마다 든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대학원 진학이다. 딱히 공부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석사 타이틀이라도 갖고 있어야 취업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름 노력은 해왔지만 되는 것은 없었다. 이제 떨어진 원서가 몇 장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그냥 취직만 시켜주면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원서를 넣고 있다.

졸업반일 때까지만 해도 적어도 중견기업은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진 지도 오래됐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대학생 혹은 취업준비생들의 모습이다. 그나마 이런 사례들은 대한민국 평균(?)이라고 할 수 있다. 30대 중반까지 취업을 못해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아예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청년들의 요즘 모습은 한편으로는 안쓰럽다고 느껴질 정도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들이 직업을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청년들을 보는 기성세대들의 반응은 몇 가지로 나뉜다.

 

청춘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

첫 번째 유형은 ‘꾸짖음 형’이다. 말이 좋아 꾸짖음이지 비난에 가깝다. 청년들을 꾸짖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게 사회인데 왜 적극적으로 데모를 하지 않느냐는 식이다.

대표적으로는 나꼼수의 멤버였던 김용민이 있다. 김용민은 2009년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는 제목으로 한 지방대학 신문에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다. 내용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이제 내 말을 들려주려 한다. 요컨대 “너희처럼 처신하면 밥되기 딱 좋다”라는 말이다. 자, 들어보라. 이명박은 너희에게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다. “누가 찍으래?” 이런 입장일 것이다. 너희의 등록금 걱정, 취업 고민에 대해 공감이라도 해줄 것 같나. 천만에. 그러니 등록금 반값 공약을 일말의 거리낌 없이 부도냈다.아, 이런 대안은 제시했더군.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겠네”라는. 또 너희의 미래? “4대강 살리기 할 테니 삽 하나 들고 와서 한 반 년 일하라”는 게 최선의, 또 전부인 해법이다. (중략) 그렇다고 내가 지금 너희에게 데모할 것을 부추기는 게 아니다. 도리어 만류하는 것이다. 왜냐면,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20대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리 설득력 있게 와 닿지는 않는다. 정치적인 느낌에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힐링, 앙꼬 없는 찐빵

두 번째 유형은 ‘공감 형’이다. 최근까지도 청년들에게 가장 많은 환영을 받았다. 심지어 ‘힐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유형의 인사들이 하는 말은 부드럽다. 그리고 따뜻하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란도쌤’이라고 불리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다. 김 교수의 인기는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른다.

 

김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에까지 진출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후 나오는 관련 서적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류로 분류되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문제점도 명확하다. 우선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일부분을 읽어보자.

<아직 재테크 시작하지 마라. 대신 꿈꾸기를 시작하라. 오히려 한 달에 한 가지라도 ‘전혀 돈이 되지 않을 일’을 찾아 시도해 보라. 펀드가 아닌 꿈을 이룰 그대의 역량에 투자하라,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자신의 역량을 어떤 방향으로 길러나가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점이 란도쌤 인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위로는 받았지만 해결책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모든’ 청춘을 대상으로 쓴 책이기에 나의 상황과 맞지 않는, 즉 ‘맞춤형’ 상담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 케이블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명 개그맨은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라는 말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꼬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그렇게 청춘을 위한다면 이 책을 무료로 배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유형은 ‘현실형’이다. 이 유형이 최근 불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새로운 트렌드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류가 주는 엉성한 위로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말이 오히려 옳아 보인다.


아프니까 죽지 그래?

 

이 시점에서 그런 엉성한 위로를 완전히 깨부수는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차라리 죽지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대신 그냥 죽으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의 저자인 남정욱은 숭실대 겸임교수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힘을 줘도 모자랄 판에 죽으라니? 그러나 정작 책의 내용은 다르다. 말 그대로 ‘현실 맞춤형’이다.

물론 100% 모든 청춘들에게 맞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도 책 도입부에 ‘이 책은 상위 20%가 아닌 나머지 80%를 위한 책’이라고 직접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남 교수는 김 교수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오히려 되는대로 살아온 평범한 인생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할 것이 없어 공사장 잡역부로 일했고 우연히 본 구인 광고를 보고 드라마 작가의 길도 걸었다. 카피라이터, IT회사 사장, 출판사, 영화판에서도 일을 했다. 남 교수가 걸어온 길만 봐도 참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단순히 ‘현실은 이렇다’라는 식의 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도 있고 회사가 진정 원하는 인재상, 인터뷰 글 등 다양한 주제로 꾸며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넌 멋있어, 청춘은 최고야’를 연발하는 기존의 자기계발서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책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가끔 20대가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을 들으면 기가 막히다. “사람이 사는 데 돈이 제일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나 내뱉을 자유가 있는 말이다. 당장 내일이 불안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이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허위이고 자기기만이다.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돈이 나가면 행복도 대부분 따라 나간다. 이 사실은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현실적이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부분이다. ‘못해도 중간은 가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남 교수는 알려주고 있다.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남들 안 하는 건 하지 마라 △취미? 그딴 거 없다 △친구에 목매지 마라 △장점을 교묘히 숨겨라 △초심을 버려라 △실패를 두려워하라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기존의 ‘힐링’을 목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와 정 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읽다보면 뼈저리게 현실적인 충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계발서는 청년들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힐링’ 바람도 불안을 타고 불어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었다. ‘괜찮아, 모든지 잘 될 거야. 넌 청춘이잖아’식의 위로는 그 순간뿐이었다. 결국 힐링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이 돼 날아갔다.

그리고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청춘의 민낯’을 말해주는 충고가 다시 바람이 돼 날아올 기세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날아갈까. 물론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어딘가 신선하다. 이 책은 청춘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을까.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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