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의 중심에는 ‘이승만 인맥’이 있었다
대한민국 건국의 중심에는 ‘이승만 인맥’이 있었다
  •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5.05.2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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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 발간(김용삼 지음)

국내 대표적인 ‘이승만 전문가’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이 <이승만과 기업가시대>(북앤피플),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북앤피플)에 이어 이승만 관련 세 번째 저서를 발간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6‧25 전쟁에서 공산주의를 물리치는 데 기여한 국내외 인물들을 총 정리한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백년동안)이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을 바로세운 건국의 ‘영웅’들은 대부분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인연을 맺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건국 주역들을 소개하는 이 책은 이승만 인맥의 ‘대해부도’이기도 했다.

월간조선 편집장을 지낸 저자는 이승만이 쓴 <청일전기>를 해제하는 작업을 하고, <이승만과 기업가시대>,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등을 집필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이승만의 업적과 역할에 대해 연구해 왔다.

왜 이승만인가? 저자는 해방 공간에 이승만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비록 분단된 형태로나마 대한민국이 건국되었고, 공산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고 답한다. 한국의 운명이 걸린 결정적인 사건의 배후나 전면에는 언제나 이승만을 든든하게 지지하는 그의 인맥이 존재했던 것이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신념의 동반자였던 이승만과 맥아더

대표적인 인물이 6‧25 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과 미국의 6‧25전쟁 참전 및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끈 덜레스 미 국무장관 등이다. 맥아더 장군의 공로는 언론과 각종 매체를 통해 많이 다뤄졌지만, 1940~50년대 미국과 세계를 움직였던 그가 이승만과 이전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많은 독립운동의 갈래 중에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했던 것은 이승만의 재미(在美) 독립운동이었던 셈이다.

이승만과 맥아더의 친교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조지워싱턴 대학‧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사와 박사 과정을 밟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맥아더는 당시 백악관과 국방성에서 근무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특히 기독교 정신과 반공‧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공통점으로 자리했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이런 가치관의 공유가 두 사람을 더욱 끈끈하게 이어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건국, 6‧25 전쟁에서 이승만에게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맥아더의 참모장이었던 휘트니 장군은 “맥아더 장군은 이승만 박사야말로 결단성 있고 타협할 줄 모르는 당대의 영웅적인 항일 투사라고 항상 칭찬했다”고 회고했다. 맥아더의 첫 번째 부인의 부친이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이승만의 후원회 멤버이기도 했다.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1953~1959)과 이승만은 조지워싱턴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 동문 관계였다. 덜레스는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6월 17일 애치슨 당시 미 국무장관의 고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뒤 일본에 머무르던 중 6·25가 발발하자 본국에 “미국의 군사력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냄으로써 당시 미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에 미군을 파병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무장관이 된 1953년 8월에는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에 조인을 했다.

 

밴 플리트 주한 미8군 사령관은 이승만을 아버지처럼 따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미8군 사령관에 부임한 밴 플리트 장군은 미군 장비를 한국군에 넘겨줘 3개 사단을 증강하고, 한국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늘리는 작업에 결정적 후원자 역할을 함으로써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라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백선엽 장군은 밴 플리트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을 마치 자식이 부모를 대하듯 했고, 존경을 넘어 숭배하는 자세였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또 개화기 조선에 온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교육, 외교, 의료 등의 업적을 소개하며, 이승만과 선교사들의 인연도 설명한다. 이승만과 미국, 그리고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와의 만남에는 선교사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과거 시험에 10번 낙방한 청년 선비 이승만은 1895년 4월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들어가면서 개화의 눈을 뜨게 된다.

배재학당에서 이승만은 아펜젤러를 비롯한 달젤 벙커, 호머 헐버트, 윌리엄 스크랜턴 등의 선교사들로부터 신교육을 받게 된다. 스크랜턴은 후에 이승만이 고종의 특사로 미국으로 떠날 때 미국 각계 인사들에게 추천장을 써 줌으로써 이승만이 미국에 정착하는 데에 큰 힘을 보태줬다.

당시 미국의 주류 사회에 속했던 이들 선교사들은 이승만이 미국에 유학하는 과정에서 미국 각계의 주요 인맥을 소개함으로써 이승만이 그들과 친교를 나누고 장차 도움을 받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는 국가를 세운 이승만. 이 책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국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는 물론,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한 재미교포와 유학생들, 그리고 외국인 선교사와 상인, 학자, 외교관, 기업인들이 힘을 합쳤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밝히고자 시도한 작업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의 중심에는 그들을 이끈 이승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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