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대’의 복원
‘잃어버린 시대’의 복원
  • 이주천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06.03 0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김일영 교수의 <건국과 부국>을 읽고

김일영 교수, 1950년대와 60년대를 고귀하게 간직하고 영원히 기억해야 할 자랑스런 시대로 탈바꿈시켜

혹자는 “5·16이 없었으면 군사정권의 등장도 없었을 것이고 5·18 민중의 아까운 희생이 없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주장하면서 5·16을 저주한다. 그것은 민주화가 산업화 과정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란 산업화의 역사적 과정을 이행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한 정치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고(故) 김일영 교수(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다. 김교수는 2009년 만 49세로 한창 연구에 정진할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건국과 부국>은 김일영 교수의 유고 저서로서 이 의문에 명쾌하게 답하고 있다. 김 교수는 균형 집힌 시각에서 사실과 이론을 조화롭게 접목시켜 대한민국 정치사를 분석하고 또 재해석하는 일관성 있는 학술 작업을 통해정치학계에 공헌해 왔다. 그는 지난 1980년대 이후 풍미했던 우리사회를 그릇되게 인도해 왔던 수정주의 사관(史觀)의 파도를 잠재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책은 현대 한국사 중에서 해방 후부터 박정희 유신시대까지를 포스트 수정주의적 흐름 속에서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건설과 산업화 즉, 이승만의 건국(建國) 시기와 박정희의 부국(富國) 시기를 다루고 있다.
 
우선 건국 부문을 살펴본다면,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국가형성 및 국민형성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부산 정치파동도 민주 대 독재라는 이분법에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에 대한 행정부의 우위가 확립되는 일종의 정치과정으로 파악한다.

▲ 김일영 교수는 386세대가 폄하하고 부정한 1950~60년대를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랑스러운 시대로 탈바꿈시켰다.

균형감각으로 바라본 한국 현대사 

이승만의 반일(反日)정책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일본을 중심으로 구상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해 반기(反旗)를 드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1950년대 말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에 대 한미국의 대외정책의 변화는 이승만의 몰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파악한다.

김 교수는1950년대를 단순한 ‘불임(不姙)의 시기’로만 보는 수정주의 해석을 탈피하여, 1960년대 이후의 발전과 역동성을 준비하는 ‘맹아(萌芽)의 시기’로 파악했다. 

김 교수는 장면 정부의 단명(短命)과 박정희 정부의 급속한 경제발전을‘발전국가’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장면 정부는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라는 외적 충격에 의해 무너지기 전에 내적 유약함과 자기 분열의 자충수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장면 정부가 만들어 놓고 미국 행정부가 권고한 경제개발계획과 국토개발계획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이다. 장면 정부가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권의 무능력으로 실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 5·16 군사 쿠데타가‘구국의 혁명’ 으로 진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묵인이나 방조 때문만이 아니라, 장면 정부의 유약함과 윤보선 대통령의 근시안적 판단력이 한 몫 했다는 것이다(pp.322~331). 

김 교수에 의하면, 5·16은 무장한 소수 군인들의 군사정변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킨 일종의 ‘혁명’이었다. 소련 볼셰비키 혁명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1917년 11월 7일과 8일, 레닌과 트로츠키를 위시한 볼셰비키파가 주도하여 일으킨 무장폭동은 명백한 쿠데타다(박무 성, <격동의 서양 20세기사>, 한울아카데 미, 2002, pp.113~116). 그런데 볼셰비키 쿠데타는 소련을 사회주의-공산주의적사회로 급속도로 변화시켜 후일 소련의 사회주의 역사가들에 의해 볼셰비키 혁명으로 해석되었고, 이를 서방의 역사가들이 흔쾌하게 수용했던 것이다. 

즉 볼셰비키 쿠데타가 후일 볼셰비키 혁명으로 전환되었듯이, 5·16 군사 쿠데 타도 5·16 군사혁명으로 전환되었다고 해도 결코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

김 교수는 박정희 군부세력은 5·16 군사 쿠데타로 출발했지만 마침내 집권에 성공하여 후일‘혁명’의 제도화 과정(pp. 332~339)을 통해 정치권에 뿌리를 내리면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교섭 등을 추진하면서 근대화, 공업화를 통해 한국 사회를 크게 탈바꿈 시켰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보다는 경제발전 

박정희가 선택한 것은 민주주의보다는 경제발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반된 수많은 희생은 가치 선택의 결단에 부수되는 불가피한 희생이었다는 것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파병도 맹목적으로 비판만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발전국가의 부족한 물질적 기초를 메우는 데 있어서 한일 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이 결정적으로 공헌했다는 점에 대해서 이의(異議)를 달지 않는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적 성공 이유는 민주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런 주장을 비교사적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다른 산업화에 성공한 유럽 선진국의 경우,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병행하여 추진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화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진행된 현 시점에서나 적용 가능한 병행론을 가지고 박정희 정부의 비민주적(권위주의적) 성격을 단죄(斷罪)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민주주의’를 신주단지처럼 여기면서 모든 과거 한국현대사인물에 대한 잣대를 ‘민주와 독재’의 이분법으로 구태의연하게 평가하던 기존의 국내 정치학계에 지적(知的) 충격을 안겨줬다. 이는 역사학의 사례를 중시한 김 교수의 탁월한 연구 역량과 뛰어난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해서 이뤄진 값진 학문적 결산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김 교수는 역사가가 아니지만, 그 시대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서 냉정하게 평가해 보는 균형있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종합적 거시적으로 볼 때 저자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의 지도력과 부국의 아버지 박정희의 지도력을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 교수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지도력을 일방적으로 찬양, 미화하거나 그들 정치력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우리의 후대 세대, 특히 5공 시절 대학 생활을 한 80학번 세대가 폄하하고 또 부정하려고 애쓴 시절, 한마디로‘잃어버린 시절’이다. 

김 교수의 책은 이 시대를 결코 잃어버린 시절이 아니라고 귀하게 간직하고 영원히 기억해야 할 그리운 시대, 자랑스런 시대로 탈바꿈시켰다. 

김 교수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수정주의 연구 풍조에 대한 이정표를 새로 세웠다. 이 시대의 자료를 재발굴하여 귀중한 연구를 통해 후손들에게 과거의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발자취를 올바로 전달하는 일은 남아 있는 우리 세대의 귀중한 책무가 되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