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중요성 일깨운 역사적 전쟁
지도자의 중요성 일깨운 역사적 전쟁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승인 2016.07.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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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읽기] 투키디데스 著,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리스 세계가 힘을 합쳐 페르시아를 물리친 이후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세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전한 이들은 공동의 적(敵)이 사라지자, 도시국가 간에 패권 경쟁으로 분열하여 서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었다.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04)은 대(對)페르시아 전쟁 승리의 주역이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패권 다툼 과정에서 발발했다. 

출발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 세력을 지중해에서 완전하게 축출하기 위해 아테네에 동조하는 도시국가들을 묶어 델로스 동맹을 결성한다. 처음에 자유 수호를 위한 공동전선으로 시작된 동맹은 아테네가 동맹국들에게 지나친 공물을 요구하면서 다른 국가들에게 짐이 되었다. 결국 아테네가 동맹국에게 교만하게 구는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면서 그리스 세계의 분열을 자초했다. 

아테네의 독주를 우려하던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대한 동맹국들의 민심 이반을 보면서, 이미 느슨하게 결성되어 있던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결속을 강화하며 델로스 동맹과 맞서게 된다. 이로 인해 두 강대국의 패권을 중심으로 그리스 세계가 양분된다. 이 상황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역사가들은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27년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가장 부질없고 참혹했던 소모전이었다고 비판한다. 특히 만개했던 그리스 문명의 힘을 전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소진시켜 마케도니아에게 패권을 내주고, 곧이어 등장한 로마에 무릎을 꿇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해상전과 지상전의 위력 대결의 양상을 보였다. 아테네는 지상전에서 밀리다 보니 아테네와 피레우스 항을 잇는 성벽에 의존한 수성 작전을 폈다. 농촌 지역의 농민들을 대거 아테네 성벽 안으로 피난시키고 아티카 전역을 포기하자 농촌의 가옥과 전답은 스파르타 군의 약탈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더구나 도시로 피난온 민중의 보건 위생이 열악해져 역병이 돌고, 수많은 시민이 죽게 되면서 싸울 의욕마저 꺾인다. 

게다가 페리클레스 사후(死後) 무모하게 시켈리아 정벌에 나섰던 아테네의 대함대가 시라쿠사에서 몰살당한다. 함대 건조와 선원 자원이 부족해지자 지상 전력이 막강했던 스파르타에 항복하고 만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패배는 시켈리아 원정과 같이 잘못된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현명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페리클레스처럼 민중들이 과신할 때 그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과감하게 지적하고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판단력과 용기를 갖춘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기록은 정치가의 포퓰리즘과 민중들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결합할 때 어떤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생한 교훈을 준다. 예나 지금이나 민중을 선동하거나, 민중에 끌려 다니며 이들의 무절제한 요구에 영합하려는 지도자가 많을 경우 국가는 쇠락하기 마련이다.

요즘이야말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설득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소신과 식견을 갖춘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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