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 참변을 아십니까?
자유시 참변을 아십니까?
  • 조형곤 역사정립연구소 소장
  • 승인 2016.07.29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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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자유시 참변 95돌 추모 기행

자유시 참변을 겪고 임시정부는 모두 반공(反共)으로 돌아섰으며, 이때부터 독립투사들은 국제정세에 눈뜨면서 글로벌 독립전쟁 펼쳐. 그 주인공이 이승만  

조형곤 역사정립연구소장은 자유시 참변 95돌을 맞아 지난 6월 24일에서 7월 2일까지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 김규민 영화감독, 조성희 전북학부모연합 대표 등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고 귀국했다. 일행은 대한독립군단이 95년 전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대한독립군단의 투쟁사와 자유시 참변의 현장을 답사했다. 조형곤 소장의 기행문을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독립전쟁사에서 가장 큰 참극이 자유시 참변입니다. 자유시 참변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무렵의 국제정세를 살펴봐야 합니다. 

피로 물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온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식민지 조선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지구마을을 놀라게 한 3·1 만세는 곧 그 환영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수유리 봉황각에 가보셨습니까. 조선의 지도자들은 이미 1912년부터 7년 동안 3·1 만세를 준비해왔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분들은 꼭 가셔서 삼가 옷깃을 여미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은 곧 크게 실망합니다. 그 민족자결주의는 1차 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 조선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 등이 가졌던 식민지를 영국과 프랑스 같은 다른 열강들이 차지하게 못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었을 따름입니다. 

오히려 1차 대전 끄트머리에 터져 나온 볼셰비키 쿠데타(러시아 혁명이라는 운동권 용어를 이제 그만 썼으면 합니다)를 핑계로 연해주를 넘어 시베리아까지 파고든 일본군들 탓에 독립전쟁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져 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봉오동-청산리 대첩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도를 바꾼 1894년 갑오전쟁부터 자그만치 사반세기를 승전보를 울리며 군사대국이 된 일본의 정예사단을 식민지 조선의 보잘 것 없는 독립군들이 1920년 6월부터 10월까지 만나는 족족 궤멸시켰으니 일본으로서는 망신살이 뻗쳤을 뿐만 아니라 대륙 침략에 엄청난 걸림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이뤄낸 한인 독립군의 뿌리를 뽑으려 만주의 우리 동포들을 학살하는 경신 참변을 일으킵니다. 이에 독립군들은 동포들을 살리려 어쩔 수 없이 밀산으로 옮겨갑니다(밀산에서 만주의 바이칼인 흥개호를 건너면 우수리스크가 나옵니다). 그 곳에서 모두 모여 뒷날의 새로운 독립전쟁을 꾀하며 하나의 군대를 세우니 3500 장병의 대한독립군단이었습니다. 

▲ 중국 화룡시에 있는 나철, 서일, 김교현 3종사 묘역. 이 3종사와 대종교는 독립전쟁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대한독립군단의 비극 

그러나 이때부터 모든 일이 꼬입니다. 일본의 물샐 틈 없는 봉쇄로 개점휴업에 놓인 독립군들은 레닌의 달콤한 선동에 이끌립니다. 대한독립군단의 총재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백포 서일과 백야 김좌진 등은 좀 더 때를 기다리자며 말리지만, 마음 급한 이들은 혹시나 하여 국경지대를 따라 스보보드니(자유시)까지 갑니다. 

그러나 믿었던 소련 공산당은 약속을 저버리고 한인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을 내세워 일본과의 밀약에 따라 대한독립군단을 무장해제 했으며, 그에 맞서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살아남은 이들도 이르쿠츠크까지 끌려가 대한독립군단이 아예 와해되어버립니다. 

이때부터 독립전쟁은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나중에 남북 만주에서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이 용맹을 떨치지만, 끝내 1920년의 군력(軍力)을 되살리지 못하고 만주에서 대한의 이름을 내건 독립전쟁세력은 1938년 9월 6일을 끝으로 사라집니다. 

▲ 우스리스크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고택. 최재형은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과 함께 독립군 600명을 훈련식킨 다음,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함경북도 경원의 신아산, 회령 영산에서 일본수비대를 궤멸시켰다.

자유시 참변 95돌 추모기행을 떠난 까닭 

우리는 이 대목에서 다시 역사를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종북 세력만 아니라 탈북한 동포들과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조차 속고 있는 엄청난 거짓말이 있습니다. 바로 1937년 6월 4일 일어난 보천보 사건입니다. 

“김일성은 분단과 6·25의 원흉이지만 그래도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하지 않았느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1932년 2월 패악질을 말리려 눈길을 헤쳐 온 고동뢰 소대장을 비롯한 독립군 소대 열 분을 새벽에 들이쳐 죄다 죽인 역도의 수괴가 만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김성주이며, 그는 뒤틀린 영웅 심리에 들떠 그 뒤 중국 공산당의 졸개로 소련 공산당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마침내 베리야의 간택을 받아 김일성의 이름을 얻게 됩니다(보천보 사건은 말할 까닭도 없는 비적 떼들의 노략질이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꼭 보시길. <김일성 신화의 진실>김용삼 지음, 북앤피플) 

김성주 이야기를 꺼낸 까닭이 있습니다. 우리가 휴전선 아래에서 섬이 되어 살아온 나날이 일흔 해가 넘다보니 잘 느끼지 못하지만, 만주(연해주까지)는 고조선에서부터 고구려 발해로 이어져오는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고향이자 상징과도 같은 땅이며, 독립전쟁세력에게 만주의 기지는 곧 권위 그 자체입니다(조선사편수회에서 가장 애쓴 작업이 조선 사람들의 머리에 ‘반도인’을 심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한반도는 저주의 말입니다. 어쨌든 이제까지는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대종교와 이상설은 그 곳 연길의 용정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 그리고 밀산의 한흥동에 이르는 세 꼭지의 기지를 세운 것입니다 (2017년 3월 2일은 이상설 어른의 서거 100 주기입니다. 이 거룩한 날마저 또 운동권들의 선동 마당으로 넘겨준다면 교과서 전쟁의 앞날은 보나마나 일 듯합니다). 

대한독립군단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그 세 기지 또한 사라짐을 뜻합니다.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 맞이한 그 완벽한 진공(眞空)에서 태어난 절대악(惡)이 곧 김성주입니다(왜 모택동이 끝까지 백두산 절반을 고집했고, 그 후손들은 동북공정에서 국사수정공정까지 난리를 치는지 가벼이 보면 아니 됩니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 안의 교과서 전쟁보다 훨씬 더 큰 총성 없는 전쟁입니다). 조선족과 고려인이 재중(在中) 동포와 재러 동포로 돌아올 때까지 그 저주는 이어질 것입니다. 

이어지는 또 다른 까닭은 적색 제국주의의 악연을 깨우치려 함입니다. 백색 제국주의의 아류인 일제(日帝)와의 악연(惡緣)은 오늘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아우성이지만 적색 제국주의와의 악연은 놀랄 만큼 모를 뿐더러, 모름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릅니다. 

▲ 당벽진에서 추모제를 지내는 탐방단.

운동권 사관(史觀)을 넘어 통일 사관으로… 

악연의 처음은 자유시 참변입니다. 그 바람에 독립전쟁세력은 만주를 통째로 잃고, 그 뒤 펼쳐지는 동아시아 세력 판도에서 상수(常數)로 발돋움도 못해보고 종속변수로 끌려 다니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악연은 1937년 9월 9일 재러 동포의 참극인 강제 이주 허울의 ‘뿌리 뽑기’ 학살입니다. 셋째 악연은 1945년 11월 23일 해방 백일을 기념이나 하듯 짓밟은 신의주 학생의거입니다(2차 대전 뒤 처음으로 스탈린주의에 맨손으로 맞선, 3·1만세 만큼 자랑스러운, 인류사의 금자탑입니다. 안타깝게도 ‘바르샤바의 봄’은 알아도 이를 모르는 지식인들이 넘칩니다). 

이때부터 1948년 3·1만세 재현시위와 영우회 항쟁까지 평양의 해방정국은 서울보다 더 목 메이고 피로 얼룩졌습니다. 이 세 악연을 바탕으로, 해방된 나라가 분단되고 6·25의 참극이 빚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1921년 6월 28일은 그저 지나간 한때의 안타까움이 아니라 오늘도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참변이자, 한 세기에 이르는 숙명의 과업입니다. 

우리는 그를 온 누리에 알리려 ‘자유시 참변 95돌 추모기행’을 떠난 것입니다. 아울러 저주와 자학의 운동권 사관(반통일-분단 고착의 민중사관)의 세뇌와는 전혀 다르게, 백색 제국주의와 적색 제국주의를 한꺼번에 맞서 싸우면서도 살아남아 기어이 대한민국을 세운 기적, 인류사에 딱 하나 뿐인 기적을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자유시 참변을 겪고 임시정부는 모두 반공(反共)으로 돌아섰으며, 이때부터 독립투사들은 국제정세에 눈뜨면서 만주와 연해주를 넘어서서 카이로와 포츠담에 이르는 사반세기의 글로벌 독립전쟁을 펼쳐나갔던 것입니다. 서일은 다가올 비극을 깨우치려 자진(自盡)하셨으며, 김좌진은 그에 맞서다 돌아가셨고, 그 뒤를 이어 글로벌 독립전쟁의 흐름을 이끈 지도자가 이승만이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뼛속까지 운동권 사관에 찌든 말기 암 환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살리고자 나섰습니다. 태어나서는 아니 될 나라가 아니라, 참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건국의 여명을 밝히는 횃불, 분단과 반통일의 운동권 사관을 넘어설 통일사관의 처음이 곧 자유시 참변입니다. 

이제 자유시 참변 100돌이 다섯 해도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군경, 대한민국의 잘 나가는 사람들을 자유시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야 운동권과의 역사전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비로소 통일의 헌정사를 우리 손으로 써나갈 때 자유통일대한민국의 눈부신 해가 떠오를 것입니다. 

▲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스보보드니 수라셰프카역의 1921년 6월 28일 역사지도.

자유시 참변 추모기행, 그 가깝고도 먼 길 

지난해에 아시아투데이와 코리아글로브 두 곳이 함께, 고작 세 사람이었지만 자유시 참변의 발자취를 좇았습니다. 먼저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 하늘에 추모기행을 아뢰었습니다(걱정 마시길. 지난해나 올해나 온갖 종교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 대목을 못 알아들으면 독립전쟁사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종교인들이 그때 어른들보다 그릇이 작습니다. 그래서 늘 운동권들에게 당하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까닭을 다 떠나 황해를 동아시아의 지중해로 본다면 딱 한가운데가 마니산입니다. 추모기행은 곧 지정학을 온몸으로 배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돈도 없고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아 인천→하얼빈→흑하→블라고베센스크→스보보드니→블라고베센스크→흑하→밀산→화룡→백운평→용정→연길→인천의 길을 밟았습니다. 말 그대로 거점을 밟는 길이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청산리에서 일본군 정예사단을 포위 섬멸했던 독립군들이지만 이 곳에서는 거꾸로 비참하게 토끼몰이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중화주의에 빠져 살았던 조선의 후예들은 이렇게 역사의 매순간 뜨거운 피를 뿌리고 엄청난 수업료를 치르며 오늘 대한민국을 세워냅니다. 

그래서 95돌이 되는 올해는 대한독립군단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뒤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제 주머니를 털어 아홉 사람이 아흐레 동안 추모기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길은 이랬습니다. 인천→연길→화룡→(어랑촌→갑산→백운평)→용정→밀산→수분하→이만→스보보드니→하바로프스크→인천. 

지난해는 백두산 천지 사진으로 영정을 갈음했지만 올해는 세 나라 국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태극기와 오성홍기와 러시아 국기. 화룡 3종사 묘에서 느끼는 바이지만 그리 오랜 세월 후손들은 알지도 못하고 마음조차 두지 않았음에도 그 곳의 동포들, 그리고 지역 당국에서는 묘역을 깔끔하게 잘 관리해 왔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빈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대한독립군단의 길을 해마다 간다면 그래서 머잖아 추모비도 세우고 역사도 되살린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화룡시에, 밀산시에, 스보보드니 시에 한중(韓中) 우호친선탑과 한러 우호친선탑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만 가지고 아니 됩니다. 오늘 그 곳에 살고 있는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열들께서도 참으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정성이 모자라 만주에서는 흠뻑 젖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제야강가에 이르렀을 때 날이 거짓말 같이 활짝 개어 참으로 맑았습니다. 우리가 추모제를 다 지내고 호텔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하늘은 천둥번개와 소낙비를 밤새 내렸습니다.

추모기행단원 한분은 그 느꺼움을 담아 선열들께 시로 바쳤습니다(다들 종교를 떠나 선열들의 음덕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할 수는 없지만 추모제를 앞뒤로, 온 분들과 가장 가까운 두 분이 고국에서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모두 기적같이 돌아오셨습니다). 

스보보드니의 밤이여! 

비가 쏟아진다./ 번쩍 번개까지 덤으로/ 빗줄기 하늘과 땅을 잇는다./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스보보드니의 밤을 적신다.// 어느덧 아흔다섯 해./ 피울음이 말라붙어/ 검은 흙이 되었다./ 사무친 넋이 뒤엉켜/ 제야강은 늘 푸르다.// 나라 잃은 장졸들이/ 갈 곳이 어드메뇨./ 먼 옛날 조상들의 그 자리. /핏발 선 후손들이 다시 섰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슴조차 막혀/ 하늘마저 마른 울음을 삼킨다./ 천둥이여 내리쳐라./ 아린 땅을 가르고/ 목 메인 쓰라림을 쓸어버려라.// 이제서야 그날을 기리나니/ 3500 무궁화 송이여./ 자유통일대한민국에 나투소서./ 문득 다가선 새벽./ 스보보드니는 비로소 피어난다.// 동이 터온다 희뿌옅허니./ 묻노니 그대 마련했는가./ 여쭙나니 선열들이시여./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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