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같은 소리하고 있네’… 영화 속의 기자들
‘진실 같은 소리하고 있네’… 영화 속의 기자들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2.07 03: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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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살바도르> <대통령의 음모> 등 기자를 소재로 한 영화

진실을 추적하는 문제는 영화가 즐겨 다루는 소재이기는 하다. 진실은 정의일 수도 있고, 상대를 움켜잡을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구는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필사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 할 수도 있다. 

▲ 조희문 영화평론가·미래한국 편집위원·중앙대 영화학 박사·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진실이 약자를 돕거나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을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거래의 대상이 되면 돈과 교환되기도 한다. ‘비밀’은 진실의 다른 말이다. 진실에 관한 한 그만큼 극적인 요소가 많다는 뜻이다. 

진실을 추적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집단이 기자들이라고 믿기 쉽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세상에 진실을 알리겠다며 목숨을 던질 각오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스캔들을 찾아서 명사들의 뒤를 좇는 파파라치들도 흔하다. 더러는 보도를 무기 삼아 취재 대상을 협박하거나 흥정을 하기도 한다. 

<슈퍼맨>(1978)에 등장하는 ‘슈퍼맨’의 평소 직업은 기자다.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으로 데일리 플래닛 신문사에 기자로 근무하지만 무엇을 취재하는지 모호하다. 취재하는 일보다 위기에 빠진 시민을 구하거나 지구를 구하는 일에 더 바쁘기 때문이다.

기자 직업은 그의 신분을 숨기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 신분을 감추고 신문사에 위장취업한 언더커버인 셈인데, 해고당하지 않고 계속 다니는 걸 보면 사주의 특별한 배려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본업보다 연애하는 데 더 시간을 보내는 기자도 있었는데. <지독한 사랑>(1996, 이명세 감독)의 주인공 영희는 문화부의 문학 담당. 시인이자 대학 교수인 영민의 시평(詩評)을 쓰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유부남 취재원과 연애에 빠진다.

다른 사람 눈을 피해 짬짬이 만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한적한 바닷가의 집을 구해 아예 동거에 들어간다. 기자도 사람인 이상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연애 감정에 빠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일은 언제 하나 싶을 정도로 ‘연애 우선’의 인생을 사는 기자의 모습으로 남은 사례다. 

영화 속 기자들의 천태만상

<로마의 휴일>에 등장한 가십 전문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 역시 직업인으로서의 기자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연애 감정에 빠져 기사 공개를 포기하는 ‘어이없음’을 보여준다. 이렇다 할 기사 거리를 찾지 못해 회사에서 잘릴 지경에 빠진 조의 처지는 처량하다. 당장 하숙 방값 낼 돈이 없어 절절매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요정 같은 공주가 눈앞에 나타난다. 

유럽 각국을 순방 중인 어느 나라의 공주가 빡빡한 일정에 지친 나머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기자와 마주친 것. 오 마이 갓!! 공주의 특별한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면 특종 중의 특종을 잡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조는 동료 사진기자를 불러 비밀스럽게 공주의 모습을 촬영한다. 여기까지는 직업정신 철철 넘치는 열혈기자의 모습을 보이는데, 이후부터 살짝 방향이 바뀌면서 로맨스에 콩깍지가 덮인다. 

취재 대상과 사랑에 빠진 것. 그렇다고 ‘아이 러브 유’ 같은 대사를 날리지는 않지만 그녀의 비밀을 지켜주며 보호해주려는 행동을 보인다. 같이 취재에 나섰던 사진기자가 ‘너 제정신이냐’는 듯 핀잔을 주지만 사랑에 빠진 총각 기자는 미련 없이 특종을 팽개친다.

연예전문기자가 아련한 짝사랑을 위해 두 번 만나기 힘든 독점 기사를 포기한 것이니 위대한 사랑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고 찬양해야 하는지 천하에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험담을 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영국 왕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린 사건에 비견할 만할 결단이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살바도르>(1988, 올리버 스톤 감독)는 취재로 돈 벌 생각을 하며 살바도르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전한 기자의 생존기를 다룬 케이스. 한때 잘 나가던 사진기자 리처드 보일(존 우즈)은 냉소적인 태도와 좌충우돌하는 기질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궁리 끝에 좌우익 갈등으로 내전 상태에 돌입한 엘살바도르로 가서 한 건 잡으려 한다. 극도로 부패한 엘살바도르의 현실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옛 연인을 만나지만 신변 위협은 갈수록 심해진다. 

결국 연인과 그녀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리처드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을 불법 입국자라는 이유로 국경에서 되돌려 보낸다. 이 영화에서 기자는 부패한 정치권력이 무고한 인권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증언하는 고발자 역할을 한다. 

취재과정에서 기자 업무보다 난민구조 업무에 목숨을 건 사례는 <킬링필드>(1984)에도 등장한다.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로 인접한 캄보디아가 내전에 시달리다가 크메르 루주 세력에게 함락되던 무렵, 프놈펜 주재 뉴욕타임스 기자 시드니 쉔버그는 미군의 민간인 오폭사건을 취재하던 중 프놈펜 함락 상황과 마주친다.

신변이 위험한 처지. 안내와 통역을 담당하던 현지인 기자 디스 프란과 함께 프랑스 대사관으로 피신을 시도하지만 디스 프란은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당한다. 강제수용소에 수감되는 디스 프란. 시드니는 필사적으로 그의 구조 작전을 시도한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드러난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 이어지지만 기자는 동료의 탈출을 돕는다. 

<대통령의 음모>(1976)나 <스포트라이트>(2015)는 사건의 핵심을 찾으려는 기자의 분투로 가득 채운 교범 같은 영화로 꼽는다. 

<대통령의 음모>는 미국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사임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워싱턴포스트 신문의 밥 에드워드, 칼 번스타인 기자의 활약을 묘사한 실화 영화. 

1972년 6월 17일 새벽 2시 30분 경. 미국 워싱턴 소재 워터게이트 호텔 안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한 5명의 괴한이 체포된다. 이들은 민주당 선거운동 내용을 도청하기 위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 침입한 닉슨 측 공작원들, 전직 FBI 요원 고든 리디, CIA 요원 하워드 헌트가 총지휘를 맡았고, 배관공으로 위장한 정보부 요원들이었다. 그러나 우연한 일로 이 도청 장비가 발각되고 범인들이 체포되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 주거 침입 정도로 여겨졌다. 그해 치러진 선거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고 닉슨은 예상을 뒤엎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의 재판 과정에서 닉슨이 이 사건의 뒤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의회의 탄핵에 직면한 그는 끝내 대통령을 사임하고 말았다. 1970년대 초 미국 정가와 사회를 뒤흔들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대강이다. 

사건의 취재를 맡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는 이들이 CIA와 관련돼 있고, 그 배후에는 현직 대통령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을 갖는다. 편집국에서도 계속 취재를 승인하고 노련한 기자 칼 번스타인을 취재에 합류시킨다. 본격적인 취재가 진행되자 ‘딥스로트’라는 익명의 제보자가 등장하고 점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후속 기사가 이어지자 닉슨은 ‘백악관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던 입장에서 ‘나는 모르는 일’로 바뀌었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사건은 대통령의 정직성 문제로 성격이 바뀌면서 탄핵 사건으로 치달았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의결되고, 상원에서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닉슨은 결국 사임하기에 이른다. 
 
시청률·구독률에 좌우되는 언론사 현실 묘사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이 유력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의 특별취재팀 ‘스포트라이트’의 활동을 다룬다. <대통령의 음모>와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에 뒀다. 보스턴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의 단서를 잡고 취재를 시작한다. 

취재팀은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지만 끈질기게 추적을 계속한 끝에 아동 성추행 사건이 광범위하게, 오랫동안 벌어졌는데도 은폐되어 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대통령의 음모>나 <스포트라이트>에 등장하는 기자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기자 모습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할 정도다. 취재 과정에서 닥치는 위험이나 위협에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용기 있는 인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취재활동은 개인적인 의지와 판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전폭적인지지 위에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란 점이 드러난다.

회사는 신문구독과 광고수입에 크게 영향 받기 때문에 거대한 권력집단이나 광고주의 압력과 마주치면 쉽게 거절하기 어렵다. 기자가 거대 사건의 취재를 흔들림 없이 계속할 수 있다면 기자보다 더 열정적인 사주의 판단이나 계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자들은 알고 있을까?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는 기자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기사의 정당성 여부가 회사차원에서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취업만 하면 꿈 같은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근한 연예부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에게 비치는 편집국 풍경은 아수라장이다. 

담당 부장은 미친 개처럼 으르렁거리며 기자들을 몰아대고, 이렇게는 더 이상 못하겠다며 사표를 던지는 소동도 일상처럼 이어진다. 그 틈바구니에서 눈치보고, 자조하고, 자위하며 기자들은 취재 현장을 드나든다. 지면에 비치는 기사는 사실인 경우도 있고, 허위로 만든 것도 있다. 적당히 뒤섞은 경우까지... 

부장이나 사장이 판단하는 기준은 취재와 기사가 회사에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다. 사회를 위한다거나 공익 같은 것과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수십 명 기자들의 월급과 운영비는 기자적 양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자들에게는 선정적인 기사를 요구하고, 그 기사를 두고 흥정을 하며 현장 취재와 회사 경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부장 하재관(정재영)의 캐릭터는 정의감 넘치는 기자보다 훨씬 현실적인 존재로 보인다. 

<네트워크>는 매스미디어 주도 사회의 이면을 신랄하게 비판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서라도 시청률(구독률)을 올리려는 치열한 모습은 <네트워크>(1976)의 소재다. 텔레비전 방송국 ‘UBS’의 뉴스 앵커인 하워드 빌은 한때 뉴스 분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청률 하락, 아내의 사망 등 악재가 겹치면서 인생의 위기를 맞는 처지다.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에서 뉴스 진행에 나선 퇴물 앵커는 1주일 후 방송도중 권총 자살을 할 것이라고 예고하는데, 이것이 파문을 일으킨다.   

어차피 끝장이라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는 하워드의 방송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다른 방송국에서 취재에 나설 만큼 이슈가 된다. 높은 시청률에 주목한 프로그램 기획자는 하워드에게 위선을 고발하는 성난 예언자의 이미지를 더해 ‘하워드 빌 쇼’라는 프로를 만들고, 메시아가 강림한 듯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영화는 매스미디어가 주도하는 사회의 이면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청자들이 보는 영상은 실제와는 상관없는 허상일 뿐이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여론을 이끌어간다고 자부하는 인물들조차 사실은 시스템 속의 일부일 뿐이라는 시선은 시니컬하다. 

<내부자들>(2015)은 언론이 정치와 권력, 폭력과 결탁해 여론을 이끌어가는 한국 사회의 음험한 속내를 나열한다. 정치권력은 부도덕하고 법은 권력의 시녀처럼 행동하며 기업인은 돈으로 정치를 조종하려는 세상으로 비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한 두 사람의 개인이나 특별한 집단의 완력에 흔들릴 만큼 허약한 수준인가 싶기는 하지만 영화는 부패한 세력이 공생적 기생관계를 이루며 주무르고 있다고 설정한 뒤 결국 단죄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영화가 상당한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것 같지만 특정 분야별로 상징적인 악당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들을 단죄하는 것으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결론짓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성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과 관련해 우리 언론들이 보여준 취재와 보도 행태는 어떤 유형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란스럽다. 대통령에 관한 논란 자체가 예상을 넘는 수준이기는 했다. 그럴수록 언론은 팩트 중심의 접근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할 터인데도 오히려 소문과 추측을 마구 퍼 나르고,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심판하고 단죄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특히 낮방송을 주도하는 종편 뉴스 프로그램은 주문을 외듯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절차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여론도 덩달아 춤을 춘다. 장마 비로 넘치는 개울에 폐수를 쏟아내고, 불타는 집을 향해 선풍기를 돌리는 형국이다. 어떤 영화보다도 더 자극적이며 선정적이다. 막장의 결정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현재의 언론 모습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실제 상황 만큼 흥미진진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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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단디 2016-12-10 10:58:18
ㅋㅋ 우리나라 기레기의 현실은 그냥 기사 잘 써줄테니까 돈 내놓으라는 것만 할 뿐이죠. 책도 못쓰고 공부도 못하겠고, 일도 하기싫고, ... 그냥 협박질하면서 돈 뜯어먹고 살아가는 거죠. 이번에도 김영란법때문에 그 마저도 못하니까 이판사판으로 뻔히 보이는 거짓말하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