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위상을 되찾게 해주겠다고? 대통령이 흔든 부산영화제
옛 위상을 되찾게 해주겠다고? 대통령이 흔든 부산영화제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영화평론가
  • 승인 2017.10.25 1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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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이슈는 문재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물론 준비하는 측에서는 미리 계획했겠지만) 영화제 현장을 방문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문 대통령은 일요일인 10월 15일 느닷없이(?) 영화제 현장에 나타났고, 영화 한 편을 관람한 뒤 영화 관계자들과 식사자리까지 이어갔다.

일국의 대통령이 영화제 기간 동안 현장에 나타나 영화 보고 영화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이런 저런 말을 듣는 것은 얼핏 여유로워 보이는 듯하지만, 대통령의 방문이 갖는 의미와 현장에서 드러낸 표현들을 들여다보면 공공연히 정치적 후원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읽힌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가 여러 개이지만, 특정하게 부산 영화제를 골랐다는 점, 문 대통령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점, 부산영화제가 지난 1-2년 사이 파행적 운영에 휩싸이며 부산시와 갈등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사퇴와 예산불법집행으로 인한 유죄판결, 일부 영화관련단체들의 참가 보이콧, 김동호 조직위원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이번 행사를 끝으로 사퇴할 것이라고 밝힌 점 등으로 인해 지금도 논란 중이다.

결국 현재의 조직위원장, 집행위원장이 물러나면 새로운 구성을 해야 하지만, 사실상 문화부나 부산시 등이 개입할 수 없는 구조에서 영화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화단체나 특정 집단이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서 대통령이 영화제에 등장하고, ‘옛날 위상을 되찾도록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 편에게 보내는 ‘지원 약속’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동안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외압에 흔들렸다고 하면서 정작 대통령이 정치적 지원을 약속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영화관에서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를 관람한 뒤 나오다 환영하는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연합

영화 보고 느낀 소감, 정책으로 실행

문 대통령은 재야 시절,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판도라>라는 영화를 보고는 원자력 발전소가 시민들을 위협하는 폭탄쯤으로 인식하는 듯한 감상 후기를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처럼, 고리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머리맡에 폭탄을 달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취지의 발언을 전했다.

영화는 원전 사고를 극단적으로 과장한 픽션이었지만, 마치 현실에서 금방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인식하며 영화가 묘사하는 상황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반응한 것이다.

어떤 일을 가정해서 말한다면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 없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자연 재해가 생길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폭발해서 우주의 일부가 사라질 수도 있다. 행성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고, 원숭이(유인원)가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탈원전 정책을 꺼내며 대한민국의 핵발전소를 모두 없애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영화를 보고 밝힌 생각과 입장을 대통령이 된 후에 그대로 현실 정책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된 기술로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 한국 원전에 대한 과도한 불신, 효율성과 친환경적 측면에서도 유리한 부분, 대체에너지 생산이 가져올 비용증가와 효율저하, 전기료 인상과 공급의 불안정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 같지 않다.

환경주의자들의 과장된 또는 일방적인 주장을 더 믿는 듯하다. <판도라> 영화를 보고 원전의 위험을 더 크게 느꼈는지, 평소 그렇게 생각하던 것을 영화를 보고 난 뒤 확신을 더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영화를 보고 발언한 내용들이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관련한 발언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부산영화제의 위상?

문 대통령은 영화제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 ‘부산 국제영화제의 옛 위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놓았다. 특히 ‘부산영화제의 옛 위상’을 언급한 부분은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부당하게 억압받고, 위축되었던 것을 되돌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얼핏 듣기에는 ‘영화인들이 마음 놓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밀어 주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돌아보자. 부산 국제영화제가 위축된 적이 있었던가? 참가 작품 수나 관객 수, 영화제 예산이나 규모는 해마다 늘었다. 어느 해의 경우는 전년도에 비해 관객 수나 참가작의 숫자가 줄어든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상승 추세를 이어왔다.

영화제의 위상은 무엇인가? 영화제가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는 모호하다. 흔히 칸, 베니스,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세계 3대 영화제라고 하지만, 캐나다의 토론토 영화제가 들으면 ‘무슨 소리’냐며 반박할 수도 있다.

베니스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의 서막을 연 개척자적인 경우로 꼽지만 지금의 위상은 불안하다. 1932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 부문으로 시작했다가 다음해에 독립적인 행사로 분리되었다.

초기에는 무솔리니 정권의 문화정책에 따른 정치적 성격이 드러났으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0-50년대를 거치며 국제적으로 평가받는 영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칸이나 베를린영화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데다 개최 시기가 비슷한 토론토영화제에도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토론토영화제가 북미 시장의 판도나 분위기를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인들 측에서는 베니스보다 토론토를 우선하는 경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1976년부터 시작한 토론토영화제도 한동안 몬트리얼영화제에 가리는 듯했지만 지금은 몬트리얼 뿐만 아니라 베니스, 베를린을 능가할 정도의 행사로 평가 받고 있을 정도다.

1985년부터 시작한 도쿄 국제영화제도 아시아의 종주를 지향하며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존재가 미미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영화가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분위기였고, 넘치는 자본과 기술이 결합함으로써 유수한 국제영화제의 위상을 곧 따라잡을 듯한 기세였지만 어느 사이엔가 그저 그런 군소 영화제 중의 하나로 줄어들고 말았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한국 영화계가 통째로 옮겨간 듯 한국 영화인들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때가 있었냐는 듯 무심한 분위기다.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던 마닐라영화제(필리핀), 뉴델리영화제(인도), 1954년부터 시작한 아시아영화제(1985년부터는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로 변경) 등도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영화제도 창설 이래 계속 명맥을 잇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위축되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국제영화제작자연맹(1933년 창설, 25개국 31개 영화사로 구성)이 공인하고 있는 국제영화제는 2016년 말 현재 51개. 경쟁영화제 15개, 비경쟁영화제 5개, 부분경쟁영화제 21개, 다큐멘터리.단편영화제 5개 등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공인받지 않은 수백 개의 국제영화제가 운영되고 있다.

한 두 번 열리다 사라지는 영화제가 적지 않고, 열린다 하더라도 규모나 위상 면에서 ‘동네잔치’ 또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 업계의 홍보성 행사로 치러지는 경우도 많아 정확한 숫자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전체 통계라고 해야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많은 영화제가 있었나?’ 또는 ‘이런 것도 영화제야?’라고 할 정도의 소박한 반응을 확인할 뿐일 수도 있다.

▲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개막식/연합

우리끼리 감격하는 부산영화제

부산영화제는 출발 당시에는 비경쟁 형태로 방향을 잡았다. 젊은 영화를 대상으로 심사하는 뉴커런츠 부문 등 일부에 대하여만 수상자(작)를 선정하는 경쟁 방식을 도입했다.

경쟁영화제 중 칸, 베를린, 베니스의 경우 경쟁부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제 등에서 상영하지 않은 영화, 상업적인 공개나 상영을 하지 않은 영화들로 한정하고 있다. 특정한 영화가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면(상영했다면) 이들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출품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첫 상영하는 경우를 ‘월드 프리미어’라고 하는데, 연륜과 관록 있는 영화제일수록 ‘월드 프리미어’를 기본 조건으로 한다는 뜻이다. 부산영화제의 경우도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되는 영화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영화들은 엄밀히 말해 유수한 국제영화제에 참가할 만한 영화가 아니거나, 그러지 못한 영화들의 상영일 뿐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 프랑스, 인도, 영국, 일본, 한국, 태국, 중국, 나이지리아 정도나 될까. 이외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영화를 만들기는 하지만 간헐적이다.

‘산업’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나라들이라 하더라도 한 해 동안 만든 영화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거나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제에서 원하는 영화는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감독의 신작이거나 새로운 경향의 영화여야 하지만 그런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토론토영화제처럼 월드 프리미어를 조건으로 내세우지도 않고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했거나 수상한 영화들에 대해서도 아무 문제없다며 상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몇몇 권위 있다고 자부하는 영화제들은 자존심처럼 그 기준을 요구한다.

제작하는 모든 영화의 숫자는 연간 수 천 편에 이른다 하더라도 영화제가 원하는 수준은 10-20여 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두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제작자나 감독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작품이 괜찮다 싶으면 어떤 영화제에 참가해야 하는지를 두고 가늠하겠지만, 대부분 칸 아니면 베를린, 베니스를 겨냥한다.

부산영화제를 목표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있을까? 있다면 연륜 있는 영화제에서 경쟁하기 어렵다고 미리 판단하고 차라리 좀 더 만만한 영화제에서 경력이나 만들자는 생각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부산영화제가 칸 영화에서 상영했거나 수상한 영화를 상영할 수는 있지만,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한 영화를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소개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부산 국제영화제 위상의 현재 수준이다.

부산영화제에 몇 나라 영화 몇 편이 참가했고, 관객이 몇 명 다녀갔다는 식의 평가는 영화제의 외형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는 있지만 내실이나 특성을 헤아리는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그동안 부산영화제가 ‘성공’했다는 표시는 주로 몇 개국에서 몇 작품이 참가했고, 개막작 티켓이 예매 몇 분 만에 매진되었는가, 레드카펫을 지난 스타가 몇 명이었는가, 전체 관객수가 지난해에 비해 늘었는가 줄었는가 같은 사항들에 집중되었다.

외형의 크기가 영화제의 성패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동원된 것이다. 언론 보도도 그 방향에 시선을 맞춘다. 이런 경향은 영화제 첫 회부터 22회를 맞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 해운대 야외 무대 인사에 나선 <남한산성> 출연 배우들/연합

문화를 정치에 연결하려는 대통령

영화제의 권위가 철철 넘치는 경우이거나, 영화제 티켓이 오픈하자마자 매진되는 사태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국의 영화산업을 자극하는 에너지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가 영화인들 사이에서 선망의 무대로 인식되고, 입상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하더라도 정작 해당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나라의 영화 산업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화 중에서 흥행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세계 영화계에 변화를 미치는 경우를 찾기 어렵고 감독, 배우 중에서도 널리 이름을 알 만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조차 미국 영화, 미국 배우나 감독이 참가하지 않으면 행사 개최가 어려울 지경이다.

미국 영화와의 차별화를 통해 프랑스 문화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칸영화제에서도 해마다 심사위원이나 위원장에 미국 배우나 감독이 몇 명은 들어가 있는 것은 그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부산영화제의 경우도 비슷하다.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몇 초 몇 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영화가 정작 상영장에서 보면 객석이 꽉 찬 경우를 보기 어렵고, 영화제가 끝난 후 일반 상영을 하더라도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더 흔하다. 영화제 기간 동안의 열기와 일반 상영에서의 반응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영화제의 옛 위상을 되찾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내용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부산영화제의 언제 어느 때의 어떤 모습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를 떠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말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원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마음대로 해보라’는 의미인가? 무엇을 마음대로 해보라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소재의 영화를 많이 만들어 상영하라는 것인가, 전 정권의 비리를 들춰내는 데 진력하라는 뜻인가, 현 정권의 행보를 찬양하는 내용의 영화를 많이 만들어 보여주라는 뜻인가? 새로 구성될 집행부의 면면이나 그 이후의 영화제 운영을 보면 지금의 발언이나 행보가 무엇을 겨냥한 것이었는지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격랑 속으로 밀어넣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 균형과 품격을 가진 문화대통령이 된다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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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화 2017-10-27 12:03:32
기자님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에 조금이라고 정권 입맛에 안맞는 영화 상영 못하게 한거 모르세요? 그래서 지원금도 대폭 줄이고 뭘 알고 기사를 쓰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