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라는 우상과 대한민국
민족이라는 우상과 대한민국
  • 김용삼 박정희기념재단 기획실장
  • 승인 2018.07.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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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인명사전, 위안부, 정신대, 항일 무장투쟁, 일본에 대한 저주의 반일감정, 반민특위, 만주, 쇠말뚝, 민족정기….

오늘날 한국 사회를 부글부글 끓게 하는 아젠다들은 거의 대부분 ‘민족’이라는 명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모두가 파괴력이 막강한 용어들이다. 한 번 ‘친일’로 찍혔다 하면 벌떼 같은 인신공격이 가해지고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는 인격 살인행위가 자행된다.

어쩌다 우리가 ‘민족’이라는 수렁에 빠져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만 돌아다보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단일민족 배달겨레”라는 허상을 부여잡고 단군의 자손이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이민족을 배타하며 살아간다. 불행하게도 단군의 자손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외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면 명쾌하게, 그리고 민망할 정도로 빈번하게 외국과의 혼혈 관련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들이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중국인, 일본인, 야인(野人·만주지역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의 여러 종족),  동남아인 등 숱한 외국인들이 조선 땅에 와서 살아가는 모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개국 초기에는 태국, 자바 등지에서 조선 정부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많은 사신들이 왕래했으며 서역 지방의 위구르인, 이슬람교도들도 조선 땅에 귀화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화인(向化人)이라고 불렀다.

민족문제속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었다.

단일민족, 순수혈통의 극단적 사례

우리는 ‘민족’이라는 허황된 망령에 사로잡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생김새가 다르다고 심하게 인종 차별을 했다. 심지어 한 시절엔 화교들의 부동산 취득을 봉쇄하고, 짜장면 가격을 정부 고시로 묶어 함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통제를 가하기도 했다. 단일 민족, 순수 혈통의 극단적인 모습은 나치 독일의 ‘순수 아리안 혈통 중시’ 사례를 통해 소름끼치도록 체험한 바 있다.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제했을 때 일본은 유럽의 강국 러시아를 물리친 10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비슷한 시기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군대는 중앙군, 지방군 다 합쳐 약 8700여 명이었다. 국력과 군사력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항복하지 않으면 멸망이라는 사실을 당대의 국제법 전문가 이완용이 모를 리 없었다.
1910년의 한일합방은 그런 국력의 차에서 오는 현실적 선택이었을 것이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아직도 이완용과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어 조선이 망했다고 믿는다. 그것은 국력이 저 모양으로 찌그러든 근본 원인은 망각한 채 을사오적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 단두대에 세운 다음 모든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겠다는 면피나 다름없다.

우리가 ‘민족’이라는 용어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탐닉하는 이유는 1910년 일본에게 당한 망국(亡國)의 영향 탓이고, 을사오적에게 망국의 모든 죄를 떠넘기고 면죄부를 받으려는 범국민적 면죄행위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해방구 아닐까. 나라가 망했으니 한국인으로서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위안을 삼을 방법은 혈연에 바탕을 둔 ‘민족’이 유일했을 것이다.

왜노(倭奴), 왜구라고 하대하던 일인들에게 국가를 빼앗기자 멸망해버리자 자존심 강한 양반의 후예들은 배달겨레, 단일민족이라는 핏줄에 얽힌 ‘민족’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후 한국인의 정서는 ‘일본’이라는 존재와 ‘민족’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순치, 갈등, 대립, 폭발하며 누구에게는 순응으로, 누구에게는 적극 협력으로, 다른 누구에게는 저항으로 표출되면서 깊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민족’이란 우상, 신성불가침 영역인가?

그 결과 해방 70년이 되도록 일제 식민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보다는 ‘한민족’이라는 핏줄적 울타리를 더 소중하게 여겨 이념과 사상, 체제를 우습게 아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지경에 이르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북한, 그리고 김일성이란 존재다.

오늘의 남북 대결의 철학적 뿌리는 민족에서 파생된 한 갈래인 ‘항일’이다. 항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 여기서 수세로 몰리면 한쪽은 항일세력이 만든 국가라는 정통성과 민족적 권위를 선점하게 되고, 반대쪽은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세운 국가라는 낙인과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항일을 하되 외교적이고 문화적이고 교육적으로 했느냐, 아니면 화끈하고 선명하게 무장 투쟁의 방식으로 했느냐. 이것은 후자가 절대적 도덕적 권위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오늘날 ‘항일’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이념 전쟁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한민국은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게 완패를 당했다.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학자, 지식인, 언론인, 일반인들은 만주 벌판에서 고난과 고초를 당해가며 치열하게 전개됐다는 항일 무장투쟁의 선명성과 치열성, 웅장한 기상에 가위 눌리듯 꼬리를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또 저들의 레닌과 스탈린식 선전 선동술에 넘어가 단독 정권을 수립한 것은 이승만과 남한이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김일성=항일 무장 독립운동의 주인공이자 민족의 영웅, 이승만=미국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친일파들과 야합하여 분단을 야기한 매국노, 박정희=일제의 주구로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를 타도한 친일파라는 우상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주체사상을 받아들여 한국 사회를 친북 혹은 종북의 소굴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온 주사파와 좌익 운동권, 좌익 언론인, 그리고 ‘국사’라는 이름으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국사학자들 덕분에 그 우상은 더더욱 ‘역사적 사실’인양 화석화되어가고 있다.

만주에서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화가 됐고, 금단 영역이 되었다. 이 부분을 잘못 건드리거나 그 정신을 훼손하면 가차 없이 ‘친일’의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따라서 ‘민족’이라는 주제는 거의 종교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었다.

민족을 찾다가 국가가 망해도 좋은가. 아니면 민족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국가를 살릴 것인가.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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