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피 고난 눈물 땀 뿐”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피 고난 눈물 땀 뿐”
  • 미래한국
  • 승인 2011.09.16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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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 BOOk & World /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

황성준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엄마! 나 낳을 때 어떤 태몽이었어?” “글쎄, 특별한 기억이 없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로 기억한다. 어머니와의 간략한 대화 이후, 필자는 어린이용 한국위인전기전집을 모두 상자 안에 집어넣고 다시는 열어보지 않았다.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읽었던 한국 위인전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우선 탄생 자체가 거창하다. 알에서 태어나든지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는 승려나 도사의 예언 속에서 태어난다. 용이 배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의 태몽은 필수적이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것은 물론 착하고 용감하다. 자라서는 충신이요 효자였고 흠 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인물이다. 이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한국 위인전에 나온 인물들은 나와는 탄생 배경부터가 다르고 종자 자체가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기와 무상급식투표 이후의 가슴앓이

그러나 서구 위인전기들은 여전히 책장에 꽂혀 있었다. 아버지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도끼로 나무를 잘라 버린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최근 몇몇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 이야기는 조작된 것이라고도 하지만…), 학생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초등학교를 1년도 채 마치지 못했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승리자 헬렌 켈러 등의 이야기는 어린 필자가 ‘감히’ 동질감을 맛볼 수 있었던 감동의 스토리텔링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처칠 회고록>을 읽을 수 있었다. 처칠은 결코 동남풍을 불러오는 초능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회고록들과 달리,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나치 히틀러의 도전 속에서 굳건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많은 고민과 고뇌를 쏟아 넣은 글 속에서 그의 살아 숨쉬는 호흡이 여과 없이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어린 시절의 위인전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난 8월 24일 투표 이후 겪은 가슴앓이 때문이다. 그날 아침 일찍 아내와 투표하러 갔다. 얼마나 투표하러 올까. 궁금증이 섞인 묘한 가슴 떨림을 가지고 투표장에 갔던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층도 제법 눈에 띄었다. 투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비교적 굳어 있었다. 그러나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확인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날 하루 종일 각 처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투표율이 33%를 넘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투표공학상 불가능한 수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 오전 ‘혹시’하는 기대감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불행히도 오후가 되면서, ‘혹시’는 ‘역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표(死票)가 될 것이 뻔했던 오후 5시 이후에도 투표가 계속돼 25%가 넘는 투표율이 나온 것에 정말 놀랐다. 그리고 적어도 진 싸움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서울 시민의 잠재력을 얕잡아 보았던 필자의 어리석음과 열심히 뛰지 않은 나태함에 대해 반성했다.

처칠이 주는 위로, 그리고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

그런데 비수는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꽂혔다. 현재 한나라당의 실질적 오너인 박근혜 의원의 언행을 살펴보면, 8월 24일 투표자들은 한마디로 ‘바보들’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해서 전선을 교란시킨 ‘어리석은 대중’들이었던 것이다. 가슴이 아프다 못해 분노를 느꼈다. 아니 서글픔을 맛보았다. 관군이 붕괴됐기에 의병이 나서 싸웠는데, 이기지 못했다면서, 그리고 왜 질 싸움을 했느냐면서, 전략이 어떻고 전술이 어떻고 떠드는 자들에 대해 경멸감마저 일어났다. 이것은 분명 ‘전술의 차이’가 아니었다.

‘전략과 원칙’의 차이였다. ‘시장 자유민주주의자들’과 ‘무원칙적 전통주의자들’의 차이였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것일까?
이러한 가슴앓이를 다소 진정시켜 준 것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이었다. 마음을 달랠 겸 교보문고에 갔다가 처칠 회고록 원서를 발견했다. 원서로 꼭 읽어 보겠다고 고등학교 때 결심한 지 30년이 지난 뒤였다. 밤을 새워 읽었다. 처칠은 히틀러의 프랑스 침공이라는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총리에 취임하면서 “나는 피, 고난, 눈물, 그리고 땀 이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할 것이 없다“(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고 국민에게 약속한다.

과연 이러한 약속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우리에게 있을까?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있고, 미국이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달콤한 약속’만 늘어놓고 있는 사람들을 국가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

지도자(leader)와 통치자(ruler)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리더’이지, 통치자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통치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중의 비위만 맞추면서 인기에만 영합하는 ‘정치 연예인’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고난과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가자'고 호소할 수 있는 리더를 그리워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이번에 처칠 회고록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눈에 띈 대목이 있다.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 전선이 붕괴되자 이탈리아가 독일편에 서서 프랑스 남부를 침공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처칠은 이탈리아 북부 지역 폭격을 결심했으며 이를 단행한다. 그러나 항공 거리가 너무 멀어서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처칠은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공항에 영국 공군 편대를 파견, 이탈리아 폭격을 시도한다. 그런데 마르세이유 시 정부가 반대하는 것이었다.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보복 공습을 우려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 지방 프랑스 주민들이 나와 공항을 점거하고 영국 편대의 출격을 육탄으로 저지했다. 프랑스 중앙정부의 명령도 소용없었다. 이 대목에서 제주도 강정마을을 점거하고 있는 직업 데모꾼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필자의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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