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고독하다
정의는 고독하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9.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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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책: <하이 눈(High Noon)>
 

미국에서 <하이 눈 High Noon>이 개봉한 때는 1952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60년 전, 한반도가 6.25 전쟁 한복판에 있을 때였다. 6.25를 교과서 속에서나 접하는 신세대의 입장에서라면 상영관보다는 박물관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심지어 흑백 영화다!

한국의 컬러 방송 시작은 1980년 12월 1일부터다. 그 이후 태어난 태생 컬러 세대의 눈으로 보면 거의 ‘골동품’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됐다 해서 모두 박물관에 모셔지는 게 아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하이 눈>은 그런 인정을 받는 영화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는 “1950년대는 서부 영화에 있어 최고의 시기였다”고 평한다. <하이 눈>은 그 절정기의 수많은 서부 영화들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감독 프레드 진네만은 아카데미 감독상만 3번을 수상했다. 남우 주연 게리 쿠퍼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두 번째 상은 이 작품으로 받았다. 여우 주연 그레이스 켈리는 나중에 모나코의 왕비가 됐다. 요즘 표현을 빌자면 모두 레전드 급이다.

그런데 <하이 눈>은 그냥 서부 영화 차원이 아니라 전체 영화사에서도 빠뜨릴 수 없는 명작의 자리에 있다. 세월의 흐름을 넘어 끊임없이 팬들이 이어지고, 거듭 재해석되고 수시로 인용되곤 한다. 고전의 반열이다. 그만큼 문제작이다.

'나홀로' 지키는 85분

영화의 무대는 1870년 무렵 서부의 어느 작은 마을, 보안관으로 5년간 일했던 윌 케인(게리 쿠퍼)은 결혼과 동시에 은퇴해 아내 에이미(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나려는 참이다. 그런데 케인이 감옥에 보냈던 악당 두목 밀러가패거리를 이끌고 그에게 복수를 하러 찾아온다.

극이 전개되는 시간대는 매우 짧다. 케인의 결혼식 때부터 밀러가 정오(High Noon)에 도착, 결투를 벌이는 때까지다. 실제 러닝 타임도 영화 속 시간과 거의 똑 같은 85분이다. 그런데 그 짧은 동안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매우 강렬하다.

주인공은 차마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악당과 맞서려 하지만 주민들은 어느 누구도 그를 돕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마저 그를 떠나려 한다. 절대고독이다. <하이 눈>은 정의를 지키려 함에도 철저히 외면당하는 한 인간의 고뇌와 자신들을 위한 일임에도 하나같이 등을 돌리는 다중(多衆)의 비겁함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이런 내용에 대한 해석을 두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분분하다. 특히 좌우파 사이의 차이는 거의 문화전쟁 급이다.

좌파적 평론가들은 <하이 눈>을 1950년대 당시의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적 알레고리(Allegory 우화, 풍자)로 해석한다. 악당들은 ‘진보적’ 영화인들을 압박하던 극우파들이고, 외면하던 주민들은 ‘동료’를 모른척하던 할리우드 사람들에 대한 비유라는 것이다. 감독 프레드 진네만은 오스트리아 출신 유태인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이었다. 특히 각본을 쓴 칼 포어맨은 실제로 매카시즘의 직접적인 희생자였으며 그에 강력히 반발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좌파’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진네만 감독은 그런 해석에 극구 손사래를 쳤다.

더욱이 작가의 잠재적 의도가 어떠하든 작품은 독자와 만나면서부터는 또 다른 독립된 생명력을 갖기 마련이다. 영화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이 눈>도 어느 순간부터는 좌파의 ‘기대’와는 달리 매우 우파적 가치로 읽히기 시작했다. <하이 눈>은 지금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다.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서가 아니다.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의 미덕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특히 더 그랬다.

외로운 결전의 순간

2003년 미국에서 ‘대통령의 영화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1953년에서 1986년까지 33년 간 백악관에서 영사 기사로 재직한 폴 피셔(Paul Fischer)의 회고를 토대로 했다. 피셔는 아이젠하워에서 레이건까지 모두 7명의 대통령들과 함께 했는데, 그동안 전용 상영관에서 모두 5천여 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다큐’는 그가 상영한 영화들의 역대 대통령별 상영 횟수와 작품의 성격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곱 대통령들이 가장 선호한 영화는 바로 <하이 눈 High Noon>이었다. 제작자의 분석은 이랬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포기하면서까지 악당들과 싸워 마을 사람들을 지킨다.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온갖 비난을 감수한다고 생각하는 대통령들은 자신을 그러한 주인공과 동일시했을 것이다.”

<하이 눈>을 가장 많이 본 대통령은 무려 20번을 기록한 클린턴이었는데 당시는 북핵 위기가 본격화되던 때였다. 그런데 이 영화 개봉 다음해인 1953년부터 임기를 시작한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재임 중 3번을 반복해 보았다. 미국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한국전쟁을 치르던 시절이었다. 좌파적 통념과는 달리 적어도 대통령들은 처음부터 감상의 각도가 매우 오른쪽으로 가 있었다.

그래서 <하이 눈>을 아예 한국전쟁에 대한 국제정치적 은유로 해석한 평론도 있었다. 보안관은 미국, 도움을 받고도 협조를 외면하는 자들은 유럽, 정오의 네 악당들은 소련 중공 북한 그리고 기타 공산권 국가들이라는 것이다. 다소 비약이 느껴지는 해석이다. 하지만 당시는 몰라도 지금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적다. 로버트 케이건은 안보에선 미국에 무임승차하면서도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유럽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케이건 뿐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도 아마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일본의 고이즈미는 총리 시절 미국의 그 민감 부위를 겨냥해 ‘High Noon’ 외교를 펼친 바 있다. 2006년 부시 시절의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그는 국빈만찬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보안관 게리 쿠퍼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악당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게리 쿠퍼와 오늘날의 미국은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악이 상존하는 세계에서 미국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친구이자 동맹인 일본은 항상 미국 편에 서 있을 것이다.” 부시도 미국민도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2012년에 다시 보는 '대통령의 영화'

<하이 눈>에는 마치 우리더러 들으라는 듯한 대목도 있다. “케인과 밀러가 만나면 싸우게 되고 누군가 다칩니다. 지금 북부에서는 이곳에 투자를 계획 중이요. 그런데 길에서 싸우고 죽이면 어찌 되죠? 이곳에 투자할 기분이 날까요?… 케인이 없으면 이곳은 무사합니다.… 결국 한 가지 방법뿐인데 시간이 있을 때 어서 떠나시오. 그것이 당신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더 낫소.”

도움을 청하러 온 케인을 세워놓고 늘어놓는 한 주민의 일장연설 대목인데, 마치 데자뷔다.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한 누군가의 말을 빼다 박았다. 경제를 위해선 북한과 중국이 무슨 짓을 해도 자극을 삼가자고 떠드는 자들도 오버랩 된다.

<하이 눈>은 ‘대통령의 영화’다. 우리 한국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도 곳곳에 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애써 감상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미래한국)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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