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대표한다고?
누가 누구를 대표한다고?
  • 이원우
  • 승인 2012.10.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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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과 김광진 의원은 두 번 사과해야 한다
 

1960년대 중국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紅衛兵)으로 위세를 떨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는 나이가 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썩어버린 기득권층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열정으로 가득 찬 청년들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모택동은 판단했던 것이다.

이에 청년과 대학생들, 심지어 중고등학생들까지 완장 하나씩을 차고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공자의 묘소와 같은 문화재를 비롯하여 ‘안정된 모든 것’을 파괴하려던 것이 바로 중국의 역사를 50년은 퇴보시켰다고 평가 받는 문화대혁명의 본질이다.

어리다는 것이 하나의 ‘특권’으로 작용했던 그 세계 속에서 홍위병들은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들의 멱살을 마음껏 휘잡고 모욕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저 흘러간 역사의 어두운 단면일 뿐일까?

놀랍게도 이와 비슷한 구조의 일이 개명천지 2012년에 일어났다. 민주통합당 소속 김광진 의원(1981년생)이 국정감사 도중 백선엽 장군을 언급하며 “민족의 반역자인 백선엽 장군의 뮤지컬 제작에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백선엽 장군이라고 하면 6‧25에 참전한 미군들까지 예를 표할 정도로 혁혁한 공로를 세운 ‘국가적 어른’이다. 그런 그를 정전(停戰) 30여년 후에 태어난 자가 반역자 운운하며 모욕하는 것은 흡사 홍위병의 인민재판을 연상시킨다. 자기들만의 치졸한 논리 바깥으로 나간 모든 사람들을 반역자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제는 김 의원이 이른바 2030세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청년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역구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 비례대표 의원이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국정감사를 하는데 92세의 백 장군에게 반역자 운운하는 현실은 수많은 2030들의 모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90세가 넘는 한 인간의 긴 인생을 극히 일부분으로 재단하는 불균형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그가 무슨 근거로 2030을 대표한다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제부터 2030이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낯짝 두꺼운 집단이 되었나?

22일 하루 동안 여론의 뜨거운 공분을 자아낸 김광진 의원이 백선엽 장군 본인에게 사과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분노의 비등점을 진작에 넘어버린 여론 앞에서도 ‘법률이 정한 친일인사 명단에 백선엽이 있다’는 둥 암기식 교육밖에 받아본 적 없는 어린 아이의 코스프레를 이어갈 때가 아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의원은 2030 세대에게도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이립(而立)의 나이에 불과한 김광진 의원이 치열한 전투 끝에 국회에 입성한 다른 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계제가 못 된다는 사실은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의 강점이자 특권은 오직 하나 젊음이었던 것이다.

청년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국회에까지 무혈입성한 국회의원은 단순한 개인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 자체로 2030세대의 지표다. 그는 어제 민족문제연구소 출신의 31세 청년으로서가 아니라 2030세대를 대표하는 한 기관으로서 백선엽을 모욕했다는 점을 똑똑히 이해해야 한다.

2030을 발판으로 올라섰으면 2030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일이다. 그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기존 정치인처럼 살고 싶은 거라면 밑바닥에서부터 정정당당히 시대의 승부에 응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맞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치욕의 역사’로 오독하는 2030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인데 태연하게 그들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 의원과 민주통합당은 지금 2030에 대한 배신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가 누구를 대표한단 말인가?

아직까지 김 의원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SNS의 멘션은 자신과 비슷한 역사관을 공유하는 지인들에게만 향하고 있다. 그래놓고도 인사말에는 “국민보다 높지 않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적혀 있는 모습까지 기성 정치인을 그대로 빼다 닮았다.

노선을 빨리 정하기 바란다. 김광진보다 구태의 정치를 ‘더 잘 할 수 있는’ 정치인은 이미 국회에 299명이나 더 있기 때문이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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