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진실로 ‘업그레이드’하다
오해를 진실로 ‘업그레이드’하다
  • 이원우
  • 승인 2013.06.04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영익 교수, 이승만의 생애‧사상‧업적 다룬 <건국대통령 이승만> 출간
 

백발이 성성한 노인. 쌍꺼풀 없는 눈과 입가의 팔자주름. 굳게 다문 입술.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이미지다.

1875년 출생한 이승만은 1948년 초대대통령 당선 당시 73세였다. 서거 17년 전에 권력의 정점에 섰음을 상기하면 노년의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인생을 모두 바쳐 거둔 ‘열매’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독립운동가 이승만, 교육자 이승만, 외교 전략가 이승만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그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포기한 한국은 급기야 교과서에서 건국 대통령을 스탈린이나 히틀러와 별다를 바 없는 ‘독재자’로 표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대선 한 달 전에 공개한 ‘백년 전쟁’에서도 이승만은 친일-친미에 물든 교활한 악당쯤으로 그려지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이승만 전문가’인 유영익 교수가 펴낸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백년 전쟁’을 반박하기 위해 출간된 책은 아니다. 그는 이미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원장 류석춘)의 전신인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소장 재직 시절부터 누구보다 깊고 넓게 이승만을 연구해 왔다.

이번 책은 ‘이승만 연구’(2000), ‘젊은 날의 이승만’(2002),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2006) 등의 연장선에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승만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 기획됐다.

‘이승만 전문가’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

이 책은 지금까지의 연구를 집대성한 ‘총집결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총체적인 관점에서 인간 이승만을 다룬다.

저자가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해 현대한국학연구소를 개설한 1997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발표했던 5편의 논문에 최근에 탈고한 한 편의 논문을 추가해 엮어낸 것으로서 유영익 교수에게도 연구를 종합하는 의미를 갖는 책이다.

“그간 우리가 오해하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사상과 공적을 새롭게 살펴보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특히 이승만이 사상적으로 절대 천박하지 않았고 그가 추진한 정책은 당대의 어떤 정치인보다 개혁적이고 선진적이었으며 대통령으로서 이룩한 업적 역시 단연 돋보였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확인해보고자 한다.”

- 서문 ‘우남 이승만을 다시 생각하며’ 中

430여 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첫눈에 띄는 것은 전체의 1/4 가량을 차지하는 방대한 주석(註釋)의 양이다.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이고 한문과 일어 자료까지 전부 추적해 젊은 시절 독립운동가로 활동할 때부터 조금도 쉴 새 없이 치열하게 살았던 이승만을 치밀하게 복기하고 있다.

해당 자료들이 반드시 이승만의 업적을 찬양하는 의도로만 집합된 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자료나 세부 의견에 있어서 수치가 다르게 산정됐거나 의견이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해서도 주석을 통해 소명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쉴 새 없이 움직였던 청춘의 이승만

젊은 시절 일본과 미국에 대해 보였던 이승만의 강경한 태도는 그를 친일-친미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발상인지를 보여준다. 건국 이전까지의 이승만은 美 국무부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반골(反骨) 독립 운동가였던 것이다.

1919년부터 1943년까지 이승만은 미 대통령들과 국무장관들에게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는 문서 외교를 집요하리만치 치열하게 전개했다. 한국 독립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잡지와 단행본, 팸플릿 등을 영문으로 출판‧배포하고 그 의견을 정치세력화 하는 일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이승만은 결코 미국에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1943년 5월 15일 이승만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자.

“군국주의 일본이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하나둘씩 정복한 끝에, 드디어 1941년 12월 진주만을 공격했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의 문명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데에 수많은 인명과 수억의 전비(戰費)를 허비하게 된 것이다.

(…) 일본의 팽창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민족은 오로지 한국인뿐이었는데 서양의 정치가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한국을 독립된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일제를 옹호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폭력적인 존재로 육성하는 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승만에게 미국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강대국이었지만, 동시에 1882년에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지키지 않아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믿을 수 없는 국가’이기도 했다.

언제라도 다시 배신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승만은 미국에 대해 언제나 치열했고 가히 편집증적인 벼랑 끝 외교에 나선다. 그 노력의 결실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한미동맹이었다. 이승만이 이 조약을 일컬어 “누대에 걸쳐 갖가지 혜택을 누리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유영익 “이승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위재(偉才)”

본지 <미래한국> 편집고문이기도 한 유영익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승만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을 통해 한 단계 격상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그에 대한 숱한 오해를 교정할 수 있는 대답이 이 책 안에 모두 담겨 있다”고 밝혔다.

정치적 안목이나 국제 감각, 용인술과 연설 능력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재(偉才)였음을 강조한 유 교수는 이승만의 헌신적인 노력을 이해함에 있어 그가 가졌던 기독교 신앙이 중요한 포인트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미동맹 60주년이라는 기념비적 시점에 진입한 한국인들은 엉뚱하게도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숱한 모욕과 폄훼 앞에 직면해 있다. 일생 동안 이승만을 치밀하게 추적해 온 노련한 연구가의 이 책은 새로운 60년 앞에 선 한국으로 하여금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진실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