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시절
행복했던 시절
  • 미래한국
  • 승인 2013.12.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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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의 편지


‘리더십’ 강의에 수강생들의 사회인사 인터뷰 항목이 있다며 대학생 몇이 찾아왔다.

질문 중에 어떤 때가 행복했었느냐는 항목이 있었다. 지나온 80년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항이었다.

젊어서 이런 생애 스케줄을 세운 적이 있다.

‘25세까지 배우고, 50세까지 일하고, 75세까지 봉사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25세까지의 배우는 시절은 행복했다. 6·25 전 중고 6년은 공부가 재미 있어 좋았고, 6·25 후 대학 4년은 물질적으로는 아주 궁핍했지만 책의 안내로 처음 찾아든 정신세계는 신비롭고 풍요로웠다.

그후 50세까지의 일하는 25년은 불행했다. 즐거운 기억이라곤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두운 터널 속을 먹이 찾아 달리는 짐승처럼 무작정 앞으로 달려온 느낌뿐이다. 전란 중에 집은 파괴되고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은 1·4 후퇴 때 다 흩어졌다. 청장년 25년은 그렇게 산산 조각이 났다.

은퇴 후 75세까지의 봉사하는 25년은 행복했다. 중고생과 군부대 장병들에게 책을 보내는 일을 벌인 것이 좋았다. 아내와 같이 책을 고르고, 보내고, 찾아가 얘기하고, 보내오는 편지에 답장 쓰고… 바쁘고 즐거웠다.

그 무렵 김상철 변호사를 만나 그의 일을 돕게 된 것이 은퇴 후 행복에 또 하나의 기둥이 됐다. 정원식 총리 내정자에게 테러를 한 운동권 학생들을 만인에 앞서 통렬히 나무라고 나선 그의 의기에 감동해 찾아간 것이 그후 22년 지기의 출발점이 됐다. 그가 미래한국신문을 창간하면서 문화면 칼럼을 쓰도록 권유했다.

문필과 아무런 인연도 없던 나에게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고 글 쓰는 행복을 안겨줬다.

어떤 때 행복했느냐는 학생들의 물음에 답하고 나서 스스로 이런 의문이 생겼다.

무슨 이유로 25세까지의 공부하던 시절과 은퇴 후 75세까지의 도서 기증하고 글 쓰던 시절이 행복하고, 무슨 이유로 실제로 돈을 벌었으면서도 50세까지의 일하던 시절을 불행했다고 느끼는 것일까.

자문자답을 해 본다. 사람에는 남과 어울려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교형 EQ파가 있고 혼자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무형 IQ파가 있다.
나는 IQ형이었다. 돈이 벌렸다 해도 남과 어울려 하는 일은 즐겁지가 않았고 실속이 없어도 혼자 하는 공부나 도서 일, 글쓰기 같은 일에 행복을 느낀 것이다.

인터뷰 온 학생들에게 이렇게 일러 줬다. 자기가 EQ, IQ, 어느 쪽에 속하는지 똑바로 파악하고, 어렵더라도 일생의 행복을 위해 제 취향에 맞는 쪽 일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직종간 뿐 아니라 한 직장 내에서도 EQ적 일과 IQ적 일은 확연히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칼럼을 끝으로 미래한국 독자 여러분께 하직 인사를 드립니다. 창간 때부터 시작해 어느덧 1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10여년 제게 글 쓰는 행복을 안겨 주신 미래한국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이성원 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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