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은 없다
친환경은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3.1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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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농산물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민감한 문제도 없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안정성 욕구와 웰빙 바람이 만들어 낸 현상이다.

하지만 정작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국민의 인식 수준과 정부 정책은 포퓰리즘의 강한 자장 안에 놓여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친환경 식품’과 ‘안전한 식품’에 대한 구별 능력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유기농 식품이 친환경이어서 선호된다면 기준치 이하의 저농약, 저비료 재배 식품은 외면당해도 좋을까. 이러한 문제는 ‘99.9% 항균’에 열광하는 현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친환경’이라는 말은 그 의미를 넘어 ‘정치이념’으로마저 작동한다.

미국의 보수매체인 내셔널리뷰 편집장 조나 골드버그는 그의 책 ‘리베랄 파시즘’에서 美 민주당의 각종 위원회 제도와 함께 ‘친환경’, ‘공공보육’ 등이 나치의 전체주의적 유산임을 날카롭게 파헤쳐 명성을 얻었다.

사실 독일 나치는 모든 육아를 국가가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며 ‘아기공장’을 만드는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 동시에 나치는 열렬한 환경보호자를 자처하며 독일의 산과 숲을 보호하자는 운동을 맹렬히 펼쳐 나갔다. 이러한 과도한 환경주의는 ‘에코 파시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머레이 북친은 심층적 생태주의자로서 환경이념을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구성한 대표적 인물이다.

친환경이라는 강박증

물론 그렇다고 친환경 식품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있다면 공급은 이뤄진다. 시장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친환경 식품은 강박적 행정으로 이뤄진다.

시장의 공급자들을 믿을 수 없으니 정부가 친환경 식품의 기준을 만들고 생산과 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발상은 다시 친환경 농업에 대한 무리한 증산과 국가 보조금 지급이라는 정책을 만들어 낸다. 한마디로 친환경 농산물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무시하고 정부가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의 책임자가 된다. 그 결과는 어떤가.

지난해 10월 서울서부지검 부정식품사범 합동단속반은 최근 친환경농산물 인증시스템을 악용해 거짓 인증을 남발한 혐의(업무상 배임)로 장성군 부군수 등을 구속기소했다. 인증기관 운영자 등도 함께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모 부군수는 전남도가 친환경농산물 인증면적을 공무원 인사자료로 활용하자 인사상 혜택을 받기 위해 거짓 인증을 주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군수는 읍·면사무소 담당직원을 동원해 농가영농일지와 생산계획서를 거짓으로 작성하고 농약을 사용한 땅에도 거짓 인증을 지시했다.

이 같은 거짓 인증건수는 해마다 수천 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전남도 친환경농산물 인증취소 농가는 지난 2010년 2240호, 2011년 9982호, 2012년 4589호, 올해 3675호에 달한다. 이들 농가는 대부분 농약을 사용했거나 영농일지 등을 작성하지 않아 인증 취소됐다.

이와 함께 친환경농산물 인증기관 행정처분도 2010년 3곳, 2011년 5곳, 2012년 8곳, 2013년 7건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만든 부실한 친환경 시스템

이처럼 친환경농산물 인증취소 건수가 줄지 않는 것은 전남도가 인증면적을 무리하게 확대했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2005년부터 친환경농업을 집중 육성하는 ‘생명식품 생산 5개년 계획’을 적극 추진했다.

이에 따라 친환경 인증면적은 지난해 7만5948ha로 전국 인증면적(12만7493ha)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기 전인 2004년에 비해 인증면적(4057ha)이 19배, 인증농가가 4060호에서 6만5891호로 무려 16배나 증가할 정도로 국내 친환경농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친환경농산물 인증취소 건수가 덩달아 증가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난해 담양군 친환경 쌀 재배면적 42%에 해당하는 696ha가 영농일지 미작성 등으로 무더기로 인증이 취소되기도 했다.

경기도는 어떤가. 경기도는 올해 친환경농산물 인증사업을 사실상 포기하는 상태로 접어들었다. 친환경 농사를 짓겠다는 농가는 늘어나는데 정작 재정난으로 인증사업에 필요한 예산이 모자란다. 올해 관련 사업 예산은 3억3000만원이다. 지난해 이 사업 예산은 10억원에 달했다.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올해 예산이 삭감된 셈이다. 부실 인증이 불보듯 뻔하다.

2001년 7월부터 시행된 친환경 농산물 인증은 소비자의 신뢰가 높지 않다. 친환경이라는 컨셉트의 ‘유기 농산물’ ‘무농약 농산물’ ‘저농약 농산물’ 표시만 보고 이를 믿는 소비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다.

그만큼 친환경 인증 농산물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이야기인데 그 원인은 시장이 만든 것이 아니라 무리한 정부의 생산과 유통 장려 그리고 무상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을 써야 한다는 이념적 행정이 시장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제품의 공신력을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만든다는 점을 부정하려 든 게 문제다.

친환경 농산물 문제는 농업에 대기업과 해외 선진 농기업의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위 사회적 기업 형태의 농업조합이나 영농기업의 형태로는 친환경 유기농 재배가 어렵다. 대단위 면적으로 유기농 재배를 하지 않으면 이웃 농가에서 사용하는 농약과 비료가 넘어와 사실상 유기농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리고 생산된 유기농 농작물의 공급은 대체적으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에 가격이 일반 농작물에 비해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전국 수백만 학생들에게 70%에 달하는 친환경 급식을 하겠다는 것일까. 진보 교육감들의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주장은 성스럽고 민주적이며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그러면 아이들에게 오염된 식품을 먹이자는 이야기냐’고 반발한다.

이런 태도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순수한 게르만의 피와 대지를 결합하자는 국가주의 환경매니아 나치에게 ‘지나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가는 게슈타포에게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가야 했으니까. 그것을 우리는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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