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희망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지금은 희망의 문을 열어야 할 때
  • 미래한국
  • 승인 2014.05.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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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이종윤 상임고문‧한국기독교학술원장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애국지사들이나 국가를 위한 큰일을 하다가 참변을 당한 것도 아닌데 세월호 참사사건이 있은 후 국민 전체가 초상을 당한 듯 가슴에 노란색 리본을 달고 희생자를 애도하며, 국가적으로는 모든 것이 마비된 양 온통 세월호 사건에 삼킨 바 됐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탑승자 중 고등학생 수백여명이 수장된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국민들의 분노가 남의 집 문제로 보이지 않아 터진 것이다. 거기에 승객 인원조차 정확히 알지 못해 오락가락 달라질 때마다 무책임한 당국자들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아직 사고 수습이 끝나지 않고 슬픔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근본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조차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책임을 몽땅 대통령과 현 정부에만 돌리는 정치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내탓이요 미안합니다’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들도 있다.

9·11사태 당시 미국의 지도자들은 여야가 없었다.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무역센터가 무너질 때 미국의 여야 국회의원들은 책임의 소재를 묻기 전 ‘우리는 위대한 미국인이다. 지금은 미국이 일어서야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자’면서 함께 돕고 손에 손을 잡고 격려했다.

그러나 우리의 일부 지도자들에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고 그들은 남의 슬픔을 빙자해 자신의 정치 목적 달성을 위한 기회로 삼아 이 사건을 자신들의 선동, 투쟁의 자료로만 삼고 있을 뿐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국권을 빼앗겼던 우리 백성이 해방된 지 69년이 된 지금 국제적으로 원조 받던 나라가 이제는 원조하는 나라가 된 것은 여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국가 목표로 정하고 달렸던 나라가 지금은 운동 선수 한 사람이 해외에서 받아오는 수입이 그만큼 되는 국력이 크게 상승한 나라다.

너무 가난하고 너무 억눌려서 불만이 많았고 그러나 그 불만이 힘이 돼 이만큼이라도 성장하게 됐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느 정도 성취된 지금 권태라는 재앙이 우리를 다시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자살 연구가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좌절보다는 목적한 바가 이뤄졌을 때 오는 허탈감 때문에 자살하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바로 이런 허탈감을 우리는 경계해야 된다.

21세기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달려가던 대한민국호가 총체적 부패의 상징인 세월호처럼 한순간 함몰되는 사건은 한국 근대사의 일그러진 단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원대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만과 허탈감이란 있을 수 없다. 그가 성취한 모든 것은 더 높은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성취한 경제적 부와 정치적 민주주의는 물질적이고 제도적일 뿐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더 중요하고 고귀한 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두 개로 갈라진 한반도가 복음화된 통일조국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우리는 희망을 걸고 밑거름이 돼야 한다.

비관적으로 사는 이나 낙관적 인생관을 갖고 사는 이들에겐 각각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비관적인 것은 반드시 나쁘고 파괴적이라 할 수 없다. 높은 이상을 갖고 개혁하려는 이들은 현실을 비판할 수 밖에 없으며 이상과 야망의 사람은 현실에 만족할 수만도 없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사회는 발전하고 유능한 일꾼이 배출된다. 그러나 비판적 태도가 지나치면 자포자기나 냉소주의로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절망하기를 거부하는 우리 민족의 낙관성이 우리 사회의 저력 아니겠는가?

우리는 지금 정착된 사회라기보다 발전하고 변하고 뒤바뀌는 사회다. 이런 사회는 창조적이고 낙망치 않는 젊은이에겐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이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다. 낙심치 않고 찾는 자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제 창조적인 젊은이들이 낙심치 말고 우리 사회를 더 역동적으로 만들어 주기를 기도한다.

이종윤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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