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에 대한 ‘발칙한’ 이야기
단군신화에 대한 ‘발칙한’ 이야기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9.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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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단군신화를 알고 있다. 아울러 단군신화가 고조선의 건국 신화라고 배운다. 하지만 단군신화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의문이 여러 개 등장한다.

물론 신화라는 것이 의뭉스럽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인 것이겠지만 단군신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일부로부터는 ‘단군신화가 과연 우리 민족의 개국 신화인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내밀한 고백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좀처럼 공론화되지 못한다. 한국인들의 민족 감정을 거슬러서 자신의 학문적 위치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는 학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군신화가 학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곰과 호랑이의 문제다. 대개 어느 민족이든지 자신들의 조상과 관련돼 등장하는, 그것도 부족의 토템으로 등장하는 동물에 대해서는 신성시 하는 전통이 있다. 심지어 타부(taboo)도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단군신화의 곰은 신성한 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미련한 짐승으로 표현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야성이 강해서 인간이 되려다 실패했다는 호랑이는 한민족으로부터 산신령의 위상을 누려왔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을 보면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 서로 간섭할 수 없다. (…) 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기록돼 있다.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래 전부터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풍속이 있었을 거라는 암시를 준다. 조선시대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호랑이 숭배사상은 산악 숭배사상과 융합돼 우리에게 산신신앙(山神信仰)으로 자리 잡았다. 호랑이를 별칭해 산군·산군자(山君子)·산령(山靈)·산신령(山神靈)·산중영웅(山中英雄) 등으로 부르는 데에도 이러한 사상이 엿보인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대표적인 학자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 비교문학연구중심 주임 겸 문학연구소 교수인 예수셴(葉舒憲·53)이다. 그는 단군신화를 “한(漢) 문화의 영향을 받은 중국문화의 반응”이라는 말로 단군신화가 중국 고대신화의 아류임을 논증한다.

하바로프스크의 전통 문양

‘곰’과 ‘호랑이’의 문제

예수셴은 2007년 ‘곰 토템(熊圖騰)-중화조선신화탐원(中華祖先神話探源)’이라는 저서를 통해 곰 토템이 중국 황제집단의 모태적 기원신화임을 수많은 금석문과 구비전승, 문헌 등을 조사해 밝혔다.
그에 따르면 곰 토템은 유웅씨(有熊氏)라는 별명을 가졌던 황제집단이 기원이다. 그 전통이 우순(虞舜) 시대와 하(夏)나라 시대로 이어졌고, 곰을 조상으로 삼는 신화는 전욱(顫頊)을 거쳐 진(秦)나라, 조(趙)나라, 초(楚)나라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전승됐다는 것.

예수센은 “곰 토템은 고대 퉁구스인과 가까운 종족군(種族群)의 전파 작용에 의해 조선족(한민족)의 옛 기억 속에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웅모생인(熊母生人) 신화를 남겨놓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국내 학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사실 단군신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국내 학자들은 이 신화를 다른 문화권의 신화들과 비교연구하는 일에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고 그렇기에 단군신화는 한국인들의 독특하고 고유한 정신문화 체계여야 한다는 내밀한 신념이 문화인류학적으로 그 지평을 넓히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나마 ‘동북아의 곰 문화와 곰 신화’를 쓴 이정재 교수(경희대 국문학과, 민속학)가 이 문제를 비교문화적으로 철저하게 연구해 왔다. 이정재 교수는 단군신화를 통해 드러나는 한민족의 곰 토템의 신앙적 기층은 고아시아족과 고아시아문화라는 주장을 펼쳤다.

실제로 곰을 신성시 하는 전통은 시베리아 전역에서 발견된다. 특히 아무르강을 중심으로 만주와 연해주지역의 에벤키, 난나이, 허쩌, 그리고 길략족과 같은 민족들은 곰을 신성시 하고 수많은 곰에 대한 전승과 타부를 갖고 있다. 이들과 한 갈래로 여겨지는 일본 아이누인들에게는 ‘이오만테’라는 곰 축제가 있다. 새끼 곰을 키웠다가 희생제의 제물로 쓰면서 곰을 다시 그들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이정재 교수는 이와 대조적으로 호랑이 숭배는 남방 기원임을 밝힌다. 티벳을 중심으로 하는 파(巴) 문화와 인도, 동남아 지역에는 호랑이를 숭배하는 민간신앙 전통이 두드러진다. 그러한 이유로 이정재 교수는 아득한 과거 남방에 기초한 호랑이 전승 문화가 북상하고, 고(古)아시아인들의 곰 숭배 문화가 남하하면서 이 두 신화가 습합된 것이 단군신화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남퉁구스인의 전통인 호랑이, 그리고 시베리아 고아시아의 전통인 곰이 아무르와 연해주에서 만나며 단군신화의 원형이 생성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도를 펼쳐 이 지역으로 잠시 가보자.

백두산을 기점으로 동북방향으로 올라가면 아무르강이 등장한다. 이 지역은 현재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지역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하바로프스크의 전통 문양이 곰과 호랑이라는 것이다. 이 상징은 러시아인들의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고아시아인들의 전통이다.

난나이족

朝鮮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실제로 아무르강 유역 난나이족에게는 전통적으로 곰과 호랑이를 대표하는 샤먼들이 있었다. 곰은 이들에게 ‘레푸’라는 만주어로 불리며 함경도 일원에는 ‘너팽이’라는 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호랑이는 ‘타샤’라고 불린다. 이 곰과 호랑이를 대표하는 두 샤먼은 축제일에 서로 곰과 호랑이로 분장해서 춤 대결을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조롱하고 자신의 춤 솜씨를 뽐내는 기세는 대단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곰과 호랑이 모두를 존경하는 의미로 ‘암바’라 부르는데 그 의미는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다. 곰과 호랑이는 이 난나이인들의 조상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단군신화의 기원에 대한 어렴풋한 실마리가 이들 문화의 어디쯤에서 보이는 것 같다. 이 난나이족을 비롯한 여러 아무르인들은 고대에 숙신(肅愼)으로 불렸던 이들이다. 숙신은 고아시아족으로서 중국 역사에 예맥족과 함께 아주 일찍이 그 존재가 알려져 왔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고조선과 부여의 건국자들은 예맥인들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만주일대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서방에서 기원해 동진해 온 것으로 학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이들의 언어가 무엇인지는 수수께끼지만, 적어도 유목민의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투르크계의 일원임을 추정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곰 토템을 가진 예맥문화가 동진하며 호랑이 토템을 가진 고아시아 문화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천산산맥 일원이 그 야생적 기원인 마늘, 그리고 고아시아인들의 신성시한 쑥이 등장하는 것이 단군신화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古) 투르크어로 vakttar(박따르)는 영웅이라는 의미다. Tangun(탄군)은 일출(日出)을 말한다. 이 단어들이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밝은 아침의 나라’ 조선(朝鮮)이 명명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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