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를 풀어야 성장이 보인다
규제를 풀어야 성장이 보인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11.10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분석]

최초의 자동차는 영국에서 발명됐다. 증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들은 런던 거리를 달리며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증기 자동차를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런던 시내 마차꾼들에게 자동차는 ‘악몽’ 그 자체였다. 1840년대 영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앞섰다. 마차협회는 정부에 로비를 했다. 그 결과 1865년에 ‘빨간 깃발법’이라는 것이 제정됐고 세계 최초의 교통법이 됐다.

‘빨간 깃발법’의 핵심은 누구나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빨간 깃발을 든 조수가 자동차로부터 60m 앞에서 ‘자동차요! 자동차요!’를 외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영국의 증기 자동차들은 이 빨간 깃발을 든 조수보다 빨리 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이 법은 31년간 지속됐다.

1896년 영국에서 빨간 깃발법이 폐지될 즈음에 이미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였다. 영국의 증기 자동차들은 상대적으로 후진국이었던 독일의 가솔린 자동차와 아예 경쟁이 되지 않았다. 물론 영국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빨간 깃발’ 틈새로 진입한 외국계 기업들

웃음보가 터지는 이 기묘한 법안은 오늘 한국에도 있다. 이병박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중소기업 동반성장법’이 그것이다.

지난해 2월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는 2011년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82개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효과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증가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9%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식품 제조업 종사자들의 긍정적 답변 비율은 아예 0%였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리서치(R&R)가 지난 2월 전국 300곳 동네 빵집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이 설문에서 최근 1년간 매출이 ‘늘었다’고 응답한 곳은 13%에 그쳤고 ‘감소했다’는 곳은 45%에 달했다.

물론 매출이 급격히 는 곳도 있다. 놀부부대찌개로 잘 알려진 ‘놀부NBG’의 점포수는 2010년 648개, 2011년 641개, 2012년 628개로 감소 추세였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음식업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자 1년 만에 162개가 늘어났다. 이유는 ‘놀부NBC’가 2011년 미국 사모투자회사 모건스탠리PE에 지분 100%가 넘어간 ‘외국계’기업이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위의 출점 제한은 외국기업들에게는 매우 느슨하다. 놀부NBG는 이랜드의 ‘애슐리’, CJ그룹의 ‘빕스’ 등 국내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중기 적합업종에 묶여 사실상 신규 출점이 금지된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대기업 외식 프랜차이즈와 경쟁할 일이 없는 일본 외식기업들도 약진했다.

▲ 한국에 진출한 마루가메제면

‘스시로’ ‘마루가메제면’ ‘갓파스시’ 등은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했다. 스시로는 연매출 1조5000억원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 회전초밥 1위 업체다. 한국에 290억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80개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도 이미 발표했다.

갓파스시는 국내 매장수 목표를 100개로 잡고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고 있다. CJ푸드가 외식업 규제로 씨푸드 사업에서 철수하는 동안 놀부NBG는 모건스탠리에 인수된 후 설렁탕 담다, 유황오리, 차룽 등 신규 부문 브랜드를 대거 늘렸다. 이러한 국내기업 역차별 현상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영국의 ‘빨간 깃발법’은 잘못된 규제가 어떻게 한 국가의 황금알 산업을 망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예외일까. 2004년 국내 한 IT업체는 스마트폰으로 혈당치를 측정하는 ‘당뇨폰’을 개발했다. 이 당뇨폰은 별도의 혈당 측정기구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스마트폰에 연결된 키트를 통해 혈당을 간편하고 빠르게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IT+BT융합 스마트폰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이 의료기기 승인을 요하게 되면서 개발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어렵게 의료기기 승인이 나자 이번에는 휴대폰 판매 대리점들이 의료기기 판매승인을 얻어야 이 제품을 팔 수 있었다. 결국 10년이 지난 2014년 지금도 이 당뇨폰은 규제에 묶여 있다.

이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줄기세포 유전자 치료기술이다. 이 분야는 우리나라에서도 나름 독자적인 기술력을 구축했지만 환자의 줄기세포를 자가 이식하는 것을 의료기술이 아닌 ‘의약품 처방’으로 보건당국은 간주하고 있다.

당연히 줄기세포에 의약품 코드가 나올 리가 없다. 이쯤 되면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심지어 중국조차 자가 줄기세포 치료를 우리처럼 ‘의약품 처방’으로 보지 않는다. 이 기술로 국내에서 주목을 받던 한 바이오벤처는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규제로 인해 결국 버티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규제가 ‘혁신’을 망하게 한다

우리 경제는 ‘규제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규제가 많다. 법령에 기초한 규제 건수가 1만5000건에 육박한다는 최근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들로 인해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규모와 투자를 늘리는 대기업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한 보고서에 의하면 1997년부터 2003년까지만 해도 해마다 2∼4개의 그룹이 꾸준히 새로운 30대 그룹으로 진입했으나 2004∼2010년에는 1개로 줄어들더니 이후에는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상장회피 현상도 심각했다. 2010년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 가능기업 664개사 중 22개사가 실제 상장했으나 작년에는 811개사 중 4개만 상장하는데 그쳤다. 특히 2012년과 2013년에는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가능 기업 가운데 실제 상장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시장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매출이나 자산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규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불이익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성장의 정체현상이 만연해지고 기업가 정신은 추락하고 있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 경제의 현주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왜 이런 목소리에 정치권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가 법을 타락시킨 까닭이죠.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정치적 경쟁이 反기업 정서를 등에 업고 각종 규제입법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장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죠.”
법경제학 전문가인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지난 달 시장경제 싱크탱크인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이 발표한 ‘국회의원 얼마나 시장 적대적인가-19대 국회 시장친화성 평가’ 제하의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보고서는 지난 18대 국회보다 19대 국회에서 반시장적 의안의 비중이 매우 크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의 통계를 보면 지난 18대 국회에서 시장친화적 의안의 비중은 45.9%, 반시장적 의안의 비중은 54.1%였다. 이러한 비중은 19대 국회에 이르러 시장친화적 의안의 비중은 35.6%로 줄어든 반면, 반시장적 의안 비중은 64.4%로 늘었다. 집권 여당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면서 반시장적 의안들이 대거 발의되고 가결됐기 때문으로 보고서는 판단하고 있다.

물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유도하는 입법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입법이 제정돼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가 과연 그런 의지만큼이나 제대로 된 시장조정 입법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점은 여전히 의문이다.

공정한 경쟁을 유도한다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중소기업법 정의에 따라 중소기업을 분류한다. 연매출액 200억원 이하, 정규 직원 수 200명 이하 중 하나만 충족하면 중소기업이다. 즉, 매출이 많아도 직원 수만 적으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 그러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

대기업 LG생활건강은 세탁비누가 중기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사업철수’ 권고를 받았다. 이 세탁비누 시장에서 LG생활건강의 시장 점유율은 5% 정도. 반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된 ‘무궁화’는 세탁비누 시장에서 절반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유지해 왔다. 시장조사업체 AC닐슨에 따르면 약 300억원 규모의 국내 세탁비누 시장에서 무궁화 점유율은 47.8%를 기록 중이다.

2010년 무궁화의 매출은 443억원, 영업이익은 6억원을 기록했다. 2013년 매출액은 519억원, 영업이익은 19억원으로 크게 올랐다. 무궁화는 매출이 200억원을 훨씬 넘지만 직원이 162명밖에 안 돼 중소기업으로 지정받아 세탁비누 사업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 법안이 과연 중소기업들을 살리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업체를 살리자는 것인지 애매하기만 하다.


‘공익’의 이름으로 특정업체 살리기?

규제가 경쟁을 제한하면 시장에서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경쟁을 통해서 기업들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고 소비자는 그러한 기업가 정신으로 인해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돼 소비자 후생이 증대된다. 시장진입 규제는 그러한 장점을 차단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약하기 마련이다. 그런 경제에서는 창의력이 등장할 수가 없다.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세세분류상으로 1121개의 산업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50.2%인 563개 업종이 진입규제의 대상이다.
한국개발원(KDI)는 지난해 진입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할 경우 잠재성장률이 증가하고 고용창출과 창업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산업 전반에 걸쳐 중간 수준의 진입 규제를 10% 포인트 낮추면 1만4000여개의 신규기업과 7만5000여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규제를 반으로 줄일 경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0.5% 늘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잠재성장률 1%가 늘어난다는 것은 거대한 약진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3%대에서 1%가 늘어나 4%대에 이르면 고용률은 70%, 국민소득은 4만달러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최경환 경제팀의 분석이다.

규제 혁신이 가장 빠른 일자리 창출이며 소득증가의 방법이라는 주장은 바로 기업들이 규제 혁신으로 투자를 하고 고용을 늘린다는 이야기의 다른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