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이어진 한국과 터키의 인연
고대부터 이어진 한국과 터키의 인연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1.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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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여행해 본 독자라면 터키 사람들이 유난히 한국인에 대해 친절하고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터키 사람이 한국인을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하면 대개 “우리 큰 아버지가 6.25에 참전했다”든가, “삼촌이 참전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사돈의 팔촌 누군가는 참전한 것을 꼭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런 호감은 터키인들이 한국에 대해 ‘칸 카르데시’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드러나는데, 그것은 터키 말로 ‘피로 맺어진 형제’라는 뜻이다.

필자가 터키에 취재차 갔을 때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호감에는 ‘아량’과 ‘대견함’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공산 위협에 놓인 가난한 나라 한국을 자신들이 지켜줬더니 나라가 부흥해서 88올림픽과 월드컵도 치르게 됐다는 점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터키인들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투르크’라는 그들의 역사적 자부심이 자리한다. 터키의 대표도시 이스탄불만하더라도 그 역사와 문화면에서 사실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터키인들의 그런 호의는 종종 한국인들이 터키를 여행하다가 문제가 됐을 때 경찰들이 여권을 보고 웃으면서 덮어주는 ‘봐주기’로도 나타난다. 특히 터키 남부 이즈밀과 같은 도시에는 쿠르드 반군들이 활동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삼엄함이 있다.

   
 

터키의 원류인 돌궐과 고구려의 관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아주 골치 아픈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 특히 독일인이 쿠르드인과 함께 있다가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리면 거의 경찰서로 끌려가서 구금돼 조사를 받거나 추방당할 위험이 높다. 여성이 서빙하는 바와 같은 술집에서라면 더 심각해진다. 그래도 한국인들이라면 거의 패스되는 무용담은 흔하다.

터키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6·25 참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들의 원류 투르크의 역사를 아는 터키인들이라면 한국인에 대한 호의와 우정은 더 깊은 유대감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바로 오늘날 터키라 불리는 그 원형에는 우리가 고구려 역사에서 배운 돌궐(突厥)족이 있기 때문이다.

돌궐은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종족이다. 오늘날 북경어가 아닌 당시 중국어의 ‘중고한음(中古漢音)’으로 ‘돌궐(突厥)’을 읽으면 ‘tu-guet’에 가까웠다. 바로 ‘뚜르크’(Turk)라는 그들의 정치적 부족연맹을 음사한 것이다.

돌궐은 6세기에 유연의 지배에 놓여 있다가 아사나씨(阿史那氏)의 족장 Tumen(土門:만인의 長이라는 뜻)이 유연·철륵을 격파하며 독립하게 된다. 돌궐의 초대 군주 이름은 이리가한(伊利可汗)이었다.

돌궐어로 ‘ilig qagan’이라고 발음한다. 독자들은 여기서 ‘이리’(伊利)라는 어휘를 눈여겨보고 기억해 둬야 한다. 이 단어가 고구려 연개소문과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돌궐과 고구려는 6세기에 서로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7세기에 이르면 상황이 바뀌어 연맹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기막힌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고구려 영양왕은 7세기 초 돌궐과 손잡고 수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사신을 오르도스(현 내몽고자치구)에 보냈다. <삼국사기>에는 그곳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의 긴박한 상황이 잘 서술돼 있다.

고구려 사신들이 돌궐의 계민카간과 작전 모의를 하던 중에 급한 전갈을 받게 되는데 수나라 양제가 순시 중에 예고 없이 계민카간의 막사에 들르게 된 것이다. 그러자 고구려 사신들은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자리를 피할 사이도 없이 수양제는 막사에 들어섰고, 계민카간으로부터 ‘고구려 사신들’이라는 설명을 들은 수양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당시 동돌궐의 계민카간은 수양제에게 충성을 약속한 터였기에 고구려 사신들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 고구려벽화

<삼국사기>에 나타난 고구려와 돌궐

수양제는 1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쳤다가 별무소득으로 끝나 돌아왔던 수문제의 아들이었다. 그런 동북아의 강자 고구려가 돌궐과 손잡게 되면 수나라의 운명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삼국사기>는 수양제가 그 자리에서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서술한다. 그런 수양제는 다시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칠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살수대첩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로부터 약 30년 후에 등장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이다. 일본서기에는 연개소문을 이리카수미(伊梨柯須彌)라고 적고 있다. 이 문제는 고구려를 연구하던 역사학자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난제였다.

연개소문=이리카수미간의 대응을 알 수 없었고, 이리카수미(伊梨柯須彌)라는 일본서기의 표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는 이리카수미, 즉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대대로(大對盧)였던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등 180명을 살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연개소문 이리카수미(伊梨柯須彌)와 신원미상의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는 각각 고구려의 대막리지와 대대로였다. 그 직책들은 고구려의 1등 관급이었다. 통치권에 있어 왕의 다음가는 우두머리들에게 만주족들은 두만(頭曼)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바로 ‘1萬의 長’이라는 의미였고 그 발음은 ‘Tumen’이었다. 돌궐의 선조로 여겨지는 흉노족의 두만선우(頭曼單于)가 그랬고, 조선 이성계도 그를 따르는 여진족들 사이에서 ‘頭曼(두만/Tumen)’이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다른 ‘두만/Tumen’을 이미 알고 있다. 바로 고구려와 손잡았던 돌궐의 ‘伊利可汗(이리가한)’인 ‘Tumen(土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리(伊利)’의 투르크어 ‘il’은 다스림과 함께 나라를 의미한다.

다소 복잡해진 추론의 결과는 이렇다. 돌궐과 손잡은 고구려는 자신들의 관직에 대해 돌궐인들과 같은 의미의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고, 돌궐인들과 어떻게든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오랜 친연관계를 갖고 있다는 추론이다.

   
▲ 중앙아시아 아프리시압의 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인

고구려에 스며 있는 투르크어의 요소

그것은 수양제가 이리가한의 막사에서 고구려 사신들을 조우했을 때 그의 참모 배구진이라는 자가 수양제에게 이렇게 말한 부분에서 더 분명해진다.

“高麗本孤竹國(고구려본고죽국)…” 즉 배구진은 그의 주군 수양제에게 고구려는 원래 ‘孤竹國(고죽국)’이라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수가 고구려를 치지 않으면 필시 화가 있을 거라는 건의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뿌리가 된 고죽국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고죽국은 백이와 숙제의 고사가 있는 나라다.

주(周)대에 이미 존재했고 세력의 범위는 난하 하류에서 대릉하(大凌河)에 걸치는 발해만 북안 일대이고, 그 중심지는 대릉하 상류의 요령성(遼寧省)으로 비정되고 있다.

문제는 그곳에서 기자(箕子) 가문의 것들로 보이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가 발견됐고 고죽국이 기자조선과 모종의 연관이 있음이 강력하게 대두됐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孤竹’이라는 한자를 주나라 시대의 ‘漢語上古音(고대 한자음)’으로 읽으면 gog(孤) truk(竹), 즉 ‘곡 뚜르크’가 된다는 것인데, 이 음가는 다름 아닌 돌궐 즉 투르크족이 자신들을 표시하던 Gog Turk(하늘의 투르크)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자를 이해하는 투르크인들, 즉 오늘날 터키인들에게 ‘古朝鮮’의 ‘朝鮮’에 대해 그들의 말로 해석해 보라고 하면 여지없이 Tan-Gun(여명, 일출)으로 읽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를 지낸 고(故) 김방한 박사는 고조선의 고대 어휘에 만주어와 투르크어의 요소들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를 펴낸 인디애나 중앙아시아학과 교수 크리스토퍼 백위드는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고구려에 스며 있는 투르크어의 요소를 발견하는 논문도 썼다. 이래저래 터키와 우리가 오랜 인연으로 묶여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정석 편집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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