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개혁 없이는 대한민국 미래도 없다
농업개혁 없이는 대한민국 미래도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2.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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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의 고고학계를 일대 흥분에 휩싸이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5000년 전 동아시아 최초의 ‘밭’이 발굴됐던 것. 이는 중국, 일본에서도 사례가 없는 것이어서 한반도에서 밭 경작의 역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밭 경작은 쌀농사와 함께 농촌 공동체의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의미한다. 그러한 농업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요 산업이었다.

우리 농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1953~1961년 GDP의 42.5%의 비중을 차지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 20%대로 떨어지고, 80년대에는 10%대로 하락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 농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선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농업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슬로건은 유효하다. 그러한 농업에 정부는 육성과 보호라는 명목으로 2000년 이후 약 100조 원이 넘는 공공예산을 투자했지만, 한국 농업의 경쟁력과 현주소는 초라하기만 하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전망 2015’에 의하면 2013년 농업의 부가가치 성장률은 0.2%에 머물러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284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6만4000명이 줄었다.

또한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농가인구는 106만2000명(37.3%)으로 집계됐다.


‘경자유전’ 의식 이제는 바뀌어야

농가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데다 농촌의 고령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면서 농촌의 고령 농민들이 전통적인 쌀 경작 외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을 경작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당연히 농촌의 주력 생산품인 쌀은 남아돈다. 쌀 소비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쌀농사밖에 모르는 노령층 농민들을 위해 정부가 쌀 직불금을 비롯해 온갖 보조금을 지급하니 농민들은 쌀이 남아돌든 말든 생산하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가격이 떨어진 쌀값을 보전해 달라고 농민들이 다시 정부에게 쌀 수매가 인상을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악순환의 고리가 한국 농업에 고착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여전히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농지와 같은 농지보호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농지는 다른 용도로 전환하지 못하며 그 비율은 현재 전체 농지의 약 80%에 달한다.

문제는 농촌에 사람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내버려진 농지가 해마다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유휴농지를 구입해 귀농인들에게 불하하는 방안을 고안하기도 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경작비가 해마다 상승하는 데다 생산물의 유통과 가공의 인프라가 열악하고 유기농 생산의 한계와 검사 체계의 미숙으로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의 투자와 참여가 불가피하지만 이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원칙에 묶여 있다. 무엇보다 농민들의 지나친 배타의식이 대기업의 농업생산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동부그룹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첨단 유리온실사업에 투자했지만 생산시점에 이르자 농민단체들의 막무가내식 ‘떼법’을 못 이기고 사업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당시 동부그룹의 계열사 동부한농팜은 정부의 시범 영농사업과 수출농업 활성화 차원에서 500억 원을 투입해 화옹간척지에 동양 최대 규모의 최첨단 유리온실을 구축했다.

그곳에서 연간 5000톤의 토마토 생산과 전량 일본 수출계획을 갖고 있던 동부그룹은 2013년 첫 토마토 생산품을 수출하기 직전 농민단체들로부터 ‘왜 대기업이 토마토를 생산하느냐’는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농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힌 동부그룹은 정부의 무책임한 방관 속에 결국 화옹유리온실과 논산유리온실에서 손을 떼야 했고 출하를 기다리던 수백 톤의 토마토는 썩어 나갔다.

이 사건은 대기업들로 하여금 정부가 농민단체들의 눈치를 보는 한 국내 농업에 투자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농민단체들은 얼마나 경쟁력이 있으며 ‘농자천하대본’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추고 있을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농업보조금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의 농업융자·보조금을 부당하게 받거나 사용했다가 적발되는 건수와 적발 금액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농업 융자·보조금 부당사용 건수는 지난 2010년 1007건이던 것이 2011년 1249건, 2012년 1410건, 2013년 1527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융자·보조금 부당사용액도 2010년 267억 원에서 2013년 508억 원으로 3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국가 농업 보조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자체들 마다 보조금 관리 강화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주어진 예산을 다 쓰지 못하면 익년도 예산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묻지마 보조금’이 제대로 관리될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우리 농가의 경쟁력은 어떨까.

명절 때만 되면 지자체들과 농협은 한우 홍보 마케팅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품질이 좋다는 한우는 단 한 건도 해외에 직접 수출한 사례가 없다.

 

한국은 지난 해 국제동물수역국(OIE)로부터 ‘광우병 청정국’ 지위를 어렵사리 받아냈지만 올해 초 다시 충청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구제역이 발생한 국가의 쇠고기는 해외에 수출하지 못한다. 구제역 발생일로부터 2년간이 지나야 다시 국제동물수역국으로부터 구제역 청정지역 승인을 받게 된다.

최근 농협의 주도로 ‘한우 수출전략회의’가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한우사육의 위생문제’를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한우 사육방식으로 선진국에 섣불리 한우를 수출했다가는 상대국으로부터 현지 검사나 전수 검사 요구를 받을 수 있고 그 타격이 자못 클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우 유통을 독점하다 시피해온 농협은 무얼 했던 것일까. 농협이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한우 사육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드물다.

투자이익을 분배하는 영리기업이 아니기에 경영적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재배농가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칠레 FTA와 한미 FTA 이후 우리 농산물에 대한 해외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그러나 정작 농가들은 원산지증명을 하는 방법을 몰라 많은 수출 기회를 놓쳤다. 지금도 그런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는 농가는 드물다. 그저 국내 판매를 중심으로 작황에 따라 가격이 오르고 내림에 울고 웃는 사태만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고 계약재배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현재 농업의 생산에는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의 참여가 금지돼 있고 영농조합형태의 농업기업만이 직접 생산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영농조합기업들이 유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검증되지 않은 농산물 유통기업들과 농가 사이에 이뤄지는 소위 ‘밭떼기’ 계약재배는 가격이 폭락하면 유통업체가 줄행랑을 치거나 심지어 고의부도를 내 농민들을 울리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1970년대 퀀텀펀드를 설립해 10년간 4200%의 수익률을 기록한 전설적 투자자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앞으로 금과 같은 전통적인 원자재보다 농업이 더 유망하다’며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권했다.

그는 ‘앞으로 20년은 농업의 흥미로운 투자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로저스는 미국 농부의 평균 연령이 58세, 한국은 65세일 정도로 농업 부문의 고령화 현상을 꼽았다.


대기업 자본 투입이 농업 살리는 길

앞으로 대부분의 농부가 죽거나 은퇴하면서 새로운 인력을 끌어들이려면 농산물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종종 농산물 가격 상승의 배후에는 투기꾼이 있다고 비난하지만 전 세계 수요 급증으로 농산물 재고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로저스는 지적했다.

세계 인구는 오는 2040년에 90억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며 이에 따라 농작물 생산량도 같이 늘어나야 하지만 물 오염과 바이오연료 수요 급증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그렇다면 해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을까. 대기업이 쌓아 놓았다는 부를 바로 미래 농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물고를 터주는 방법 말이다.

‘농자’가 미래의 ‘천하지대본’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농업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정호 연세대 교수(경제학, 프리덤 팩토리 대표)는 농업을 살리려면 기업형 영농 외에는 해답이 없다고 단언한다. 김 교수는 과거 우리 건설업도 지금의 농업처럼 목수들을 중심으로 일하던 형태였지만 기업의 참여로 현대건설이나 삼성건설이 등장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농민들은 기업이 농업 부문에 진출하는 것을 일종의 침략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기업이 농업에 진출하면 농민들의 설 땅이 없어진다는 것이죠.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인데도 그런 생각이 농민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왜 ‘현대농업’이나 ‘삼성농업’과 같은 회사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할까요?”

 

우리 농민들이 기업을 마치 ‘농민의 적’쯤으로 인식하는 동안 해외로부터 기가 막힌 뉴스가 보도됐다. 인삼 한 뿌리 재배하지도 않는 스위스의 한 기업이 인삼제품을 개발해 전 세계 인삼시장의 40%를 휩쓸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스위스의 제약회사 베링거링겔하임의 자회사인 파마톤사(社)가 사포린을 이용해 캡슐형으로 만든 자양강장제 ‘진사나’(Ginsana)가 바로 그 주인공. 진사나는 지난해 30억 달러, 우리 돈 약 3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비결은 사포닌의 국제규격화 획득에 있었다.

고려인삼이라는 브랜드로 인삼 종주국이었던 한국은 중국과 캐나다에 밀려 이제는 스위스에 인삼시장을 거의 통째로 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배경에는 인삼시장에 대기업들의 투자와 직접 생산을 허용하지 않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있다.

여전히 인삼농가들은 재배의 청정원칙을 잘 지키려 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인삼농가들이 과도하게 농약을 친 인삼을 속여 농협에 납품했다가 구속되는 사건들이 벌어졌다.

결국 인삼공사나 농협에 의해 수매가 거절된 농약인삼들은 한약재 시장이나 재래시장으로 유통된다. 농민들 스스로 자기 생업의 기반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야에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지 않는다면 과거 불량식품이 대세였던 골목 먹거리 수준의 한국 농업 현주소는 개선되기 어렵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CJ제일제당이 닻올린 농가상생 ‘행복농업’>

지난 1월 29일 한국경제신문의 한중 FTA 대응 포럼에서 김창수 CJ제일제당 사장이 실천을 천명한 농가상생형 ‘제주 행복농업’이 농업계로부터 주목을 끌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농민과의 동반 성장을 위해 제주도 지역에 CJ제일제당의 다수확 신품종 콩나물 콩 종자인 ‘CJ행복한1호’를 보급하고 계약재배를 실시하기로 했다.

올해 시범적으로 제주 5지역 9농가에 10만 평 규모로 종자 보급 및 계약재배를 진행하는 CJ제일제당은 농가와 함께 출자해 영농법인을 세우고 첨단 영농기술을 전수하는 역할과 함께 이를 계약재배로 유통·판매한다는 기획이다.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기구로 기업-농민-정부-전문가 다자간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 협의체도 공식 출범된 상태다.

콩나물 콩 종자 보급 및 계약재배 사업을 CJ제일제당과 농민, 정부, 전문가 집단이 공동으로 계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농가소득 향상과 기업 가치 극대화를 동시 달성하는 CSV의 성공적인 모델로 안착시키겠다는 취지다.

CJ제일제당은 앞으로 콩나물 콩뿐 아니라 새로운 종자를 농민에게 보급하고 계약재배 추진 지역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향후 한중 FTA 타결로 농산물 수출입이 활발해지면 콩나물 콩을 비롯한 국내의 고품질 잉여 농산물의 중국시장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농업 CSV모델 구축을 통해 안전한 농업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임석환 CJ제일제당 CSV경영팀 팀장은 “이번 제주 콩나물 콩 종자 보급 및 계약재배 사업은 농가 소득 향상과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공유가치창출의 성공적인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공유가치창출 협의체의 출범을 계기로 앞으로 쌀,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을 주제로 제2, 제3의 전문가 간담회를 열어 농촌 경제 활성화 및 농민과 기업 간 공유가치 창출을 위한 실천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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