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해방의 기쁨 다시 빼앗길까 두렵다
자유와 해방의 기쁨 다시 빼앗길까 두렵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08.0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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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 우리 민족은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있었다. 첫째는 계급주의를 깨뜨리는 일이요, 둘째는 사대사상을 쓸어버리는 일이요, 셋째는 미신을 없애는 일이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큰 혁신을 해보려는 때, 한편에서는 서학을 반대하여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東學)이 일어났다. 이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자극에 영향을 받아 깨어나는 일종의 자각운동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때 우리 민족에겐 세계의 물결로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계기가 왔다. 기차, 기선, 전신, 전화가 생기고 전에 보던 대국 사람 되놈이나 왜놈만이 아니고 가지가지 얼굴과 말과 글을 가진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아라사, 화란 사람들을 만난다. 전에 못 보던 기계들이 온다. 총, 육혈포, 자명종, 천리경, 인쇄기가 우리의 옛 생각과 지도와 정치를 송두리째 바꾸게 한다. 

어제까지 바다 가운데 왜놈이라 업신여기던 일본이 명치유신을 하여 봉건시대의 막부를 집어치우고 근대식 나라를 세우고, 군사를 서양식으로 훈련시켰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세력이 쇠하자 만주에서 여진의 여러 부족이 일어나 서로 다투고 있는 동안 동가강 유역에서 일어난 누르하치가 선조 16년에 군사를 일으켜 여러 부족을 쳐서 힘을 결집한 후 조선에 임진란이 일어난 것을 보고 도움을 주겠다는 사신을 보내왔다. 우리 조정은 명·청 사이에서 어느 편에 붙는 것이 유리할까 그것만을 기다리는 형편이 되었다. 

인조 4년 만주에서 누르하치가 죽고 그 아들 태종이 서더니 그 이듬해 조선이 명나라와 통해 자기네를 칠 계획을 한다는 구실로 3만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와 의주, 곽산, 정주, 만주가 함락되고, 임금은 강화도로 피신했다. 평양이 떨어지고 적병이 강화까지 오므로 굴복하여 형제의 의를 맺고, 만주에서는 국호를 대청(大淸)이라 하고 조선을 향해서는 군신관계로 하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게 했다. 이것을 거절하자 인조 14년에 청 태종이 10만 대군을 끌고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일본은 새 문명을 받아 혁명에 성공했고, 중국은 청나라를 세워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 우리 조정에서는 수구파와 개화파로 갈리고, 친일, 친청, 친러, 친미로 갈라져 요염한 창녀처럼 오늘은 이놈에게 내일은 저놈에게 제 몸을 내주며 구차한 안락을 탐하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신흥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일본과 아편전쟁과 청불전쟁으로 국가의 힘이 약해진 청나라는 조선 지배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힘 겨루기를 하던 중 우리 조정은 동학농민군의 진압을 청나라에 요청했다. 이때 일본은 한반도에서 청나라의 영향력 제거를 위해 일본군을 파송한다. 일본은 조선의 정치 체제 변경을 요구하며 민 씨 일당 제거를 시도한다. 우리 땅에서 맞붙은 청일전쟁 8개월 만에 일본은 청국을 굴복시켰다. 

도쿠가와 막부 300년 동안 일본은 튼튼한 중산층을 발달시켰고, 중국을 대신하여 아시아를 다스릴 종주국으로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남의 나라 눈치만 보며 정쟁(政爭)만 하다 대원군은 중국에 붙들려가고, 민비는 일본군 손에 죽고, 임금은 쫓겨나고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이 되어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아직도 이 나라 지도자들은 미·중·일·러의 틈바귀에서 눈치만 보면서 당리당략에 빠져 사리사욕만 채우고 있다면 고난의 역사에 찾아온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다시 빼앗길까 두렵다. 역사의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세계 역사에 공헌하는 민족으로 이제는 깨어야 한다. 민족으로 깨고, 세계에 깨고, 시대에 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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