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기의 달인들
말 바꾸기의 달인들
  • 정용승 자유기고가
  • 승인 2016.04.1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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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제언] 20대 총선과 포퓰리즘 공약 남발

행정복합도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한미 FTA는 친노(親盧)들의 작품. 세월 흐르자 격렬 반대. 그들의 본심은 국리민복이 아니라 애오라지 포퓰리즘 

“1급 공무원은 1주일 중 1일만 세종에 머물러서 1급이다. 2급은 2일, 3급은 3일, 4급은 4일 머문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현재 정부 17부 5처 가운데 10부 4처가 세종에 둥지를 틀고 있지만, 대부분의 회의는 서울에서 열린다. ‘주요국정협의체 회의 개최 현황’에 의하면,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72.2%의 주요 국정 협의를 위한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때문에 고위 공무원들을 세종시에서 얼굴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보다 KTX에서 보내고, 열차 안에서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한다.  

열차를 많이 이용하다보니 시간 낭비는 물론이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한국행정학회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세종시 이전에 따른 공무원 출장비용이 연간 1200억 원, 광의의 행정·사회적 비효율 비용은 2조 8000억 원에서 4조 8800억 원에 이른다. 

뿐만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세종시 기피현상도 심각하다. 올해 행정고시 재경직 수석을 차지한 사무관이 기재부 대신 행자부를 선택한 것을 두고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그동안 교육훈련과 시험을 통틀어 재경직 수석은 기재부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재부가 2012년 말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기재부의 인기가 다소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모든 면에서 행정부 세종시 이전은 국정의 총체적 비효율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지난 3월 28일 20대 총선 공약을 설명하면서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라는 경천동지할 내용을 발표했다. 그의 계획은 이렇다. 

“일단 국회 분원을 세종시에 만들어 정부와 국회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국회를 실질적으로 이전하는 것은 장기적 과제로 여러 가지 논의를 거쳐 이뤄질 것이다.” 

대전에서 개최된 대전·충남 후보 연석회의에서 국회의 세종시로의 단계적 이전론을 밝힌 것이다. 더민주는 당 홈페이지에 올린 총선 공약집에서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내걸었다. 올해 안에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만들고,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세종시로 국회 전체를 옮기겠다는 것이 공약의 골자다. 

그러나 이 공약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하루 만에 철회했다. 이렇게 막이 내린 줄 알았던 공약이 김 대표를 비롯하여 당 지도부의 입을 통해 또 다시 살아났다. 지난 3월 29일 이용섭 더민주 총선정책공약단장은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하여 국회 분원 세종시 이전에 대한 당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직자들이 국회에 오고가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또 국회도 행정부를 효율적으로 견제하려면 그 옆에 있어야 한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세종시가 건설되었는데, 이게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즉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민주의 국회 세종시 단계적 이전 공약은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내세웠던 공약과 비슷하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났고, 계획은 폐기됐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 대신 정부 부처를 대거 내려보내 대한민국 정부는 ‘KTX 정부’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김 대표도 “2004년 헌재 (위헌) 결정을 고려할 때 지금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인다”는 말로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어 김 대표는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계기도 있고, 정치 상황에 여러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개헌 없이 국회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단계적 이전론을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 지난 2004년 행정수도 이전의 위헌 결정으로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더민주가 국회 이전 공약을 내세우고 당대표가 이를 확인하는 발언까지 한 것은 충청권 민심을 잡기 위한 전형적인 총선용 포퓰 리즘이다.

진정성과 책임성

충청권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권 민심을 잡을 수 있었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힘이 됐다. 김 대표는 그 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즉, 김 대표의 발언은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적이다. 충청권의 민심을 잡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포퓰리즘 공약에는 진정성과 책임감이 빠져 있다.

만약 ‘국회 세종시 이전’ 공약이 더민주의 진정성 있는 공약이었다면, 주위의 비판에 굴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세종시로 옮겨야 하는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국민들 앞에서 말했을 것이다. 주변의 비판에 바로 공약을 지워버리는 모습은 더민주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야당의 이런 모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자신들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 수없이 말을 바꾼 사례를 찾아보면 끝이 없을 정도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관련 발언들이 그렇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권이었던 2007년 4월 타결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의 손학규 전 대표는 “한미 FTA를 계기로 국론통합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4·9 총선 직후에는 “한미 FTA를 조속히 처리하여 통합민주당이 신뢰받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말로 한미 FTA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 전 대표뿐만 아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7년 4월 13일 MBC에 출연해 “한미 FTA는 최선을 다한 협상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에 정말 만족한다”고 밝혔다. 

한미 FTA 협상 당시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 역시 “한미 FTA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며 적극 지지 의사를 표출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이 있은 지 4년 후인 2011년부터 그들의 태도는 정반대로 달라졌다. 2012년 3월 15일 발효될 한미 FTA를 앞두고 독소조항이 있다며 극렬하게 반대하기 시작했다. 한 전 대표는 2012년 초 “한미 FTA는 굴욕적인 불평등 협상이라고 판단한다”며 “총선에서 승리하면 반드시 폐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년 전과는 정반대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말 ‘나는 꼼수다’에 출연해 “한미 FTA는 꼭 할 필요가 없는 정책이었다”며 “지금의 FTA는 추진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당시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은 ‘그럼 왜 자신들이 추진하던 때는 그 사실을 몰랐느냐’는 질문에 “잘 몰랐다”고 답변하여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제주 해군기지에서 보여준 이중성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서도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7년에 계획됐다. 건설 배경은 대한민국의 수출입 물량의 99.8%가 제주 남방해역을 지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안전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사적으로도 필요한 결정이었다. 만약 이어도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경우 현재 해군 작전사령부인 부산에서 이어도까지는 481㎞에 달한다. 만약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불과 174㎞로 그 거리가 줄어든다. 

결정 절차 또한 무리 없이 진행됐다. 2007년 4월 26일 강정마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 의결을 했다. 다음 날 기자회견을 가졌고, 30일에는 도의회에서 강정마을을 남원읍(위미), 안덕면(화순)과 함께 후보지로 포함했다. 5월 12일 최종 여론조사 결과 강정마을에서 찬성이 56%로 가장 높았다. 그렇게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 결과에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해군기지 유치의 결단을 내려준 제주 특별자치도 도민과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도 7월 23일 제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주 해군기지 논의가 미군기지 또는 미국의 MD체제와 연관됐다는 식의 왜곡된 시각이 있다”며 “제주가 평화의 섬이라는 이유로 군사기지 건설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는 말로 해군기지 건설을 지지했다.  

유 전 복지부 장관 또한 2007년 8월 26일, 강연회에서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가 대양의 평화를 지키는 전진기지가 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적극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미 FTA 때와 마찬가지로 적극 지지하던 세력들은 정권이 바뀌자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 유 전 복지부 장관은 건설 지지 발언을 한 지 5년 후인 2012년 “지금 진행되는 공사는 중단돼야 한다”며 “그 다음 새로운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한지 논의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다수의 야당 의원들도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단순히 목소리만 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건설반대 시위를 독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각종 시민단체들이 강정마을로 몰려들어 조직적으로 정부 추진 공사를 방해했고, 해외의 ‘평화단체’라고 이름이 난 반전단체, 좌익단체 사람들까지 몰려와 공사 반대 시위를 하고 공사를 방해하는 등 온갖 잡음을 일으켰다. 

정작 제주도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외지인”이라며 “시끄러워서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러한 불편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올해 3월 26일 완공됐다. 그러나 국내외 좌익단체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와 공사 방해로 완공은 예상보다 약 14개월 정도 지연됐고 공사 지연으로 인해 275억 원 정도의 손해를 봤다. 

야당의 신뢰성 회복해야 

두 상황에서 공통점은 말 바꾸기다. 또 한 가지 있다면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게 이유였을까. ‘나쁜’ 정책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에게 표를 던져줄 것을 호소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 시절 자신들이 기획하고 입안하고 추진했던 정책들은 ‘나쁜’ 정책이 됐고 부정됐다. 그리고 자신들의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소위 반정부 운동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미 FTA 반대 시위에 참여해 연설을 하는 것은 물론, 강정마을로 직접 내려가 시위에 참여하거나 주도했다. 자신들이 추진했던 정책이라는 것을 잊은 것처럼 말이다. 즉, 정책의 타당성이나 국가를 위한 행동이 아닌,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선택에 무게를 뒀다.  

이런 과거의 행태들이 다시 한 번 김 대표의 입으로 재현되고 있다. 그렇기에 국회 분원 세종시 이전 정책이 야당의 장고 끝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애오라지 충청권의 민심을 잡아 총선에서 승리하려는 의도라고 보일 수밖에 없다. 

더민주는 포퓰리즘 논란이 나온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따라가는 직업이 아닌 이끌어야 할 리더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바닥인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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