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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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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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선 통일방송 대표 · 이북9도민정착위원회 위원장
내가 김상철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1월 3일이었다. 북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압록강-두만강봉사대’를 설립해 중국동북지방에서 활동하다가 완전히 괴멸당해 한국으로 철수한 것이 2001년 11월이었고 이민복 동지로부터 추천을 받아 김상철 선생을 만난 것이다.
 
당시 김상철 선생을 주축으로 하는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는 탈북자들을 국제적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유엔청원운동을 전국민적운동으로 벌여 1180만 명의 서명지를 유엔에 제출했고 동시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민복 동지를 통해 김상철 선생이 1997년까지 남한으로 입국한 탈북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합동심문소인 ‘대성공사’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야만적인 고문행위를 원천적으로 중단시켰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속으로 한없이 존경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선교를 진행하던 김동식 목사님이 북한으로 납치될 때 우리 조직의 동정남 조직부장 부부가 동반 납치돼 갔는데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 김동식 목사님이 김상철 선생의 탈북난민보호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김상철 선생의 조직에서 중국으로 넘어 온 탈북자 구출활동을 총괄하기로 했다. 당시에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극심한 경제적 난관에 봉착했었고 30만 여명의 북한 주민들이 중국으로 탈북한 상황이었다.
 
국제사회와 남한 시민단체들의 탈북자들을 국제적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이 거세지자 중국 당국은 한해에 1만 여명의 탈북자들을 강제북송하고 있었다.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은 1~2년 안에 30%가 사망했고 겨우 1%만이 다시 탈북해 중국으로 넘어왔다.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북한 여인들이 중국인들에게 인신매매 당했다. 한마디로 21세기 인신매매 시장이 두만강 가에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정책도 강구하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은 정보가치가 있는 탈북자들만 선별적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이북5도민들 앞에서 역설했다. 중국 땅에 들어 온 탈북자들은 그곳도 안전한 곳이 못 되자 죽음을 각오하고 남한으로의 입국을 시도했다. 중국주재 한국영사관들은 밀려드는 탈북자를 우리가 대북 반정부 활동을 하며 열어 놓은 제3국으로 가는 루트로 떠밀어 보내기 시작했다.
 
2002년 초가 되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던 한국교민들과 한인교회들도 완전히 손을 들었고 한국의 영사관들은 탈북자들의 지원을 철저히 외면했다.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때, 그가 나섰다
 
김상철 선생은 급히 나를 제3국으로 파견해 상황을 파악하고 긴급대책을 세웠다. 당시는 김대중 정부 때라 관계가 서먹했지만 탈북자 구원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드디어 2002년 4월 정부 예비비를 투입해 한국영사관으로 찾아오는 탈북자들을 전부 받아들이는 정부의 정책이 실행됐고 다음해부터는 정식 예산이 책정됐다.
 
산 넘어 산이라고 탈북자들의 남한 입국 길이 활짝 열리자 교민들과 종교단체들의 이권사업으로 비화되고 심지어 깡패들까지 뛰어들었다. 외국에서 1명의 탈북자를 하루 데리고 있으면 그 비용이 한국영사관으로부터 ‘묻지마 지급’됐기 때문이다. 어떤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탈북자들을 좁은 모텔에 100여 명씩 감금해 놓고 영사관으로부터 돈을 받아냈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탈북자들은 자살까지 했다.
 
김상철 선생은 나를 또 다시 현장조사 보냈다. 그런데 현지 영사관들은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교민들과 협력해 필사적으로 대응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보수 시민단체들의 정당한 활동을 정면으로 방해할 때였다. 김상철 선생은 소병용 전 유엔 대사와 송부근 목사를 비롯한 현장조사단을 구성해 파견했다. 그때에야 호치민 총영사관이 솔직한 자세로 나왔다.
 
김상철 선생은 종합된 자료를 가지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항의 성명을 전달하고 시급한 대책을 강구했다. 그렇게 2004년 베트남 호치민에서 468명의 탈북자들을 전세기 2대로 공수하는 대작전이 전개됐다. 그 이후 2002년부터 한해 1000여명의 탈북자들이 남한 이주하는 시대가 열렸고 2004년 드디어 한해 2000명의 탈북자들의 입국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대선 후보 때 대통령이 되면 무조건 중국정부에 탈북난민 강제북송을 저지하도록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식으로 탈북난민문제를 거론했고 중국 방문 때도 강조했다.
 
2007년 김상철 선생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남한 입국 북한주민 1만 명 시대 기념회’를 주최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 모두가 탈북난민구원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나에게 표창장을 수여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김상철 선생을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로 추천할 것을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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