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에 드리운 정몽준의 운명
안철수에 드리운 정몽준의 운명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2.09.1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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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단일화 역선택 변수, 'AGAIN 2002' 될까

최근 몇년간 치러진 크고 작은 선거에서 야권의 필승 방정식은 후보 단일화를 통한 선거연합이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전국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며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을 꺾고 승리할 수 있었다.

후보 단일화의 방법으로는 단연 여론조사가 손꼽힌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의 방법도 여론조사였고, 앞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무소속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승리하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민주당 등 기존 정당에는 입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그렇다면 정당에 속해 있지 않은 안 원장이 민주당 소속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단일화를 하는 방법은 여론조사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원들과 대의원들을 동원한 선거인단 투표 또는 모바일선거가 될 경우, 조직력에서 뒤지는 안철수 원장에겐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에서조차 문재인 이사장이 승기를 잡고 있다는 조짐이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7일과 10일 이틀 동안 19세 이상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 단일후보 경선이 치러진다면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문 이사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39.5%로 집계됐다. 안 원장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37.1%였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문재인 지지?

문재인 이사장은 그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다자대결 시 박근혜-안철수 양강 구도에서 한발 밀려나 있는 3위에 그쳤다.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도 문 이사장은 안 원장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 이사장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역선택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겨레신문과 KSOI가 지난 7일과 8일 양일간 공동으로 실시하고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 중 야권단일화 후보로 민주당 후보를 꼽은 비율은 54.1%로 나타났고, 안철수 원장은 22.6%에 그쳤다. 이로 인해 안 원장의 본선경쟁력을 우려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이는 민주당 후보를 역으로 선택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선택은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 실행되는 일종의 편법으로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노무현-정몽준 여론조사 단일화에서도 활용된 의혹이 있다. 2002년 11월 24일 실시된 ‘리서치 앤 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46.8%의 지지를 얻어 42.2%에 그친 정몽준 후보를 누르고 단일후보로 결정됐다.

문제는 이 여론조사 당시 대구-경북의 지지율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이 지역에서 정몽준 후보는 조사대상자 400명 중 단 한명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좌파성향의 노무현 후보가 100%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이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상대라고 여겨졌던 노무현 후보를 역으로 선택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중도우파 성향의 정몽준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양자대결을 벌일 경우 기존의 좌파성향 표에 중도층까지 대거 흡수하면서 어려운 싸움이 되리라는 것이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전략적 역선택’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이회창 후보 진영에서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라고 여겼던 노무현 후보는 단일화 여론조사 승리 직후부터 이회창 후보에 오차범위 밖의 격차로 앞서기 시작했다.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가 2002년 11월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 후보는 42.2%의 지지율로 이 후보(35.2%)에 앞섰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에 힘입어 여론조사에서 승리, 단일후보가 된 노무현 후보의 실제 지지율이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급등한 것이다. 결국 노 후보는 한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고 계속 앞서간 끝에 2.3%p의 격차로 앞서며 당선된 바 있다.

프로야구, 올림픽의 ‘역선택’

승부에서 편법을 사용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았던 사례는 많다. 지난 1984년 프로야구에서 김시진-김일융 두 에이스들을 앞세워 전기리그를 쉽게 우승했던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껄끄러운 OB 베어스가 아닌 롯데 자이언츠를 만나기 위해 후기리그 마지막 경기에 롯데를 상대로 져주기 게임을 했다. 그러나 야구팬들은 이에 진노했고, 삼성 선수들의 사기는 급감했다.

반면 삼성이 자신들을 만만하게 본다는 사실을 체감한 롯데 선수들의 투지에는 불이 붙었다. 결국 롯데는 코리안시리즈에서 최동원의 ‘4경기 완투승’에 힘입어 삼성을 4승 3패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삼성으로서는 원년도인 82년 준우승에 이어 다시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순간이었다.

가깝게는 지난 8월 폐막한 런던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여자복식 대표팀이 예선에서 져주기 게임을 했다가 몰수패를 당했고, 국제배드민턴 협회로부터 징계를 당했다. 순리대로 가지 않고 무리수를 둘 경우 역효과가 난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02년 대선에서의 패배도 당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오만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노무현이 정몽준보다 더 쉬운 상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결과는 대선 패배에 이은 좌파정권 5년의 연장이었다.

노무현 정권 5년간 간첩과 빨치산은 민주화공헌자로 승격됐으며, 북한 정권은 남한으로부터 핵무기 증강에 필요한 달러화를 뽑아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 직전까지 간 끝에 사실상 사문화됐으며, 전교조-민노총 등 극좌단체들의 위세는 더욱 강해졌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 안철수 원장과 후보단일화를 할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연방제 통일’ 방안을 주장해 왔으며, 동의대 방화사태와 미국문화원 점거사태 등 폭력-살인행위를 변호한 경력이 있다.

이러한 문 이사장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2002년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지지자들에 힘입은 역전승을 거두고, 컨벤션 효과에 이은 대선 승리를 일궈낸다면, 향후 방향은 복잡해 진다. 새누리당 지지자들로서는 여론조사 역선택에 나서기에 앞서 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와 2012년 런던올림픽 및 2002년 대선의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주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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