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비춰보는 2012 대선 형세
삼국지에 비춰보는 2012 대선 형세
  • 미래한국
  • 승인 2012.09.2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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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 편집위원

삼국지연의는 장대한 소설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군웅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장쾌한 파노라마를 이룬다. 적벽대전은 그 가운데서도 매우 비중 있는 대목이다. 삼국의 쟁패가 그 한 번의 싸움으로 결정 난 것은 아니지만 일컬어 삼국정립이라 할 수 있는 구도는 적벽대전을 거치며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조조가 천하제패 완수를 위해 손권을 치러 남정(南征)에 나섰지만 실패해 손권은 기반을 완전히 굳히게 된다. 한편 이 와중에 유비 일당도 큰 과실을 얻어 독자적인 기반을 형성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이 삼국정립 구도의 시작이었다.

유비에게 당한 손권처럼 안철수에 당하는 민통당

여기서 매우 흥미를 자아내는 세력은 유비 무리들이다. 소설에서는 마치 적벽대전의 주역이 유비와 제갈공명인 듯이 묘사된다. 공명이 지략으로 유비와 손권의 동맹을 성사시켜 조조에 대항하는 대목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正史)의 사실들과는 거리가 멀다. 적벽대전은 기본적으로는 위와 오의 싸움이었다. (아직 위, 오 등이 나라로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이렇게 칭하겠다.)

유비 세력은 조조에 패해 쫓겨 다니는 떠돌이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공명의 지략을 묘사한 대목들은 그야말로 ‘소설’이다. 유비 세력이 오와 함께 싸운 것은 사실이지만 조조에 대항한 싸움의 주역은 단연 손권 세력이었다.

그런데 적벽 싸움의 정치적 결과를 놓고 보면 유비와 공명 등을 그처럼 화려하게 묘사할 만하기는 했다. 조조는 목적 달성을 못했고 손권은 현상 유지를 했지만 유비는 독자적으로 나라를 세울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손권은 본전치기도 아니었다. 조조에 맞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당사자였지만 당연한 전리품이어야 할 전략요충 형주 성을 유비에게 뺏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2012 대선정국의 형세가 마치 그와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멀리 거슬러 올라간 견강부회인가? 하지만 민통당과 문재인의 상황을 보면 그런 연상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민통당은 MB정권과 맞서 아무튼 줄기차게 싸우고 후보를 뽑느라 꽤 땀을 흘렸다.

그에 비해 안철수가 한 것이라곤 ‘콘서트’로 광을 내고 ‘생각’을 팔아 한껏 폼을 잡은 게 전부다. 그런데도 단일후보는 물론이고 어쩌면 당 자체마저 안철수에게 헌납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손권이 당한 날치기보다 더 심한 꼴 아닌가?

유비의 후흑(厚黑)을 닮은 안철수

‘소설’ 삼국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단연 유비와 그 무리들이다. 조조는 간웅이고 손권은 존재감이 희박하다. 이것은 정사에 비춰 보면 명백히 왜곡인데, 여기에는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다. 소설 ‘연의’는 원나라 때 나관중에 의해 최종 완성됐는데 당시는 한족 중국인들이 ‘남송인’이라 불리며 몽골제국 전체에서 가장 낮은 등급으로 다뤄지던 시절이었다.

위대한 한 왕조의 추억을 더듬는 걸 위안 삼는 ‘남송인’들이 한 황실의 복원을 내세웠다는 유비 세력을 가장 친근하게 느꼈던 것은 당연했다. 여기에 송나라 때부터 본격화된 주자학적 정통론의 영향도 더해졌다. 연의는 그런 정서에 맞춰 작화됐던 것이다.

하지만 유비의 실제 면모는 연의가 그리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극히 음흉하고 기회주의적인 인물, 중국식으로 표현하면 후흑(厚黑) 즉 낯이 두껍고 속이 검은 인물의 전형이 유비였다. 청말에서 근세 중국 초의 인물인 이종오가 쓴 <후흑학(厚黑學)> <후흑열전(厚黑列傳)> 등의 저서가 있다.

한마디로 난세의 처세술을 논한 것인데 거기서 후흑의 전형으로 꼽는 인물 중 한 명이 유비다. 물론 저자는 조조도 그런 인물 중 하나로 친다. 하지만 후흑 자체로만 보면 유비가 조조의 윗길이다. 사실 이점은 굳이 정사가 아니래도 연의의 행간만 찬찬히 들여다봐도 느껴진다.

유비는 늘 자신을 한 황실의 종친으로 내세우며 황제의 숙부 격이라는 유 황숙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주 이씨이기만 하면 조선 왕실의 종친마냥 행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매우 맹랑한 참칭이지만 그럼에도 조조는 유비를 후대해 각별하게 예우했다. 그러나 유비는 결국에는 조조를 배신하고 뒤통수를 쳤다.

그런데 안철수의 행태는 이런 유비와 매우 유사하다. ‘안철수연구소’는 안철수가 서울대 교수로 가기 전 매출액이 겨우 400억 원 남짓이었다. 2011년 안철수가 정치 바람을 타면서부터 매출액이 크게 늘었지만 그래도 1000억 원에 미치지 못했고 그나마 영업이익은 100억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안철수의 생각>은 ‘안철수연구소’를 한국의 대표적인 IT기업으로 내세웠다. (정규재 한국경제논설실장) 그렇다면 2011년 매출액 6000억 원의 엔씨소프트, 2조원의 NHN 같은 회사는 뭔가? 달리 예를 들 것 없이 스마트폰 만드는 삼성전자는 IT기업이 아니고 뭐라는 얘긴가?

‘안철수연구소’는 대기업과 정부로부터 갖은 혜택과 배려를 받았다. 제품을 독점적으로 납품했을 뿐만 아니라 안철수 자신은 대기업으로부터는 사외이사, 정부로부터는 주요 공적 직책을 받아 지위를 누렸다.

그러면서도 안철수는 청년들 앞에만 나서면 정부와 대기업을 욕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자신이 모든 문제의 구원자가 될 듯이 나섰다. 후흑이 정치인의 자질이라면 그 하나는 제대로 갖춘 셈이다.

진짜 난세의 간웅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유비는 한 왕조의 수호와 복원을 내세운 반면 조조는 찬탈하려 한 인물인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연의의 작문과 주자학적 위선의 합작이 빚은 오해다. 실제로는 조조야말로 한 왕실의 마지막 수호자였다. 조조는 힘으로 보면 언제든 제위를 넘겨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실제로 조조의 가신들은 그런 건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조는 그 청을 물리치고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한 황실을 끼고 있는 게 자신의 중요한 정치적 기반 중 하나임을 고려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의 진의가 어떠했든 조조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한 왕조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지켰다.

반면 유비의 ‘유 황숙’ 운운에는 좀 음흉한 심모원려가 있었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는 한 왕조의 시조 유방의 9대손이다. 하지만 유수는 사실 전한의 정통 법통에서는 한참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유비가 내세운 한 왕조의 복원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후한 광무제의 예를 겨냥한 것이었다.

즉 유비는 조조가 제위를 찬탈해 한의 법통을 끊어 자신이 불가피하게 한을 계승하게 되는 모양을 항상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나중에 조조의 아들 조비가 결국에는 한으로부터 제위를 넘겨받았을 때 유비가 서둘러 촉한을 자처한 것에서 그런 속내는 잘 드러난다.

이에 반해 조조는 매우 담백하고도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관심은 지위가 아니라 어떤 점에선 세계 자체였다. 그는 개척하고 이끄는 실질적 힘을 원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영웅이라는 표현이 충분히 합당한 인물은 조조였으며 진정한 난세의 간웅은 유비였다.

소설로 보면 조조는 온갖 호사를 다 누린 인물 같지만 실제로는 거처 식생활 의복 모든 면에서 매우 검소한 인물이었다. 오히려 유비가 장신구 등을 탐하고 곧잘 사치에 빠져드는 인물이었음은 연의에도 나타나 있다.

구도에 연연하면 오히려 당한다

한편 손권 세력은 본래가 매우 독립적인 양자강 남쪽 강동 지역의 토착 호족세력이었다. 이 지역은 모든 면에서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다. 또 적벽대전의 경과가 보여주듯 장강이 천혜의 방어선 역할을 해주는 안정된 곳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중원으로 진출해 천하를 다투려는 의지는 약했다.

손권은 적벽 싸움에서 이겨 조조의 정벌을 막아냈지만 조조에게 그 이상의 도전은 하지 않았다. 적벽 싸움 이후 늘 다툼을 벌인 주적은 오히려 전략 요충인 형주를 삼킨 유비의 촉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싹이 엿보인다.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2012년 대선구도는 일단 3자 구도가 됐다. 물론 야권 후보 단일화로 다시 양자구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와 민통당 문재인은 처한 입지에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범야권은 단일화 자체를 최우선 과제로 간주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후보가 반드시 문재인이 아니어도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문재인과 민통당으로서는 꽤 기분 나쁜 일이겠지만 이 압박을 그냥 무시할 처지는 아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안철수는 출마 회견에서 후보 단일화에 대해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중요하고, 국민이 그것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사실 이런 식의 추상적인 조건은 충족시키기가 매우 힘들다. 더욱이 닳고 닳은 기성정치집단인 민통당으로선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모든 선택은 안철수 자신의 자의에 달려 있게 된다. 안철수는 민통당에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없다는 이유로 독자적 완주를 선택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가 더 중요하니 대범하게 단일화에 응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는 당연히 이른바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압박할 것이다. 안철수의 프레임에 완전히 걸려든 꼴이다.

하지만 민통당으로선 ‘안철수는 우군’이라는 스스로 설정한 명분 때문에 최소한의 검중공세조차도 힘들다. 조조와의 싸움이 급해 유비 세력에게 알고도 뒤통수를 당한 손권과 주유의 꼴이다. 문재인도 이를 눈치 챘는지 “단일화를 촉구하지도 연연해하지도 않겠다”고 응수했다. 지켜볼 일이다.

한편 새누리당은 안철수가 계속 완주하는 3자 구도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이런 태도는 자신의 위신만 떨어뜨린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경우의 수가 복잡해질수록 필요한 게 중심을 잡고 동요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의연함이다.

유비의 후흑이 아무리 묘기백출했어도 결국은 잘해야 외진 구석에 조그맣게 겨우 자리 잡았을 뿐이었다. 그러고도 촉은 늘 오와의 갈등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든 말든 최강자는 ‘적벽’ 이후에도 여전히 조조였다. 이 모든 것은 무엇보다도 조조가 자신의 터전을 튼튼히 하는 데 항상 신경을 쓴 덕분이었다.

조조는 적벽 싸움에서 패함으로써 중국 전토를 완전 정벌하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거는 모든 땅을 다 정벌해야 하는 식이 아니다. 51%의 승리면 충분한 게 선거다. 51%를 향해 자신의 길을 착실히 가는 것, 이것이 선거에서의 승자의 법칙의 기본임을 명심해야 한다.(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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