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출마회견에 대한 약간의 감상
안철수 출마회견에 대한 약간의 감상
  • 미래한국
  • 승인 2012.09.2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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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 운운이 가장 구태다
이강호 본지 편집위원

"네거티브, 악의적인 흑색선전에 대해서는 정치권 최악의 구태라고 생각한다." 안철수가 출마 기자회견에서 한 이야기다. 사실 안철수의 출마 회견문은 딱히 두드러진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구태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정치를 강조한 것을 언론에서도 부각시키는 걸 보니 이것을 중요한 테마로 이해해도 될 듯하다. 그런데 그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구태’ 운운과 함께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정치판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낡은 구태라는 것이다.

정치신인이나 이른바 제3후보와 같은 인물들 치고 등장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그러나 그런 만큼이나 ‘새로운 정치’에는 새로운 것이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사실 정치는 그 존재 자체부터가 태생적으로 구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인간이 등장할 때부터 정치는 이미 함께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다.

하지만 정치의 실제 기원은 사실은 인간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이 있다. 여기에 묘사된 침팬지들 사이의 정치행태는 우리네 여의도 인사들 못지않다. 아니 가뿐하게 뺨친다는 느낌의 대목이 숱하다.

정치는 본질 자체가 이미 새로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얼마나 ‘잘 하느냐’ 하는 것일 따름이다.

정치인은 선의가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 받는다

안철수는 한편 선의를 유독 강조했다.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증명하려고 합니다.” 회견문의 한 대목이다. 그의 회견을 보고 선의가 느껴진다고 평한 이도 있었다. 그의 선의를 굳이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짓궂게도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영국의 속담이 떠오른다.

선의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정치는 선의로 평가 받는 일이 아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있다. 아마추어는 사실상 취미생활이니 당연히 그 즐기는 과정만 중요시해도 된다.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프로는 결과로 평가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정치는 취미 생활이 아니다. 정치는 수많은 국민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프로 중의 프로의 일이다. 결과가 나빠도 의도는 선했음을 참작해 달라는 식의 변명이 허용되지 않는다.

일의 결과는 의도의 좋고 나쁨보다는 실력과 능력에 달려 있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게다가 운의 문제도 있다. 선의에 실력도 갖추고 치밀한 계획까지 있었어도 운수 사납게 나쁜 결과가 나오는 게 세상사의 실제다. 정치는 이런 경우에도 무조건 전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에서 선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사실은 정치의 본질적 책임을 모르는 사람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악의가 좋은 것일 수는 없지만 선의가 정치의 핵심일 수는 없다. 정치인은 의도의 순수성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운은 인간이 책임질 영역이 아니니 결국 요체는 실력이다. 안철수의 회견문 속에는 ‘실력’ ‘능력’ 등의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얘기다.

안철수의 출마 회견이 제법 반응이 있는 분위기다. 회견 시 그리고 그에 뒤이은 일련의 행보에서 보여준 정치 감각 자체는 꽤 노회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새로운 정치’ ‘선의’ 따위의, 훈훈하지만 아마추어적 풋내를 물씬 풍기는 언설을 동원하는 걸 보면 일견 유치 소박 등의 평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만만찮게 엿보이는 정치 감각을 보면 아무래도 순진한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순진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말만 골라 하는 경우는 쉽게 말해 ‘위선’이라 한다. 실력 능력 등을 평가할 수준이 못 된다는 건 이미 드러났다. 인격의 실체가 어떨지가 남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스로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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