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상의료의 현실을 보았다
나는 무상의료의 현실을 보았다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2.10.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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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보에겔리(William Voegeli)의 <네버 이너프>(Never Enough>를 읽고
 

며칠 전 500-2번 좌석버스를 타고 동원대학으로 출근할 때의 일이었다. 성남 모란고개 부근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무상의료, 무상교육 쟁취’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국가가 있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바로 북한이다. 하기야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이야기도 있지만...(실제 세계에서 양잿물을 마시면, 그 결과는 ‘사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양잿물을 마시는 것이 ‘천국’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무상의 천국' 러시아에서 생긴 일

버스 속에서 눈을 감으니 러시아 ‘우페데카’(UPDK) 병원이 떠올랐다. 1995년 6월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이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왔을 때, 가장 좋았던 점 중의 하나가 의료 혜택이었다.

1990년대 초반 러시아의 의료는 완전 붕괴상태였다. 무상의료라고 하나, 약이 없었다. 주사기도 없어서, 직접 사서 가지고 가야만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병원의 위상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병원 등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또 무료라고 하지만 의사에게 선물(혹은 뇌물)을 주지 않으면 진료를 받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혼자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아내와 어린 딸(91년생)이 러시아 생활에 합류하면서부터 의료문제에 대한 고민은 깊어만 갔다.

간단한 해열제를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암시장을 돌아다니다가 한국에서 온 선교사를 만나 가까스로 몇 알 구할 수 있었던 일 등 지금 생각하면 ‘추억’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우페데카’란 ‘외교단 지원총국’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러시아 외무부 산하 기관인데 러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 외교관, 특파원, 그리고 등록 상사원들을 관리(혹은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기관이 필요했던 이유는 사회주의 잔재 덕분이었다. 주택, 의료는 물론, 생필품 배급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던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기관에 배속되지 않은 개인은 생존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특정 국가기관에 속해 있어야 했으며 이에 외교관, 특파원, 등록 상사원들과 같은 고급(?) 외국인들은 외무부에서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우페데카’에 등록된 외국인들은 ‘우페데카’ 산하의 아파트, 병원, 상점 등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페데카’ 병원은 우선 깨끗했다. 그리고 비교적 친절했다. 또 모든 의약품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나, 1회용 주사기나 해열제와 같은 기초 의약품은 존재했다. 수돗물과 전기가 나오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이런 ‘우페데카’ 병원에 출입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는데 한국 언론기관의 특파원이 되면서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신분상승을 이룩한 것이었다.

러시아 '우페데카' 병원의 비밀

바로 이 ‘우페데카’ 병원에서 치과치료를 받을 때의 일이었다. 충치치료를 받기 위해 입을 벌리니, 담당의사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갑자기 나가는 것이었다. 잠시 후 열 명도 넘는 의사가 몰려 들어왔다.

그리고 치과과장이 필자가 이전에 한국에서 치료받은 치아를 가리키면서 “이전에 설명했던 것이 바로 이 방식이야. 최근 선진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치아를 씌우고 있어”라며 치과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에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했느냐”고. “한국”이라는 답변에 의사들 모두가 “과연 선진국은 달라”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다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제는 공개해도 되는 ‘우페데카’ 병원과 관련된 비밀이 한 가지 있다. ‘우페데카’ 병원은 대북정보를 수집하려는 한국 정보기관의 주요 관찰 대상이기도 했다.

당시 북한에서 국장급 정도의 고위관리가 모스크바로 출장 나오면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대접(?)하는 방식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페데카’ 병원에 데리고 와서 치과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치료 설비와 기술이 형편없다면서 웬만하면 참다가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가서 치료를 받곤 했는데 북한 대사관에서는 이곳으로 모시고 오는 것 자체가 접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보기관은 ‘우페데카’ 치과병원에 오는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만 잘 관찰하고 있어도 누가 출장 나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 한국 대사관과 상사들은 서울에서 출장자가 나오면 러시아 미녀들이 나오는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접대하곤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섞어서 ‘치과병원과 룸싸롱’이란 기사를 썼다가 모스크바 주재원들에게 격렬한 항의를 받은 일도 있었다.

<네버 이너프>는 ‘충분하지 않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부제 ‘미국의 제한 없는 복지국가’(America's limitless Welfare State)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복지국가 문제에 대한 책이다. 저자 보에겔리는 우선 ‘무조건적 복지국가 확대를 주장하는’ 미국 리버럴들의 무책임성과 한계를 지적한다.

베이비 붐 세대의 고령화로 인해 복지를 확대시키기는 커녕 기존 복지정책 조차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미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곳간이 비고 있는데도 퍼주겠다는 비현실적 공약(空約)만을 늘어놓고 있는 한국 대선주자들도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또 보에겔리가 인용한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정도로 큰 정부는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갈 정도로 큰 정부다”라는 제럴드 포드 전 미 대통령의 이야기도 새겨들을 만한 문구였다.

이 책에 나오는 핵심개념 중의 하나가 ‘권리화’(Rightsization)이다.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과거에는 권리가 아니었던 것이 ‘권리’로 전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은 도와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해야 한다. 이는 성경을 비롯한 많은 동서고금의 고전에서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교회(혹은 다른 종교 공동체)나 다른 자발적 소규모 공동체가 담당하는 편이 더 효율적인 것이 아닐까? 아니 국가가 나설 경우 국가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거대한 ‘관료제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

더 본질적 문제는 이제는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도와주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고마운 일이 아닌 것이 되고 있다. ‘가진 자’의 ‘의무’가 된 것이다.

바로 이 같은 ‘권리화’가 자조정신을 낡은 것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부끄러움’(shame)으로 여겼던 것조차도 ‘권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권리화’는 “항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한한 복지와 권리의 확대는 복지와 권리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해 기본적 복지와 권리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속가능한 복지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보수주의 진영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민주주의 확대 속에서 ‘복지’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 민주주의 정치’의 역관계이다. 이러한 현실관계에 기초하지 않을 경우 ‘현실정치’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지국가론의 한계’를 원칙론적 입장에서 되풀이만 하고 있는 것이 보수주의 진영이 보이고 있는 ‘정치적 무능’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보수주의자들의 세미나실에서는 통용될지 모르나 세미나실을 벗어나는 순간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공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한국)

황성준 편집위원. 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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