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우리 칠칠이
가여운 우리 칠칠이
  • 미래한국
  • 승인 2012.11.22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성원의 편지

‘엄마의 기도’를 보고 많은 엄마들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일러 달라는 얘기입니다. 초등학생을 가진 엄마들이 얼마나 애들 수학공부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제가 어린 조카 아이를 사교육의 지옥에서 건져올린 얘기가 엄마들 눈에 띈 모양입니다. 조카애는 특별히 뛰어난 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처진 애도 아닙니다.

그런 애가 3학년이 되었는데도 ‘7+7=77’이라 써놓았다니 엄마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그것도 학습지교육을 3년이나 가르친 끝이라니요.

그뿐입니까. 학교에서 돌아와선 “난 왜 수학을 못해!” “나도 한번 딴 애들처럼 다 맞아 봤으면 좋겠어”하고 징징 운답니다. 언니가 제가 교직에 있다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지만, 저도 할 일이 있고 매일 조카하고 공부 씨름만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들어보니 1주일에 한 번이면 된다는군요. 학습지 선생님도 그렇대요.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볼까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하는 제가 조카하고 수학공부로 씨름한 자세한 보고서입니다.

1. 수학 학습지 교재를 들여다봤다. 부피도 이따만 한데다 내용이 어렵고 복잡해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2. 혹시나 하고 교대 수학 교수한테 추천을 받아 시판되고 있는 참고서를 두 가지 사다 보았다. 교재나 전혀 다를 바 없었다.

3. 나 가지고는 안 되겠다. 요새 수학은 듣던 대로 과연 어렵구나. 거의 포기할 심정으로 교보에 가서 정식 교과서를 사가지고 왔다. 놀랐다. 아니, 이렇게 단순하고, 쉽고, 재미 있게 꾸며져 있는데, 참고서는 왜 그렇게 무서운 도깨비처럼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인가.

4. 조카를 데리고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주말에 1회, 30분. 아예 1-1부터 시작 했다. 아무리 ‘77’이지만 명색이 4학년인데 이거야 훌훌 넘어갈 수 밖에. 그렇게 2-1, 다 음에 3-1. 시작한 지 반년 쯤 되었을까.

5. 어느날 저녁, 놀이에 진력이 난 조카 녀석이 “이모, 심심한데 수학이나 할까.” 아, 성공 했구나!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그후 또 어느 날.

6. 하루종일 서울랜드에 가서 뛰어 놀다 돌아온 녀석이 일찍 자라 해도 “안 졸린데요.” 하 길래, “그럼 수학이나 할까?” 했더니, 두 손을 번쩍 추켜들며 “와아아!”하고 즐거운 표정으 로 환성을 질렀다. 이런 것이 선생님들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7. 예전에도 애들 교과서와는 별도로 두꺼운 교사용 교습참고서가 있었다. 그것을 조금 변 조해서 지금 아이들에게 교재로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8. 어머니들은 그런 교재를 보고 주눅이 들고, 아이들은 매사에 자신을 잃고, 어머니들의 등 쌀에 하루하루를 괴롭게 보내고 있다.

9. 제 경험으로 나온 해결책은 이렇습니다.
①오늘부터 방문 수학교습을 끊으십시오. 아이들이 일생 숫자에 거부감이 생깁니다.

②작심하고 하루 어머니가 직접 교과서를 공부해 보세요. 아무리 초중고 때 수학이 싫었던
엄마라도 너끈히 이해하고 충분이 아이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너무 쉬워요.

③1주 1회 30분. 꼭 지켜야 아이가 잘 따라옵니다.

④초등수학은 100점 받아봐야 허영심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중1때만 잘 하면 됩니다.

리나라 5000만 인구 중에 2500만은 엄마가 되고, 엄마들은 5000만의 아기들을 키웁니다.

이 엄마들을 교묘히 유도해서 저도 모르게 내 자식들을 헤어나지 못할 무간지옥으로 몰아 넣게 하고 있습니다. 이 무서운 쇠사슬을 엄마 아니면 누가 끊어 주겠습니까. 가여운 우리 칠칠이들을 엄마가 나서서 구해 주십시오.

(이 글은 얼마 전 한 여교사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성원 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