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의 어제와 오늘
지하경제의 어제와 오늘
  • 미래한국
  • 승인 2013.04.1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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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적산분배로 시작, 현대적 진화 거듭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지하경제 양성화’. 하지만 ‘지하경제 구조’를 파악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는 일제 치하에서부터 부각된 오래된 문제다. 일제 때 조직폭력배들, 상인들은 각종 사업을 벌이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 당시에는 일제 치하인 탓에 ‘정부’라는 개념이 옅어 세금 문제로 시비를 거는 이가 적었다.

일제 때부터 부각된 우리나라 지하경제

해방 이후에는 일제가 남겨두고 간 재산들을 ‘적산(敵産)’이라고 불하를 했는데 이때부터 서류위조, 차명 등기 등을 통해 지하경제가 본격적으로 커졌다고 본다.

이후 60년대 초반까지는 지하경제가 정규경제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조직폭력배들이 권력자와 손을 잡고 치안문제에까지 개입했고, 기업들도 세금을 제대로 내기 보다는 현금거래를 통해 탈세를 반복하며 세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쥐어주며 무마했다.

상인들도 미군 물품 밀매, 밀수 등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을 보며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5·16 이후 박정희 정부는 조직폭력배를 소탕하고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등 일련의 조치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시도한다. 이때 지하경제를 주무르던 조직폭력배와 화교 등은 일거에 힘을 잃는다.

하지만 모든 지하경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후로도 사채업자들이 자금 동원력이 약한 기업들에게 고금리로 돈을 꾸어주고, 기업은 공무원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주고 이권을 챙기는 등 지하경제는 계속 이어져 갔다.

이는 3공화국 시절부터 5공화국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지하경제도 함께 성장했다. 조직폭력배가 이끌던 지하경제는 대형 사채업자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이 이끌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공무원의 이권을 악용해 토지개발계획을 사전에 입수, 부동산 투기로 거액을 벌어들인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규모가 커진 지하경제 자금은 1980년대 무역 활성화와 함께 해외에서 자금세탁을 거치는 식으로 발전한다. 특히 무역업자로 위장한 자금세탁조직들은 우리나라 지하경제 자금을 미국, 홍콩, 유럽은 물론 조세피난처로도 옮겨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지하경제의 주도권이 바뀌는 사건이 생겼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다.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바뀐 구조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중심으로 불리던 서울 명동의 사채시장에서는 묘한 소문이 나돌았다.

이전까지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이나 영남의 땅 부자 출신들이 사채시장의 큰 손이었는데 이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호남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채시장에서 이상한 일들도 나타났다. 현금 동원력이 충분한 재벌기업들이 사채를 빌려다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사채시장에 기웃거렸던 재벌기업 중 일부는 공중분해됐다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지하경제는 큰 변화를 겪는다. 외환위기 이후부터 각종 불법사업자와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급성장한 재벌, 벤처기업 등이 사채시장의 ‘큰 손’처럼 행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거액 자금들도 유입됐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김대중 정부는 200조 원 가까운 ‘공적자금’을 투입해 재벌기업 간의 ‘빅딜’을 추진하고, 무너진 기업들을 회생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 ‘공적자금’ 중 60조 원이 넘는 돈이 지금까지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흥업소와 사행성 업소 등 각종 불법사업자들의 돈도 사채시장으로 흘러들었다. 노무현 정부가 90조 원이 넘는 돈을 풀어 ‘균형발전계획’을 추진할 때도 상당한 돈이 유입됐다.

일부 금융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계 사채자금과 야쿠자 자금까지도 국내에 상당수 들어와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즉,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지하경제는 영세한 사채업자나 땅 투기꾼, 세금을 빼돌린 기업인 등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해외 범죄조직, 국내 범죄조직, 금융범죄조직들이 움직이는 ‘판’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하경제라고 하면 조직폭력배가 마약을 밀매한 돈이나 사채시장에서 서민들에게 빌려주는 돈 정도로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불법사업에는 성매매업소, 주가조작 등 금융사기, 세금을 매기지 않는 고액 수집품 거래, 도박, 인신매매 등이 있다. 합법적 테두리에서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탈세·탈루를 저지르는 사업으로는 현금거래가 많은 사업, 거래규모를 조작할 수 있는 모든 사업이 포함된다.

먼저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연간 15조 원에서 20조 원 사이라고 한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만 최소 30만 명에서 최대 200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소득세부터 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박의 경우 노무현 정권 때 ‘상품권 환전’을 합법화해주면서 ‘사행성 도박’인 바다이야기, 황금성, 야마토 등과 같은 도박 산업이 급격히 커졌다. 당시 도박 산업의 규모는 수십조 원에 달한다는 집계가 나왔다.

노무현 정권은 정권 말인 2007년 이런 사업을 다시 불법으로 규정한 뒤 단속했다. 그러나 정부의 단속은 시늉에 그쳤다. 도박사업자들 대부분은 이제 온라인 도박에 집중하고 있다. 단속도 잘 안 되고 수입이 연 수 억에서 수십 억에 이르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지하경제로 유입되는 돈, 누가 주인일까?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도박 산업 규모는 최소 70조에서 최대 90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신성장 동력’이라며 찍어내기 식으로 키웠던 IT업체들 중 일부는 웹하드-P2P, 토렌트, 악성코드 배포, 해킹(크래킹), 스팸 메시지 발송업, 성매매알선 등 온갖 불법사업을 일삼는 업체로 변신했다. 그럼에도 이들 대부분은 단속을 당하지 않는다.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소액으로 거래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벌이는 산업규모는 소액결제 업체의 연간 매출로 추정이 가능하다.

2012년 말 소액결제이용금액은 2조9,500억 원 수준. 이 중 불법사업자들의 거래로 추정되는 것이 15~20% 수준이다. 최소한 5000억 원은 넘는다는 말이다.

인신매매 사업도 적지 않은 규모다. 여기서 인신매매란 과거와 같은 납치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외국과의 불법 입출국을 돕는 사업, 그리고 장기밀매사업이다.

경찰조차 그 규모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국내의 불법체류자나 탈북자들을 울리는 브로커 주변에서는 연 1조 원 내외의 시장이라고 추정한다.

불법체류자들도 지하경제에서 한 몫을 한다. 바로 자국으로 보내는 송금. 2010년 말 공안기관과 불법체류자 감시단체 등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들이 국내에서 해외로 밀반출하는 외화 규모는 연간 조 단위를 넘어선다고 한다.

합법적 사업을 가장한 지하경제 산업

합법적인 것처럼 위장해 지하경제 키우기에 일조하는 산업들도 많다.

우선 국내 게임업체 중 일부는 ‘아이템’이라는 걸 사용자들에게 판매한다. 문제는 이것이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일부 불법사업자들은 ‘아이템 공장’이라는 것을 운영한다. 이런 문제는 국내 대형 IT기업이나 포털 사이트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범죄자들의 문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는 ‘컨설팅 업체’를 빙자해 돈세탁이나 주가조작, 기업인수합병 사기 등을 도와주는 세력들이 있다. 고객은 보통 기업 오너다.

이들은 언론, 사채업자, 회계법인, 법무법인의 우호 세력과 함께 멀쩡한 기업을 사냥해 인수한 뒤 불법으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주가조작을 해 차익을 남긴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해당 기업 직원과 주주, 소비자들이다.

이들이 해주는 돈세탁도 국내 금융당국의 상상을 넘어선다.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뒤 케이먼 군도 제도처럼 잘 알려진 조세피난처 대신 유럽 소국이나 금융조사 시스템이 허술한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에서 돈세탁을 해 준다.

대부업체에 기생하는 대부중개업체도 문제다. 최근 소규모 조직폭력배들이 이런 업체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

대부중개업체란 저학력자, 저소득층에게 대부업체나 대출업체를 중개해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대출을 받는 사람은 부당하게 수수료를 부담하거나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대출금리에 비해 훨씬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게 된다. 그 차익은 고스란히 대부중개업체가 챙긴다.

이들 대부중개업체는 김대중 정권이 ‘대부업법’으로 사채업자들을 양성화하면서 허용해준 사업이다. 설립요건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 데다 지자체에 그 권한을 줘 제대로 단속조차 되지 않는다. 이런 제도적 허점을 잘 알기에 스팸전화나 스팸문자를 발송하고, ‘삼성금융’ ‘LG캐피탈’ ‘우리금융’ ‘하나파이낸스’ 등 대형 금융기관의 이름을 도용해 사기를 친다.

자동차와 관련된 사업도 있다. 바로 불법 렌터카 업체와 대포차 거래상이다. 대포차란 타인의 명의로 등록된 채 거래돼 최소한의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는 차량을 말한다. 과태료나 벌금은 물론 자동차세도 전혀 내지 않는다.

이런 차량들은 과거에는 사채업자들이 만들어냈지만 최근에는 유령회사를 차려 고급차를 렌트하거나 리스한 뒤 회사를 고의로 부도내고 차량을 팔아치우는 수법을 통해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법인이 사라진 터라 렌터카업체나 리스업체가 차를 회수하러 가도 찾을 도리가 없다. 이런 차를 구입한 사람, 사고를 당한 사람도 큰 피해를 입는다.

시중에서는 대포차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국내에 주행 중인 대포차 숫자는 수십만 대에 이른다고 한다. 불법 렌터카 업체는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렌터카 업체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다 관리규정이 까다롭다. 불법 렌터카 업체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 초호화 차량을 불법으로 임대해주거나 대포차들을 사서 유흥업소 종업원 등을 실어 날라주며 돈을 번다.

지난 3년 사이 불법 렌터카 업체 몇 곳이 적발된 적이 있다. 당시 강남에서 적발된 차량 대수가 300대가 넘는다. 이것이 강남의 불법 렌터카 30%도 안 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다. 재벌이나 부동산 부자들이 소득세나 상속세,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 구입하는 각종 고가 수집품 중개상도 지하경제 성장에 일조한다.

지하경제 양성화, 해답은 ‘미국식 기준’

서민들은 잘 모르지만 시계 하나에 3억, 가방 하나에 1억 씩 하는 물건들이 있다. 고미술품의 경우 그림 하나 당 수십억에서 수백억까지 한다. 이런 수집품은 당국의 세무조사를 피하는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최근에는 클래식카까지도 수집품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밖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불법사업을 통해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모두가 지하경제의 주요 주체들이다. 이들은 반성은 커녕 “불법사업 못 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주장한다. “걸리면 세금 내면 되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들의 주장도 사실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세법은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상법을 근본으로 덕지덕지 갖다 붙이다보니 별의별 특례가 다 있다. 탈세범을 잡아도 탈세금액 전체를 회수하지 못한다. 수익을 몰수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금융범죄 추적시스템이 미비하다 보니 해외로 빼돌리거나 차명으로 사들인 재산은 추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미국과 같은 법을 갖추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탈세범으로 잡힐 경우 ‘이런 행동을 최소한 지난 30년 이상 저질렀을 것’으로 간주해 소급 처벌한다. 따라서 2~3년 탈세를 하다 잡혀도 30년 이상 탈세를 한 수준의 벌금을 내는 것은 물론 수익도 모두 몰수당한다.

금융범죄 문제에 대해서도 냉혹하다. 탈세범이나 돈세탁 범죄자, 금융범죄자는 국세청(IRS)은 물론 재무부, FBI까지 나서서 추적한다. 자금은 보이는 족족 모두 몰수한다. 이런 법을 제정한다고 하면 우리나라 국민들 다수는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하경제 양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진짜 기득권 세력’이다.

전경웅 객원기자·뉴데일리 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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