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극화하는 세계와 일본
다극화하는 세계와 일본
  • 미래한국
  • 승인 201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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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PHP 연구소 발행 Voice 2011년 1월호]


나가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교토대 교수

‘일본은 정말 끝났는가’ 일본 지도자들은 감을 못잡고 있는 모양이다. 경제, 정치인의 모럴이나 능력, 사회의 정신 상황 등 ‘나라의 끝장’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한 센카쿠 사건, 메르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북방 영토 방문이 그것이다.

외교안보면에서 이미 일본은 손쓸 여지가 없다. 2025년, 2050년 국제사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본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2050년의 세계’가 전략의 기점이다

일본의 살 길은 세 가지 밖에 없다. 첫째, 미국에 바짝 붙어 마치 51번째 주(州)인 것처럼 사는 길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길이다. 그러나 미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분명 미국은 군사력과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달러의 지위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력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이미 친중세력이 상당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일본 정도는 아니겠지만) 일본이 중국과 결정적으로 대립할 때 미국이 어느 편에 서느냐의 문제는 중국의 대미 공작 침투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어떻든 이 방법은 일본의 운명을 맡길 장기적인 시나리오가 되지 못한다.

둘째, ‘동아시아 공동체’적 구상이다. 즉, 중국에 굴종해 ‘23번째의 성(省)’ 혹은 일본족 자치구가 될 정도의 각오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센카쿠 사건으로 일본인의 태반은 중국을 믿지 않게 됐다. ‘동아시아 공동체’ ‘미일중 정삼각형론’ 혹은 전후 좌파와 자민당의 다나카파(및 민주당의 오자와그룹)적인 존재가 키워온 ‘일중우호’의 흐름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센카쿠 사건은 2002년 납치문제 발각으로 일북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셋째, ‘다극화’의 흐름을 타고 일본도 일극으로 선다는 국가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21년 전부터 “냉전 후의 세계는 반드시 다극화로 가고 2010년에는 분명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은 미 전략 당국도 이미 1990년대부터 내부에서는 아마도 1980년대부터 명확히 다극화되는 국제사회의 시점을 두고 온갖 요소를 고려하고 있었다.

미국의 앤드류 마샬이라는 전략가는 오래 전부터 중국이 국제사회와 미국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그와 그의 스탭이 10년 전에 ‘2015년의 아시아’ 보고서를 냈다. 그들은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국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시나리오에서는 중국이 동북아에서 세력을 확장하지만 충분히 부유해지기 전에 고령화를 맞이해 급속히 노화국가로 변신해간다. 성장 포화 지역, 성장 계속 지역, 성장에 뒤떨어진 지역으로 나눠져 역사적 대혼란 가능성도 지적된다. 인도는 남아시아에서 비약적 발전을 하지만 주변 국가인 파키스탄 등은 혼미 상황에 빠진다. 동시에 중국과 인도의 충돌이 증가한다. 나아가 아시아의 화약고는 서아시아, 남아시아로 번져간다는 등 다극화 세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은 이와 같은 세계를 내다보며 그때 그때 당면한 국가전략을 입안해왔다.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 인도, 러시아, 한국, 싱가포르도 냉전 종식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국가 권력을 총집중해 다극화하는 21세기 국제사회 속에서 자국의 위치를 어떻게 확보할지 필사적으로 장기목표를 설정해 왔다.

다극화시대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까. 다극화라면 일반적으로는 과두체제적인 다극화를 생각하기 쉽다. 즉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인도 등 4개 내지 5개의 대국이 각기 세계를 분장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옳지 않다. 냉전 종식을 웃도는 규모의 세계 질서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신흥국가는 더욱 힘과 존재감을 높여 핵 확산도 증가할 것이다. 20년 후에는 이란, 인도네시아,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중간 정도의 힘을 가진 나라들이 각기 자율성을 높여 세계 질서의 일극으로서 발언권을 증대시킬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패권국가를 표방하는 나라가 세계를 뒤흔드는 것에 대한 정당성이 상실된다. ‘대국 & 소국’ 또는 ‘선진국 & 개발도상국’과 같은 대립구도는 없어진다.

같은 개발도상국일지라도 자원국인지의 여부, 구미의 자본을 많이 도입했는지의 여부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다극화시대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조정이 통합과정을 거쳐야 한다.


러시아의 전략적 사고

냉전기와 같은 결정적 대립이나 패권국의 전횡,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고정된 대립이 명백하게 존재하지 못한다. 중소 규모의 충돌이나 분쟁(핵전쟁도 포함되겠지만)을 되풀이하면서도 대국적으로는 오히려 각국의 이익이 수렴되는 방향으로 가서 결국은 일치되기 쉽게 된다. 즉, 패권국이 없는 세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컨센서스의 존부(存否)가 중요해진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다극화가 진전된다면 ‘초대국이 필요 없어진 세계’에서는 당연히 영향력 행사 수단도 변한다. 세계는 더욱 좁아지고 대립과 경쟁이 심화된다. 과거에는 발언권을 좌우하는 것이 군사력, 경제력이었는데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결정요인에 불과해진다. 개방적이고 견고한 나라가 역할을 확대하게 된다. 이러한 다극화시대는 2050년 빠르면 2030년대에 온다.

다극화시대에는 예전의 틀은 아무 의미가 없고 역학관계에 따라 가치 절하 또는 전부를 파산하는 일조차 예사로울 수 있다.

센카쿠 사건에서 보면 일.중 간에는 장기간 고정적인 대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 뚜렷해졌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의 진심은 ‘일본도 중국이 무섭죠? 우리도 무서워요. 그러니 우리가 손을 잡읍시다. 북방 4개도서 일괄 반환은 러시아로서 괴로운 일이니 중국을 두려워하는 나라끼리 서로 타협합시다’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일.러가 영토 문제를 빨리 해결한다면 진정 친밀한 동맹관계,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국제 구조가 다극화하면 ‘동맹’이라는 말의 의미도 가벼워지며 동맹과 군사동맹을 구별해 쓰게도 된다.) 일.러가 ‘중국 포위망’을 만들고 러시아는 일본의 기술이나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에 지지 않는 시장경제화를 진전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 대신 러시아에는 자원이 풍부하게 있으니 이것을 중국에 우선해서 일본에 팔 수 있다는 것이 러시아의 전략적 사고이다.

다극화시대에는 국익의 종합적 균형이 소중히 여겨지는 만큼 무엇이든 교섭이 좌우한다. 냉전시대처럼 자기 존재를 내건 적과의 대립이 아니다. 또 ‘적의 적은 내편’이지만은 아니다. 보다 무서운 적과 조금은 덜한 적처럼 적을 차별화해 각기의 적에게 적합한 거래를 하면 된다. #


번역·이영훈 객원해설위원·교포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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