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10년 후를 준비하는 거대한 작전 펼쳐야
④ 10년 후를 준비하는 거대한 작전 펼쳐야
  • 미래한국
  • 승인 2015.08.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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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특집] 우린 더 푸른 대한민국을 원한다

[편집자주] 보수, 우파라고 하면 ‘기득권’, 또는 ‘수구’라는 이미지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연상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나선 젊은 우파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오해를 바로잡고 시장경제와 자유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시민단체·학교·정당 등의 현장에서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본지는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확산시킨다는 취지로 청년 우파 17인의 건강한 가치관을 들어봤다. 무더운 여름, 유쾌, 상쾌한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더위를 날려보자.

현실에 뛰어든 전문가의 길 통해 보수가  꿈꿨던 사회 건설하자

▲ 윤주진 자유공방 대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 필자가 처음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렸던 해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가 3년차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그보다 한 해 앞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과 17대 총선의 열린우리당 과반 의석 획득 등으로 국정 동력을 확보하여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고, 그로 인한 정치사회적 갈등은 극에 달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보혁(保革) 진통이었다. 소위 386이라는 정치 세력이 제도권에 대거 진출하여 국정을 진두지휘했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이 뿌려놓은 씨앗들은 지금도 여전히 막강한 정치력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친노(親盧)의 씨앗’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오늘날 말 그대로 친노라는 거대 정치 세력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386 세력이 뿌렸던 정치적 씨앗들이 결국 386의 근간을 공격하는 이른바 ‘젊은 보수’라는 신세력을 탄생시키는 분노의 자양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 방식마저 유사하다. 군부 권위주의 기득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바로 386의 자양분이 되어줬으니 말이다. 

분노할 만한 일은 계속됐다. 386 세력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지만 언론·문화·대학 권력 재창출에는 성공한 듯싶었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이 남긴 후유증은 적잖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의구심과 불신을 품게 했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우리나라 좌파세력의 얼굴을 가리던 평화와 인권이라는 거짓된 가면을 벗겨버렸다. 

젊은 보수를 키워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열망과 지원도 큰 몫을 했지만, 젊은 보수의 가장 큰 계기는 좌파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비현실적 이념투쟁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에 앞서, 386 운동권 세대가 향유하는 문화와 소통 방식은 탈권위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문화에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우리는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난 10년은 젊은 보수의 등장과 성장, 그리고 세력 확대의 기간이었다. 단체도 많이 생겨났고, 본인이 보수임을 당당히 밝히는 젊은 세대도 많아졌다. 자유주의나 보수주의를 학습하는 동아리나 아카데미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면서 ‘따뜻한 보수’를 주장했을 때, 필자는 전혀 엉뚱한 지점에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가 보수임을 자처하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수라는 단어도 거부감을 많이 덜어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젊은 보수가 일종의 정체기를 맞았다. 아니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정체기냐며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이는 젊은 보수 사회 내부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진단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 이유는 ‘동력 상실’이다. 통합진보당 해체와 전교조, 민주노총의 쇠퇴, 학내 좌파운동권 조직의 지리멸렬한 활동 등은 자연스럽게 우파의 쇠퇴로 이어졌다. 젊은 보수가 그 동안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워왔던 상대편이 축소되자, 정체성이나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영화 ‘국제시장’이나 ‘연평해전’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보다, 감동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풍조가 됐으니 젊은 보수의 목소리는 이제 희소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집권당인 새누리당도 젊은 세대에 다가설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갖춤으로써 ‘젊음’이라는 계층적 특수성까지 그 빛을 잃어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10년 전 젊은 보수의 태동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듯, 10년 뒤 오늘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친노의 씨앗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던 젊은 보수는 이제 새로운 자양분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그 자양분을 이제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현실과 삶 속에서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치는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고, 우리가 매일 매일 생활하는 일터, 학교, 마을, 그리고 각종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젊은 보수의 일부는 여전히 운동의 영역에 남아 이념적 활동을 이어가야 하겠으나, 모두가 그 운동에 머물면 젊은 보수는 기반을 상실한 공허한 운동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보다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영역으로 파고 들어가 그 안에서 ‘진지전’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젊은 보수를 ‘전문가적 보수’로 만들어줄 것이고, 그들이 10년 뒤 우리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비로소 보수가 꿈꿨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소비자운동 분야에서 컨슈머 워치 같은 전문 단체가 생겨나는 긍정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많은 블루오션이 있다. 교육, 의료, 안전, 농수산업, 환경 등 우리가 진출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할 곳이 많다. 우리는 이제 10년 뒤를 준비하는 거대한 작전을 펼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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