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화의 겉과 속, 그리고 통일의 길
남북 대화의 겉과 속, 그리고 통일의 길
  • 미래한국
  • 승인 2011.08.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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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각 편집고문 고려대 명예교수

 
황의각 교수의   세상보기

개인이든 사회조직이든 열린 자세를 가진 양자 간의 관계란 가다가 멈추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단계마다 긍정적인 선순환의 결실을 거두며 발전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한 관계는 타협할 수 없는 대립과 적대적 목적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해 왔지만 결국은 시간만 허송했을 뿐 원점에서 조금도 진전하지 못했다. 남과 북은 대내외 정치적 명분과 필요 때문에 공개 혹은 비공개로 만나기는 하지만 각자 필요한 시간 벌기와 타협할 수 없는 주장의 되풀이 외에는 실질적 문제 해결엔 아무런 성과가 없다.

남북한 간의 궁극 목표와 전술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북한은 인민 깃발 아래 남한을 접수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남한은 화해와 유화정책을 통해 북한이 개혁돼 본질적으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진화되기를 바란다. 북한은 협박과 국지적 도발의 양면전술을 구사하면서 물렁한 남쪽 당국을 가끔 툭툭 쳐서 시험하기도 하고 남쪽 여론을 분열시키는 전술을 펴가며 저울질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념무장이 와해되고 안일한 개인주의 생활환경 속에서 국가진로와 운명의 진지한 분별력마저 갖고 있지 않은 남쪽 사람들은 북한에 화해의 미소와 경제 원조를 제공하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남쪽은 북이 퍼붓는 온갖 비난의 욕설과 함께 뒤통수를 여러 번 얻어맞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기며 남북한 현상유지를 통한 평화에만 연연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일은 남쪽 정부가 기독교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북한 적 집단에게 대적하기는 커녕 오히려 오른편 뺨을 얻어맞고도 왼편도 때려달라고 돌려대는 꼴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이유

우리 언론은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 교섭본부장과 북한의 이용호 외무성 부상간의 ‘최초의 남북 비핵화 회담’ 소식을 대서특필 했다. 그리고 23일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북한의 박의춘 외상의 회동을 크게 보도하면서 한반도에 ‘8월의 봄(해빙 무드)’이 올 것처럼 기대하고 있다. 2008년 12월 중국 북경에서의 6자회담 결렬 이후 2년 7개월 만의 남북고위급인사들의 회동은 분명 중요 뉴스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핵화 논의를 위한 남북회담 성사는 우리정부가 추구하던 비핵화 3단계(남북대화 쭭 북미대화 쭭 6자회담) 프로세스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색된 남북관계에 일단 새로운 출구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한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던 북한 당국이나, 천안함과 연평도 공격에 대한 사과 없이는 북한과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던 남한 당국이 비밀리에 준비해 극적으로 만난 데에는 남북한 각자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태도 변화로 돌아선 이유는, 첫째 북미 대화를 간절히 바라며 각종 대미 제스처를 펼쳤지만 미국이 남북한 대화가 전제되지 않는 북미관계는 있을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있고, 아울러 북핵문제의 선결 없이는 대북경제제재조치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확고부동한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북한을 강하게 압박한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북미관계의 숨통을 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결코 건너뛸 수 없다는 북한당국의 현실인식 뿐만 아니라, 당장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 등을 조달하기 위해 남한의 도움과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 다른 나라에 의존하기보다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관계 파기 상황에 직면할 때 북한의 부채상환협약 등도 남한은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는 북한의 판단 때문에 남한과의 관계회복의 한시적 필요성을 수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남한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 내부의 정치적 갈등 해소의 출구로 남북관계의 개선 노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고, 앞으로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의 입지 강화를 위해서도 북한과의 관계회복이 중요한 변수로 고려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남북한의 ‘조건부 중립국’ 선포 방안

이상과 같은 남북한의 상호 계산이 남북한 대화 접근의 길을 열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한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공통 해법을 찾지 못하는 한 모든 계산된 관계는 깨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앞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한은 정치, 경제, 군사 모든 분야에서 남한과의 평형을 잃게 된다. 그뿐 아니라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경우 북한 지배계층은 북한군과 인민을 더 이상 통제하고 다스릴 지렛대마저 잃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경제 원조 대가로 핵을 포기할 경우 북한 당국은 그동안의 인민의 귀와 눈을 가려왔던 우민정책에 대해 혹독한 내부 비판과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핵무기 없는 북한 정권은 기둥이 무너진 집과 같다. 따라서 6자회담을 통해서나 경제적 원조 대가로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하려는 그 어떤 회담도 북한 정권이 스스로의 붕괴를 전제하지 않는 한 성사될 수 없다. 북한은 자기들이 목표삼고 있는 강성대국을 이루기까지 시간 벌기를 위해 회담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평화 유지 또는 통일의 문제는 남북한 양자의 관계를 넘어, 한반도를 둘러 싼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4강구조에 내재된 정치이념과 체제의 양축(兩軸)관계에서 해결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이들 나라들은 남북한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도발과 분쟁이 이어지는 남북한의 현상 유지를 통해 각각의 이익을 도모한다.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합의 도출은 통일 한반도가 군사적으로나 국제정치무대에서 주변국들의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을 것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 한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남북한은 거국적으로 합의해 ‘한시적 조건부 중립국’ 입장을 선포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느 한쪽의 붕괴를 통한 ‘힘에 의한 흡수통일의 길’만이 대안이 될 것이다.

이 두 대안 중에서 어떤 방법을 통한 통일이든 통일에 따르는 비용은 지속되는 분단의 직간접 비용에 비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앞으로 통일비용의 부담은 통일시기와 반비례할 것이다. 다시 말해 통일은 빠를수록 경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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