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세계를 격노케 하다
아베, 세계를 격노케 하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6.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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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커크 편집위원·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T4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모습의 사진은 일본이 과거 태평양전쟁 패배 전 제국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지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조종석 아래 비행기 동체에 써 있는 숫자 ‘731’은 더 큰 놀라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자위대 대변인의 주장처럼 그 숫자가 일본 과학자들이 중일전쟁 당시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생체 실험을 했던 악명 높은 731부대의 숫자와 같았던 것은 정말 우연의 일치였을까?

일본이 중국 동북부 지역에 세운 괴뢰국 만주국 안에 숨겨져 있던 이 731부대는 일본의 잔혹함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잘 보여줬다. 수천명의 전쟁포로들이 일본 생화학자들의 실험 대상으로 죽었다.

대다수 희생자는 중국인들이었고 러시아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일본에 붙잡힌 많은 전쟁포로 가운데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일본과 맞서 싸웠던 국가 출신들이었다.

‘731’라는 숫자가 우연히 아베 신조가 탄 비행기의 번호이더라도 그것은 은연 중에 속마음을 드러낸 실수라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심리적인 이유로 그 숫자는 그 특별한 비행기에 아베 총리가 앉도록 한 사람들에게는 적합한 것이었던 것 같다.

아마 아베 총리 자신도 조종석에 오르면서 그 숫자를 보았을 것이고 잠깐 동안의 생각 끝에 731이라는 숫자가 기억될 만한 의미가 어렴풋하게나마 있다고 믿고 조종석에 앉았을 것이다.

누구도 아베 총리를 향해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항복하기 전에 자행한 잔혹함 혹은 당시 제국주의적 질서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제국주의시대의 만행을 잊고 싶거나 혹은 최소한 승화시키려는 분명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지식인들 가운데 일본이 한반도를 접수한 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저지른 것을 합리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에 불과하다. 일본의 이런 변화에 대해 알고 있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일본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아베노믹스’(Abenomics)라는 말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아베노믹스는 1980년대 말 거품이 터진 이후 계속 경제 침체 가운데 헤매고 있는 일본을 구하겠다며 경제개혁을 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공격적인 경제정책들을 말한다.

미국인들은 일본이 전쟁을 주권적 권리로 포기한다는 자신들의 평화헌법의 9조를 개정하려고 하면 그제서야 우려할 것이다. 이 9조는 전후 일본이 미국에 점령당한 후 지금까지 계속 유효한 조항이다. 일본에서 이 9조를 삭제해야 한다는 압박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일본이 중국과 맞서는 상황에서 커지고 있다.

일본은 자위대가 아닌 해안경비대 선박들로 센카쿠 열도를 방어하고 있다. 미일 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은 센카쿠 열도에서 일본 편을 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제어해주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

일본의 새로운 군국주의는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저지른 소행을 합리화하는 것을 수반하고 있다. 즉, 부인이 뒤섞인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한 가지 주장은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미국 경제를 회복하게 하고 자신의 행정부에 대한 지지를 얻는 데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인 교 추츠미는 미국 정부가 1937년 7월 미국의 중립법이 영국과 중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후 이들 국가에 돈과 전략 물품을 공급했다고 썼다. 그리고 1937년 10월 루즈벨트 대통령은 침략국가들에 대한 국제적인 격리를 촉구하는 ‘격리 선언’을 했다.

또 다른 주장은 ‘헐(Hull) 문서’다. 이 문서는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기 2주 전 당시 미국의 코드웰 헐(Hull) 국무장관이 중국과 베트남, 태국, 라오스 등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모든 일본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문서다.

당시 일본 외무장관으로 태평양전쟁 발발 후 4년 뒤 항복문서에 서명한 시게노리 토고의 손자인 가주히코 토고는 “헐 문서에서 밝혀진 ‘원칙들’은 잠시라도 전쟁을 피하려던 일본 협상가들의 기초와 의지들을 꺾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썼다.

그는 “그 문서는 최후 통첩은 아니었지만 그 문서를 받은 일본 지도부는 최후 통첩으로 여겼다”고 분석했다.

이 주장의 요점은 일본은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자신들에 대한 석유공급을 끊은 이른바 ABCD 강대국, 미국(America), 영국(Britain), 중국(China), 네덜란드(Dutch))를 상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주만을 공격하고 태평양에서 전쟁을 했는데 미국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쟁의 구실로 일본의 공격을 유도하는 음모를 짰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일본군이 자행한 난징 대학살, 바탄 죽음의 행진, 전쟁 마지막 몇 주 동안 마닐라를 비롯 수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이뤄진 살해 등 형언하기도 힘든 일본군의 잔혹함을 간과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논의를 잘 모른다. 하지만 신제국주의 야망을 터뜨리며 실지를 탈환하려는 듯한 일본의 부상은 세계를 정신차리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사악한 숫자 ‘731’이 조종석 아래에 써 있는 비행기에서 웃고 손을 흔들면서 잠재의식 가운데 이에 대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번역 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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