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정책 유감 대륙보다 해양으로 나가야
유라시아 정책 유감 대륙보다 해양으로 나가야
  • 이춘근 박사
  • 승인 2013.12.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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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정치 구조가 안보 및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어려운 방향으로 꼬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100여 년 전 조선 말기 당시 선각자들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운명에 대처하기 위해 주변 강대국들 중 어느 나라와 연계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구적인 친청파는 당시 중국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친일파 혹은 친러파는 일본과 러시아가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떼어낸 후 자신의 속국으로 삼으려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했다.

친미파도 있었지만 그들은 미국이 당시 아시아의 정치를 좌우할 만한 능력과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는 영국이었는데 당시 조선에는 영국을 이용해서 무엇인가를 해 보려는 세력은 없었다.

지금 21세기 초반 한반도 주변에 다시 형성되고 있는 국제 구조의 변화는 조선이 망하기 직전처럼 또다시 어려운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엄밀하고 냉철한 계산에 근거한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경우 낭패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결코 방정맞은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영원히 반도국가이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만주로 확대되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반도국가가 택할 수 있는 정책은 대륙적이거나 해양적인 것 두가지 중 하나다.

물론 어느 나라의 정책이 전적으로 해양적이거나 혹은 전적으로 대륙적일 수는 없다. 다만 어느 방향에 더 치중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를 해양적 혹은 대륙적이라고 분류하는 것이다. 상당 규모의 큰 나라라고 할지라도 해양과 대륙을 동시에 지향하거나 아우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대륙 지향적이었다. 한국 역사의 영웅인 장보고, 이순신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물 그 자체를 무서워했고 바다로 나가는 일을 꺼렸다. ‘물가에 가지 마라’는 부모들의 공통된 근심과 바다에서의 직업을 비하, 천시하는 전통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다.

바다를 꺼리는 전통

15세기 초반 세계 최고, 최대의 함대를 보유하고 있던 명(明)의 황실은 해외무역을 통해 바닷가의 촌놈들이 부자가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이들이 더 이상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해금(海禁) 조치를 취했다. 돈이 많아지면 권력도 강해질 것이라는 점이 두려웠던 것이다.

중국 황실은 당시 보유하고 있던 세계 최고, 최대의 선박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는 근대 세계 역사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바다로 달려 나간 유럽 국가들이 지구 정치의 승자로 떠오르게 됐던 것이다. 조선은 중국의 방법을 추종했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 이후 남북 분단의 비극을 당한 한국 사람들은 해양국가가 될 것이냐 대륙국가가 될 것이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북한은 자동적으로 대륙국가가 되고 말았고 마치 섬이나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대한민국은 거의 자동적으로 해양국가의 길을 걷게 됐다. 남북한이 지난 60여 년 동안 해양과 대륙 국가의 정책을 택한 결과가 오늘날 나타난 남북한의 격차다.

이처럼 장황하게 그리고 약간은 억지스럽게 대륙, 해양을 구분한 이유는 철저하게 해양 지향적이었던 대한민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 마음속에는 ‘대륙’ 혹은 ‘대륙적인 그 무엇’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가는 허망한 꿈을 꾸기 시작했었다. 우리가 만든 상품을 유럽까지 기차로 실어 나르겠다며 유라시아 철길을 ‘황금의 실크로드’라고 선전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단언컨대 지금, 혹은 앞으로도 유럽과 한국을 연결하는 황금의 실크로드는 바다에 있지 유라시아 대륙에 있지 않다.

솔직히 말해 물건을 나르기 위해서는 배,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 대형 화물선 한척 분량의 화물을 기차로 나른다면 도대체 몇 대의 기차와 몇 명의 승무원이 필요할지를 계산해 본 일이 있는가? 게다가 러시아의 철도는 한국 및 유럽의 철도와는 폭이 다른데 한국에서 떠난 기차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고속철도라도 유럽까지 가려면 며칠은 걸릴 터인데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고 유럽을 갈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서울에서 베를린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와는 개념이 다른 이야기다. 유라시아 철도를 건설하자 하고, 아시아 횡단 고속도로를 건설하자는 말도 많았지만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아무런 진전도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정부는 ‘유라시아이니셔티브’라는 기치 아래 다시 북방정책, 대륙정책을 강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중국, 러시아 등 대륙국가들과는 관계를 긴밀히 하는 한편 일본과는 악화된 관계를 개선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아시아를 비롯한 환태평양국가를 포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2005년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4개국 간 FTA로 출발했지만 2008년 미국이 가세하면서 일본, 호주, 캐나다, 멕시코,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으로 대상이 늘어났다.

다만 중국이 배제돼 있어 TPP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2015년 말까지 체결을 목표로 하는 TPP에 한국은 소극적이라는 말이 들린다. 중국이 배제돼 그렇다는 말도 들린다.

미·중 양다리 걸치기는 불가능

미국과 중국이 세계의 경제 정치적 패권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일본, 베트남, 호주, 인도 등 큼직한 나라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소위 ‘해양동맹’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중이다. 경제와 정치, 군사가 상호 얽혀 있는 21세기 국제정치에서 경제 따로 안보 따로는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한 이야기다. 한국은 중국과는 경제, 미국과는 안보로 얽히겠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점차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국제 구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처신할 때 경제와 안보 이익이 극대화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됐다. ‘유라시아이니셔티브’라는 아직은 공허한 개념이 미국과 유럽공동체간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는지 혹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어떤 관계에 있게 될 것인지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TPP 참가에는 소극적이며 환태평양 경제협력, 미국 일본 등의 이익과는 반대되는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인식되면 안 된다.

산업화 시대가 시작된 이후 오로지 해양국가만이 세계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패권이 있는 곳에 안보와 경제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가 대전략의 지향은 어느 쪽이어야 하겠나?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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