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이상한 실험, 국민월급 300만원?
스위스의 이상한 실험, 국민월급 300만원?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1.22 16: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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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외에 로만슈어라는 네 가지 언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서 한 가지 언어를 대표적으로 써야 하는 경우에는 이들 언어 중 하나를 고르지 않고, 대신에 엉뚱하게도 라틴어를 사용한다. 관공서에서 발행되는 모든 공공문서는 이들 네 공용어로 동시에 발행되기도 한다. 이 나라의 이름은 스위스다.

영국의 지명학자 아드리안 룸(A. Room)에 의하면 스위스(swiss)라는 국명의 어원은 북부독일어로 ‘불타다’(Suittes)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BC 5세기경 켈트족의 한 갈래가 정착하기 시작한 스위스는 유럽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관계로 주변에서 각지의 사람들이 들어와 숲을 불태워 집과 마을을 만들었다.

그 결과 외국 문화가 끊임없이 유입했고 3대 문화권(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까닭에 다채로운 문화가 형성됐다. 또 전쟁이나 혁명시의 도피처로서 창조적인 인물들을 숨겨주기도 했다.

저명한 지식인들의 거주도 많아서 에라스무스는 바젤에 거주했고 릴케는 스위스 남부에 살았으며 나치당의 탄압을 받고 있던 아인슈타인도 말년에는 스위스에서 지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앙리 뒤낭, 역사학자인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하이디>를 지은 요하나 슈피리 등이 유명하다.

스위스는 일찍이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주민 연대를 통한 복지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그러한 스위스에도 최근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빈부 격차가 늘어나자 스위스에서는 최근 일을 하지 않아도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한달에 2800달러의 월급을 주는 방안을 국민투표로 결정하기로 제안됐다. 그렇게 되면 스위스 국민들은 결혼한 부부의 경우 일을 하지 않아도 연간 6만7000달러라는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국민기본소득제’라는 제도다.

국민월급을 주려는 스위스의 속내

흥미로운 사실은 스위스의 기본소득제가 좌파진영이 아닌 우파 자유경제 지지세력에 의해 주장돼 왔다는 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약 8만달러에 이르는 스위스에서 이렇게 모든 국민들에게 한달에 2800달러, 우리 돈으로 3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일 안하고도 벌 수 있는 국민월급으로 주자는 주장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이 제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사연은 이렇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만 달러인 강소국 스위스는 현재 고령화와 소득격차 확대로 고민을 안고 있다. 여기에 치솟는 집값과 쌓여만 가는 가계부채는 언제든 중산층을 압박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란 지적이다.

스위스 싱크탱크인 아베니르 스위스의 파트릭 셸렌바워 박사는 스위스의 과제로 ‘고령화에 따른 복지부담’을 꼽았다. 사회복지제도 중 하나인 스위스 국가연금(AHV)에 대한 우려와 저금리 속에 불어난 6000억 스위스프랑(709조원) 규모의 가계부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스위스 당국도 고령화로 인한 연금 고갈을 우려해 연금수령 나이 상향 및 AHV 부담 확대, 연금수령액 축소 등의 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늘어나는 복지재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 비효율이 증가함에 따라 복지 누수도 그 만큼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복지전달 체계를 꼼꼼하게 만들면 복지 수혜자들은 매우 불편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복지비용을 차라리 국민들에게 현찰로 지급하자는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비대화도 줄일 수 있고 국민들은 기본소득을 활용해 좀 더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새로운 부의 창출에 도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편으로는 일리 있어 보인다. 기본소득제는 18세기 ‘상식’이라는 작은 팸플릿으로 미국 독립혁명에 불을 당긴 토머스 페인 등이 주장했지만 아직 도입한 국가는 없다. 하지만 러셀과 같은 철학자를 비롯 사뮤엘슨이나 토빈과 같은 20세기 경제학자들도 미국 정부에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라는 편지를 자주 쓰곤 했다.

2010년 일본에서는 이 ‘국민월급제’라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일부 사회활동가들과 벤처 스타들의 주장을 통해 유행을 타기도 했다. 여기에 유명 경제평론가인 야마사키 하지메(山崎元)도 동조하면서 기본소득제는 2012년부터 국내 진보단체들에 의해 적극 논의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진보 매체인 프레시안은 지난해 ‘기본소득제에 승부를 걸자’는 제목으로 기본소득제에 대해 본격적인 이슈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국민 기본소득제 개념의 허상

하지만 결국 이 기본소득제의 재원은 다름 아닌 세금이라는 점을 모두 잊고 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박박 긁어서 이를 다시 평등하게 재분배하는 모델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기본소득제로 인한 소득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성공적인 제도라 할 수 있을까.

맨큐의 경제학에서는 10가지 경제원리 첫번째로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를 들고 있다. 실제로 인센티브의 힘은 강력하다.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사실 인센티브의 효과를 지칭한다고 해도 무리한 해석은 아니다.

문제는 국민기본소득제에는 인센티브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현찰을 국민들에게 주는 것보다는 세금을 낮춰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소득세를 낮추면 그만큼 더 벌려는 동기가 작동한다는 것.

국민 기본소득제의 취지가 어떻든 국내 진보단체들이 이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방식에는 기존 복지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또는 더 확대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주자는 사회주의 분배이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식의 모델은 가능하지 않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 진리가 아님이 드러나기 전에는 말이다.

이제 스위스의 2800달러 국민 월급은 국민투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는 스위스 GDP의 1/3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투표 결과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복지천국 스위스도 이제 더 이상 복지가 지속가능한 시스템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네덜란드의 국왕은 국가 복지 시스템의 한계를 고백하고 “모든 국민들은 저축을 통해 스스로의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국민들 앞에 발표했다.

한 사회는 개인들이 일을 해야 부가 창출되며 생산한 것 이상으로 분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일해서 생산한 부를 놀고 있는 다른 사람이 나눠먹는 사회에서 사회적 부가 증가하리라는 것은 미신이다. 한마디로 ‘둥근 삼각형’을 만들어 보겠다는 치명적 자만인 것이다. 스위스를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한 스위스의 고민을 깨닫길 기대해 본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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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중 2022-06-26 14:15:07
와 이런 사회 실험을 2014년에 이미 했네요. 우리나라도 내일부터 이런 제도 도입되면 참 좋겠네요 :) 이번 정권에 그렇게 되겠죠? 윤석열 대통령님 꼭 이뤄주세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