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전자 R&D센터 공사 현장에 가다
[단독] 삼성전자 R&D센터 공사 현장에 가다
  • 정용승
  • 승인 2014.09.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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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말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도 해당되는 말일까?

온라인으로 아무리 실시간 정보가 유통돼도 여전히 ‘위치’는 중요하다. ‘신림동 고시촌’을 보자. 고시 관련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많이 공개돼 있다. 관련 강의도 인터넷을 통해 집에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생들이 고시촌으로 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네트워크’ 때문이다.

IT업체들이 모여 구로디지털단지를 만들어 냈고 미국 굴지의 벤처기업들이 모여 실리콘 밸리가 형성됐다. 그들이 아무리 최첨단의 기술을 취급하는 기업들이라 해도 각 분야의 최고들은 ‘좋은 위치’에 있을 때 하나의 온전한 산업기반으로서 존립할 수 있다.

   
우면 R&D 센터 조감도

국내외 1만명 우수 인재 유치 계획

위와 같은 이유로 삼성은 대규모의 R&D센터를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2012년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간 10만평 규모의 R&D센터는 내년 5월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공사가 완료된 후에는 국내외 1만명의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할 계획이다. 현재 공사는 48% 정도 진행된 상태다.

혹자는 땅값도 비싼 우면동에 굳이 이런 대규모의 R&D센터를 건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경기도 수원이나 화성에 이미 연구동이 있으니 비슷한 곳에 지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서울이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삼성의 복안이 깔려 있다.

서울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메가시티, 즉 10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거대도시다. 수도권 인구까지 합치면 2000만명이 넘어간다. 인구가 많다는 사실은 기업들의 유입 요인이 된다. 소비자가 많은 곳에 기업들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까닭이다.

그렇게 기업들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나오고 고급 정보가 창출될 수도 있다. 많은 인구는 곧 많은 인재를 뜻한다. 새로운 인구 유입은 새로운 상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주변상인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초일류 기업 삼성에게도 서울의 이와 같은 이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왜 우면동인가. 우면동은 강남의 대표적인 친환경 녹지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근처에 양재 시민의 숲, 문화예술 공원, 서울대공원 등 문화 공간이 곳곳에 위치해 있어 환경과 혁신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주민들과의 관계 유지가 ‘관건’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떨까. 공사 현장은 상당히 소란스럽고 주변에 상당한 피해가 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기에 주민들과 어느 정도의 마찰이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 본지가 만나본 인근 주민들 중에서도 불편함을 토로하는 주민들이 있었다.

한 주민은 “공사 소음 때문에 처음에는 마찰이 있었다”고 밝히며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삼성이 들어와서 주변이 깨끗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높은 건물이 들어서다 보니 경관이 차단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녹색지대도 사라지고 있고요.”

인구 집중화 문제를 지적하는 시선도 했다. 우면동은 인근 경관과 주변 문화공간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노후 대비를 위해 입주하는 주민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런 공간에 대기업 건물이 들어오면 인구가 많아져 불편을 겪을 수밖에 있다는 측면이다.

삼성의 입장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녹지를 최대한 활용해 주민들의 휴식 공간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삼성만의 공간이 아닌 주민과 같이 쉴 수 있는 쉼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대한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꽤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완공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지하터널’이다. R&D센터의 건물은 각각 3개씩 두 섹터로 나뉘는데 이 2개 영역을 잇는 지하터널 건설 문제가 현재 행정상의 문제로 묶여 있다.

우면 R&D센터에 지하터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안’ 때문이다. 행여 디자인이 유출될 경우 삼성은 수천억 원 규모에 해당하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실제로 2012년 현대자동차의 신형 싼타페 디자인이 유출된 사건은 현대차에 수백억 원의 손해를 입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자인 그 자체가 곧 회사의 경쟁력이 되는 경영 환경에서 보안은 갈수록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디자인센터가 완공된 후에도 보안을 위한 담장을 설치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해답은 지하터널 밖에 없지만 돌파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행정상의 문제가 있는 것일까. 우선 서초구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사랑의교회 사건’이다.

한국의 대표적 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는 지난 2010년 서초구로부터 공공도로 도로점용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허가받은 땅 지하에 주차장과 예배당을 지었고 공공도로 지하를 반영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사중인 삼성전자 R&D 센터

‘지하터널’허가 논란

이 과정에서 서초구가 도로지하 점용허가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 논란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다. 서울시는 2012년 6월 1일 서초구 서초동 도로 밑을 파서 예배당을 짓는 사랑의교회에 서초구가 이면도로 지하 점용을 허가한 것은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서초구의 인허가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해 이를 시정할 것을 명하면서 관련자 징계처분을 서초구에 통보했다.

그러나 서초구는 서울시로부터 처분취소 이행조치를 받고도 이를 따르지 않았고 주민감사를 청구했던 서초구민들이 2012년 8월 29일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는 2013년 7월 9일 이 소송에서 “주민 소송의 대상이 아니다”며 소송 각하판결을 내렸으며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9부도 2014년 5월 15일에 같은 이유로 사안을 각하했다. 법정 다툼까지 가면서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전례 때문에 서초구는 다시 한 번 비슷한 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삼성의 입장은 어떨까. 우선 ‘지하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사랑의교회는 상점들이 영업활동을 하는 등 ‘지하실’에 해당하지만 우면 R&D센터는 ‘지하통로’ 용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삼성-서초구-서울시는 계속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 외에 주변도로 문제도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공사 중인 우면 R&D센터 앞 도로는 4차선이다. 6차선으로 시작되는 도로지만 R&D센터를 지나는 곳은 4차선이고 좀 더 내려가면 2차선으로 바뀐다. 경부고속도로 고가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완공 후 교통대란 우려

지금은 공사 중이라 큰 불편은 없지만 문제는 완공 후다. 내년 완공 후에 1만여명이 근무할 예정인데 이들 중 30% 정도만 자가 차량을 움직인다고 가정해도 3000대다. 2차선 도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 이미 이곳은 일요일마다 주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움직이는 차들로 엄청난 교통 정체를 유발하고 있다. 이 정체가 주 7일로 상시화된다고 가정한다면 주변 주민들과 삼성 직원들에게 큰 불편을 가져다주면서 또 다른 갈등이 파생될 가능성도 낮지 않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우회도로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양재 시민의 숲의 전체 면적 중 2% 정도가 줄어들 예정이라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시-삼성과 환경단체가 대립하는 구도는 이른바 ‘여론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어 서울시와 삼성 모두가 난감한 상황이다.

“디자인이 결정한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수가 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90년대 중반에 집필한 에세이의 내용 일부다. 이 회장은 20년 전부터 디자인에 사활을 걸고 삼성전자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디자인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디자이너의 수준이다.

국내외에서 천재급 디자이너를 확보하고 감각이 있는 청소년들을 어려서부터 디자이너로 육성해야 한다”고 쓰기도 했다. 우면동 영동중학교를 바로 맞댄 채 건설 중인 우면 R&D센터는 그 존재 자체로 이건희 회장과 삼성전자의 미래 비전을 표상하고 있다.


정용승 기자 jeong_fk@naver.com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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