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란 없다
‘하우스 푸어’란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9.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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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대응에 실패한 투자자만이 있을 뿐이다

푸어들의 전성시대다. 일해도 가난을 탈출할 수없다던 워킹푸어(working Poor)가 나오더니 집값 하락으로 대출금 이자에 시달린다는 하우스 푸어가 등장하고 이제는 사교육비로 허덕인다는 에듀 푸어까지 가세했다.

이런 개념들은 올바른 것일까. 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소득’과‘투자’와‘비용’을 구분하지 못할까. 융자를 내서 자기가 살 집을 산 사람은 집값 하락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하우스 푸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우스 푸어는 투자 목적으로 세컨 하우스를 구입한 경우다. 누가 강제하지도 않았고 자기 판단으로 투자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도 자기 것이어야 한다.

에듀 푸어는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교육은 자녀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감당이 안된다면 하지 않거나 형편에 맞는 지출을 하면 된다.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항상 남과 비교해서 그 보다 못하면 참지 못하는 이상한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닌가. 능력은 저마다 다른 것이다.

하우스 푸어는 그 동안 발생했던 집값 거품이 걷어지는 과정에서 나온 현상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시장마비’라고도 하지만 이는 경제의 기초개념도 없는 생각이다. 시장이 작동하기에 가격이 하락한다. 다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집값을 지금도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약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전국에 깡통주택 보유자는 현재 약 15만정도로 추산된다. 반면에 기초생활 수급자에 해당하는 빈민층은 약 200만명이다. 잘못된 투자로 하우스 푸어가 생긴다면 이들은 기존의‘빈민층’과 다를게 없다. 정부가 이 하우스 푸어들을 구제하겠다면 그건 200만 빈민층에 대한 역차별이 된다. 다시말해 정부 행위에 있어 정당성(justice)이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민주당에서 제안했다는‘세일즈 앤 리스 백’의 정책을 새누리당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하우스 푸어가 집을 은행에 넘기고 이자 대신 저리의 월세로 입주한다는 개념이다. 도대체 말이 되는 생각일까. 자기가 사서 거주하고 생활하는 집과 집값 하락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또 투자목적의 집이라면 자신이 임대를 놓으면 될 것을 왜 정부가 개입한다는 건가.

시장의 기능에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

국민의 부동산 투자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 준다면 깡통펀드, 깡통주식은 내버려둬도 좋은가?

지난 15일, 농협 중앙회장의 하우스 푸어 대책이라는 배드뱅크설립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필요하다면 해야한다’라는 그의 주장에는 털끝만큼의 책임감도 없다. 정부의 공공정책은‘필요해서’가 아니라 ‘좋은 결과’때문에 해야한다. 어떻게 스스로 ‘결과는 알 수 없다’며 ‘필요하니 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걸까. 필요한 것으로 치자면 지금 노인 10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치매에 대한 공공관리가 더 시급하다.

결론적으로 하우스 푸어란 없다. 시장에 대응을 잘못한 실패한 투자자만 있을 뿐이다. 워킹 푸어도 없다. 스스로 그렇게 일할 뿐이다. 에듀푸어란 더욱 없다. 교육에 대한 미래투자자가 있을 뿐이다. 이 모두 좌파가 만든 포퓰리즘 프레임일 뿐이다. 따라서 정부 공직자는 그런‘푸어’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유일하게‘푸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 있다. 바로 세금을 내고 나면 쓸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른바‘텍스 푸어(Tax Poor)’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번 소득을 자기를 위해 쓰지 못하고 정부에게 바친 이들이다. 다시말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세금만큼 강제노동을 하고도 자기가 쓸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정작 구제해야 할 이들은 바로 이러한‘텍스 푸어’이지, 가격이 오르면 회복되는 깡통주택 소유자들이 아니다.

자산 디플레에는 시간외에 약이 없다. 시장이 그 자산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기 까지 조정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정책을 만드는 정부는 만능이 아니며 정치가나 공무원도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실패했던 부동산 정책이 이번에는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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