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존재를 규정한다
기억이 존재를 규정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5.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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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영화산책: <토탈 리콜>(Total Recall)
 

인간의 존재는 과연 무엇에 의해 규정되는가?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것은 질문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존재란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존재가 아니라 의식이 어떻게 규정되는가를 묻고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매우 독특한 SF영화가 그것을 반대로 뒤집는다. <토탈 리콜(Total Recall)>이다.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의 영화다. 필립 딕(Philip K. Dick)의 <기억을 도매가로 팝니다>라는 1966년 단편소설이 원작인데, 199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영화화됐다.

두 작품의 무대는 좀 다르다. 1990년작은 지구의 식민지가 돼 있는 화성이 주무대고 2012년작은 지구에서의 식민지와 식민 본국을 무대로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설정은 거의 같다.

주인공 더글라스 퀘이드는 아내를 둔 평범한 노동자다. 아내가 꽤 미인이라는 걸 제외하고는 전혀 두드러진 점이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우연한 계기로 ‘리콜’사를 노크하게 된다. 기억 주입으로 여행 체험을 맛보게 해주는 회사다. 고객의 주문에 따라 상황을 설정해주는데 그 체험이 극히 현실적이다. 두 작품에 차이가 있지만 주인공이 비밀요원이 돼 모험을 하는 것을 주문하는 건 동일하다.

본격적 사단은 ‘리콜’ 체험을 하려던 퀘이드가 갑자기 발작을 하게 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를 계기로 숨 막히는 사건을 잇달아 겪어 나가게 된다.

아내인줄 알았던 여자가 ‘리콜’사에 다녀온 길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녀는 놀라는 주인공에게 두 사람의 부부관계 자체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주입된 기억일 뿐이라고 말한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진다. 그런데 새로운 여인이 등장한다. 1990년 작에선 주인공 더그가 ‘리콜’사에서 체험 설정을 할 때 등장하는 인물이다.

2012년 작에선 처음부터 주인공의 꿈속에 계속 나타나는 뭔지 알 수 없는 어렴풋한 기억속의 인물이다. 더그는 본격적으로 그녀와 동행하면서 자신이 ‘실제로’는 그녀와 오래 전부터 ‘저항군’의 동지요 연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기억은 나중에 또 뒤집힌다.

저항군의 일원인 줄 알았던 자신이 그 반대편의 정예 요원이라는 것이다! 그의 본명은 하우저인데 저항군의 핵심전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이전의 기억을 모두 제거하고 침투했다는 설명이다.

반전에 반전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국 하우저이기를 포기하고 현재 자신의 ‘기억’을 ‘선택’한다. 주인공의 진실은 과연 더그일까 아니면 하우저일까?

영화는 주인공의 ‘현재의 행위’가 바로 ‘존재의 진실’임을 역설한다. 그런데 사실 그 행위는 그가 주입받은 기억에 따른 것이다. 결국 그의 기억이 그의 존재를 규정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현재의 존재적 현실이 기억이라는 의식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사람의 기억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라는 점은 동일하다. 과연 인간의 자아 정체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SF오락물이면서도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플롯의 치밀함은 1990년작이 낫다는 평가가 많은 듯하다. 하지만 두 편 모두 볼 만하다. 스포일성 팁 하나! 영화 마지막에 이 모든 줄거리를 다시 한 번 되짚어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야말로 ‘토탈 리콜(Total Recall)’이다.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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