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5.0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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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편집위원]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책에서 21세기의 가정은 충격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며, 그 모습은 우리가 이제껏 생각해왔던 가족제도의 원형과는 큰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가 예상하는 가정의 변화는 핵가족의 파괴로 압축된다.

대가족제도가 제1의 물결에 적응하는 가정이었다면, 핵가족은 산업화와 공업화라는 제2의 물결에 꼭 알맞은 가족제도였다는 것이다. 이런 핵가족은 이제 더 이상 제3의 물결에는 적응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집안일을 돌보며, 두 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는’ 핵가족은 몰락의 길로 이미 깊숙이 들어섰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무자녀 가정의 급증을 예고하고 있다. 여성 취업률이 증가하고, 자녀수가 줄어들고, 독신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의 가정은 구조적 그리고 기능적 측면에서 가속도적인 변화로 치닫게 될 것이다. 구조적인 변화란 대가족과 핵가족의 붕괴 내지 약화를 주된 축으로 하면서, 비전통적인 가족형태의 출현과 보편화를 뜻한다. 기능적 변화란 가정 내에서의 가족 구성원간의 역할 분담이 전혀 새롭게 규정돼 간다는 것이다.

가족 구조의 변화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중요시하는 21세기의 시대정신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특히 여성들이 자아실현의 가치를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보다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점차로 더 농후해진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직업생활을 유지하길 희망하고 있으며, 직업적 성공을 위해 출산을 꺼리는 가임여성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전문직 커플이나 여성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이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자아실현을 위해 자녀를 원하지 않는 남편들도 많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의무와 책임이 부담스러워 동거생활로 결혼을 대신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고, 결혼을 자아실현의 거추장스런 방해물로 간주해 아예 독신을 고집하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권리 요구의 목소리가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커지고 있는데, 언제 그들이 합법적인 결혼 요구를 해올지를 그저 먼 나라의 일로만 치부할 게 아니다.

자녀 생산을 결혼의 고유한 일로 보지 않으면서도 자녀양육을 원하는 부부나 개인이 있게 됨에 따라 인공수정, 대리모, 입양, 대리 양육 등의 비전통적인 가정문제들이 곧 대두하게 될 것이다.

가정기능의 변화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탈산업사회와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근육노동의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모든 직종영역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직종 구분이 모호해진다. 따라서 직장에서 힘든 일을 했다고 남편이 집에 와서 부인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줄어들었고, 여성들의 취업이 증가함에 따라서 자녀양육과 가사에 대한 부부간의 공동 책임의식이 높아진다. 그래서 가사부담문제가 부부간의 중요한 분쟁 거리로 대두된 지 이미 오래다. 남편이 전업주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정도 이젠 제법 많다.

이와 같은 가정의 변화는 불행하게도 가족 구성원 간에 긴장, 갈등, 투쟁을 수반하는 등 부작용도 일으킨다. 변화의 큰 흐름에 대한 의식상의 수용 속도가 가족 구성원 간에 즉, 부부간에, 부부와 시부모간에, 부부와 자녀 간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가정의 위기는 변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변화에 대한 예민성과 대응능력 결여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 대응능력의 결여는 가정의 든든한 존립 기반을 약화 시켜나갈 것이다. 즉 가정이 무너지는 이혼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이혼율은 바로 이런 대응능력의 결여를 단적으로 증거한다.

한 사회의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안정의 뿌리는 가정에서 연원한다. 가정은 어린이건 어른이건 간에 한 개인의 삶의 고향이다. 이 고향이 사랑에 넘쳐서 포근하고 따뜻할 때 개인은 그 속에서 잘 성장하며 훌륭한 인격체로 자라난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한다. 가정의 해체는 바로 그 역의 시작이다.

가족해체, 가정공동체의 와해가 이제 사회 일각의 특이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출산율과 이혼율과 자살률 그리고 성범죄율이 세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가정해체, 가족 공동체 와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징표다.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가정을 살리는 일에 여야, 진보보수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권력잡기 싸움들만 하지 말고 힘을 합쳐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가정을 지켜라.

문용린 편집위원 -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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